이해보다 존중이 먼저

24화

by명형인

언니에게서 온 답장은 내 예상을 뒤엎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다양하다지만 이토록 입체적일 거라는 생각이 미처 여기까지 닿지 못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미국언니가 바로 내 가까이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바로 지금일 줄이야.


“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어. 대학교 때 다시 미국에서 다녔지.”


“나랑 완전히 반대야. 언니.”


“몰랐구나~ 내가 좀 특이한 경우야.”


언니 말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열망이 가득 찬 눈빛으로 자기가 대학원 졸업을 하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취업할 거라고 확신하던 젊은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게 드디어 실마리가 풀렸다. 자기는 한국에서 친구랑 함께 놀았던 때가 아주 좋았다며 카나리아처럼 재잘거리는 언니가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언니에게는 제일 좋았던 기억일지도 모른다. 나는 미국에서 친구랑 울고 웃고 싸우고 그게 다 추억이었는데, 언니는 한국에 많은 추억을 묻어두었다.


참 이상하게도 미국인인데 한국의 향수가 묻어있는 언니는 나에게 가족 이상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가족들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모난 사람으로 보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말없이 눈을 맞춰주고 공감했다.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왜 졸업한 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지?’


그토록 바라던 곳에 돌아갈 수 없는 심정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언니의 문자가 연달아 스크린에 떴다.


“원래 난 대학원 끝나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어. 지금 남편을 만나게 되어 결혼을 하고 미국에 눌러살게 될 줄 몰랐지.”


나는 반사적으로 언니에게 답했다.


“언니는 한국이 더 편할 것 같은데.”


“난 미국에서도 오래 살았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미국이 편해. 한국에서도 좋은 점이 있지만 지금은 어디든 별로 상관없어졌어.”



절제된 톤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은 언니는 내 상상보다 훨씬 강했다.


미국언니의 남편은 나와 비슷하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미국에서 쭉 살았다. 예전에 몇번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초면의 어색함이 있었을 뿐, 그렇게 답답하거나 나빴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소 솔직하고 거침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부드럽고 온화한 미국언니랑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준비 스트레스로 인해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미국언니랑 수다를 떨다 보니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언니 부부와 우리는 닮은 점이 많았다.


언니는 장녀로 살아왔기 때문에 항상 많은 부분을 바카라임져야 했고 엄마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다. 이 부분은 나도 무척 공감되었다. 장녀였기 때문에 칭찬보다 고쳐야 한다는 등 많은 지적과 기대를 떠안고 살아온 것도 서로 닮아있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어렸을 때 칭찬보다는 더 잘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누가 나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게 너무 싫었어.”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는 장녀로 살아가면서도 이 부분과 항상 맞서 싸워왔다. 엄마가 항상 툭하면 나를 혼냈기 때문이다. 사고는 분명히 걔가 쳤는데, 나는 충분히 노력을 했고 단지 새끼손톱 때 만한 실수 하나를 했을 뿐인데 부모님의 호통은 날벼락같았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나에게는 눈물조차도 사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게 장녀의 첫 번째 칭호나 마찬가지였다. 울어도 울지 않는 자, 나는 동생을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 쉽지 않았다. 억울해도 화내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삶을 부모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준비를 해 놓은 거다.


동생이 말을 안 들을 때 내가 항상 져줘야 한다는 것도 많은 의문을 품었다. 분명히 그 녀석이 잘못을 했음에도 그걸 봐주게 되면 반복될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항상 도전처럼 들렸다.


누군가가 지적을 하거나 고치라고 말을 하면 나는 그걸 잠자코 들었다. 그 말속에 뭐가 있겠지 하며 듣다 보니 어떤 말은 일리가 있고 저런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다. 사람들이 항상 좋은 의미로 지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부터 지적과 비판은 오히려 내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누가 뭐라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


‘같은 첫째 딸에 비슷한 배경에서 자랐는데 왜 이리 다를까?'


언니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니 내 예비남편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빠가 화를 내면서 자주 했던 말이 “그렇게 까지 지적을 할 필요는 없잖아”였기 때문이다. 미국언니와 내 예비남편은 어떤 면에서 매우 닮아있었다. 오히려 삼 남매 중 막둥이인 내 예비남편이 미국언니와 겹쳤다. 나는 너무나도 찔리지만 미국언니의 남편과 닮았다. 언니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하지만 언니의 남편도 약간은 측은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 사람의 본심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먼저 자기가 느낀 것을 표현하고 거기에 근거를 대서 이유를 말하는 과정에서 지적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던진 공을 상대방이 받았다 해도 그 사람이 받아 던질 줄 모른다면 계속 공놀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예비남편도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도 갈등이 생겨 한참 싸울 땐 나에게 일방적이라고 말했다. 그게 진짜 일방적이었을까.


상대방이 공을 던질 줄 모른다면? 또는 상대방이 던진 공을 내가 무조건 받아내야 하는 것도 좋은 경기가 아님이 분명했다. 공놀이를 하려면 본인이 공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도 그걸 잊었을 수도 있다.


말은 공놀이 같다. 그렇게 느낀다고 있는 그대로 내뱉으면 구멍이 난다. 굳이 내 생각을 언니에게 말하진 않았다.


미국언니는 나에게 걱정 말라며 위로를 건넸다.


“여러 세월이 지나 함께 살아보니까 그 사람을 조금씩 알게 되더라. 표현하는 것과 본심이 조금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 사람의 의도를 들어보려 노력하게 되었어. 너희도 서로 이해할 날이 올 거야.”


“고마워. 언니. 덕분에 나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


미국언니와 대화는 끝난 후에도 여운이 남았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틈을 마련해 주어 그 안에 몸을 맡기고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 작은 틈은 새로운 길을 터냈다.


만약에, 어쩌면 예비남편은 나를 봐달라고 하는 게 아닐까. 네가 찌르고 있는 내 감정을 봐달라며 좀 헤아려달라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공을 칠 줄 알았지만 공을 던지는 건 잘 못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공을 던지기보다는 뻥뻥 차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난 그게 너무 못마땅했던 것 같다. 감정을 표현하되 상황을 감정과 분리해서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빠는 감정이 그 상황을 만든 원인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인을 제거하지 않았는데 내가 벌어진 일에만 집중을 하는 상황이 어이없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티가 나면 대화하기 싫어진다고 나에게 말했다. 슬픔, 분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대화할 맛이 떨어진다고 표현을 했으니까.


그렇게 끔찍이 싫어하고 힘겨워하는 감정들을 정작 본인은 맘껏 표출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 했다. 언니가 말했던 지적이라는 게 실제로 비판이기보다는 감정을 헤아려주지 않는 말에 가까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오빠를 찌르기 싫었지만 안 하리라는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살면 되지 않나.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해보다 존중이 먼저였다.


존중을 하려면 나랑 정반대인 그 사람을 배워야 했다.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면 난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저 나라 문화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배우다 보면 저절로 되는 거였다.


그게 언니가 알려준 깎인다는 말의 의미가 아닐까.

결혼 준비하는 내내 내가 깎이면서 다이아몬드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돌 반지보다 다이아 반지가 더 낫지 않은가. 이왕 알이 큰 녀석이 더 좋겠다.


‘오빠는 다이아가 되든 말든, 금강석이면 다이아몬드나 마찬가지니 알아서 하겠지’


내가 먼저 바뀌면 되었다.


예비남편을 기다려주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 사람은 내가 어떻게든 하려 한다는 낌새가 보이면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발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깎인다고 생각하면 그런 거니까 속 터져도 오빠가 튕겨내는 공은 그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손을 아예 떼야했다.


유쾌하게 생각하며 임하다 보니 오빠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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