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예식장 버진로드 위를 걸어가기까지 나와 오빠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인데 때로는 엇박자가 나기도 했다. 한번 토라지면 홱 돌아서는 게 얼마나 빠른지 기분을 풀어주는 것도 한나절이었다. 서로 맞다 우기고 나면 현실자각이 뒤늦게 뒤따라왔다. 어린아이 보다 더한 모습에 서로를 잡아주려는 걸지도 모른다. 부딪힐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다 사그라들 때 즈음 우리 둘 다 똑같다는 생각에 낯부끄러워졌다.
이제 보니 마음은 신축성이 뛰어난 것 같다. 여유 만만한 큰 냄비 같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간장종지보다 더 작아지기도 했다. 내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을 후딱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가 알까. 그래도 냅다 화를 내진 않았다.
예비남편인 오빠 얼굴을 쓱 훑어보니 그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서는 입술이 터질 듯 꾹 참는 모습이 참 우스웠다.
그를 보니 거울처럼 내 모습이 그려졌다. 아,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애 같은 어른 둘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관여하지 않고 일단 맡기기로 했다. 결과가 어떻든 시작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바카라임지면 되는 거였다. 제 선택의 뒷수습만 잘하면 원성이 자자할 일이 없을 테지. 우리는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연습이 필요했다. 상대가 부족해 보여도 답답한 마음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것도 지혜였다.
바카라임감을 갖고 해낼 것이라는 주문을 거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 기세가 이어지길 바랐는데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를 고르던 날, 우리는 또다시 대치했다. 나는 흰 드레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실이 불만이었고 예비남편은 누구나 다 흰색을 입기 때문에 나도 그러길 바랐다. 차리리 미국에서 직접 드레스를 공수하고 싶었다. 다만 흰색은 포기해야 해서 타협이 쉽지 않았다.
오빠는 내 뜻대로 했다가는 하객들이 전부 우리를 흉보고 부모님의 명예를 해칠 거라며 걱정하는 게 아닌가. 밝고 화사한 색을 고르면 어떠겠냐고 역제안을 했는데도 먹히지 않았다.
“오빠. 뭘 걱정하고 있는지 이해해. 흰 드레스를 빌리면 우리가 몇백은 쓸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예쁜 건 둘째치고 결혼식날까지 변수가 아주 많을 텐데..”
“난 감당할 수 있어. 다른 걸 아끼면 되잖아.”
“아직 한복, 메이크업 등 해결해야 하는 게 있는데 양가 부모님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비싼 데서 받아야 하니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만 최대한 조율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서로 반반 양보하기로 했잖아.”
“아이, 그럴 일 없어.”
“무슨 소리야. 오빠, 이런 건 미리 생각해 놔야지. 결혼식에 수천만 원을 쓸 거 아니잖아?”
“영상촬영까지 다 해도 별거 없겠지 뭐.”
내 눈에는 오빠가 우리가 갚아야 할 돈보다 눈에 보이는 형식과 관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 준비를 하던 당시에는 돈이 넉넉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우리는 드레스를 구매하는 걸 보류하기로 했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가기도 전에 우려하던 일이 딱 현실이 됐다. 양가 부모님은 갑자기 한복만큼은 웨딩홀 바로 옆 업체에서 돈을 더 주더라도 맞추겠다며 강하게 나섰다. 그리고 메이크업은 신랑 신부의 식구들까지 함께 받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내친김에 우리 둘도 같은 곳에서 화장을 받으란다. 이렇게 메이크업과 헤어를 무려 8명이 받게 되었다.
“결혼식에 신부가 주인공인데 너도 힘줘야 하지 않겠니. 신부가 제일 예뻐야지!”
오빠 엄마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내 엄마도 옆에서 흡족해했다. 이걸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다.
한복과 메이크업 견적은 백만 원이라는 허들을 가뿐히 넘어버렸다. 무려 두 배다. 신용카드를 쥔 채 미세하게 떨리던 오빠의 손을 내가 꼭 잡아줬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기가 다 바카라임을 질 수 있다며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이미 움츠러들어 가랑이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았다.
웨딩홀에서 제휴 드레스 업체의 설명과 가격을 듣는 동안 오빠의 얼굴은 굳어져갔다. 영혼이 어디론가 달아나버려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몰래 스마트폰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식대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합쳐보니 천만 원이다. 와우.
다행히 드레스 상담 전에 오빠 엄마에게 미리 귀띔을 해둔 상태였다. 오빠 엄마는 적극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었다. 아니었다면 오빠가 고생했을 게 뻔했다.
드레스 상담 이후 그는 결혼식의 모든 계획을 나에게 믿고 맡겼다. 청첩장은 내가 품을 들여 직접 만들었다. 디자인은 어른들에게 친숙한 방향으로 양보했다. 만들 때에는 내가 품을 들였고, 인쇄물이 나온 뒤에는 오빠가 늦은 밤까지 포장을 맡았다. 연장근무나 다름없었기에 묵묵히 도와준 그가 고마웠다.
드레스는 흰색을 포기하고 턱시도와 함께 미국에서 직구했다. 신발과 구두도 결혼식이 끝난 뒤 계속 신을 수 있는 무난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사진촬영을 포함한 다른 준비도 원래 다니던 곳에서 해결하니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오빠가 제일 걱정했던 드레스 색상 문제는 기우였다. 이미 한복과 메이크업에 만족한 부모님은 나머지를 우리에게 맡겼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역시 걱정은 괜히 사서 하는 게 아니다.
내 기억에 큰돈이 들어간 건 대부분 어른들 의견을 따른 부분이었다. 우리도 부모에게 어느 정도 양보해야 했기에 아깝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부인의 말은 내비게이션 같아서 결국 돌고 돌아 따르게 된다는 글을 SNS에서 본 적이 있는데 하필 지금 떠올랐다.
손아귀 힘이 좋은 나도 가끔씩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다. 결혼반지는 늦게 했지만 금은방을 하는 오빠 친척을 통해 맞춘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한국에서는 가족 사이에 돈이 돌고 도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던 그의 말은 옳았다. 한국의 사정은 오빠가 나보다 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양가에 인사할 때와 청첩장을 돌릴 때 필요한 기본예절도 알려줘서 한결 순탄했다. 오빠를 다시 봤다.
“오빠. 가끔은 틀을 깨는 것도 나쁘진 않지?”
“맞아. 네 말도 맞는 게 많더라. 날 믿고 따라준 것도 고마워.”
“나도.”
돈 앞에 장사가 없고 어두운 미래를 좋아할 사람도 없었다. 결국 슬롯적인 통념도 갚아야 할 금액을 이기진 못했다. 선비 같은 사람이 이렇게 기뻐하는 건 처음이었다. 본식 드레스로 에메랄드 색 드레스를 골라놓았는데 그것도 엄청 예쁘단다. 피로연 드레스는 검은색 드레스인데 좋단다. 그의 얼굴은 전 보다 한결 밝아졌다.
그깟 녹색 드레스가 뭐라고! 평소 같으면 한국이니까 한국법을 따라야 한다며 잔소리했을 텐데 이제는 허허 웃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많은 목록의 빈칸들이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결혼식은 한국의 관습에서 벗어난 부분이 많아 가족들에게 일일이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일이었다. 고물가 시대의 결혼 비용과 비합리적인 형식이 맞물린 것도 어쩌면 운이었다. 자식이 결혼해서 고생하길 바라는 부모는 없었다.
한 발짝 미래를 향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예비남편이 진짜 내 신랑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동지일지도 모른다.
역시, 기다리길 잘했다.
우리는 부딪히면서 서로에게 맞는 자리를 조금씩 찾아갔다. 그때서야 서운한 감정과 불편했던 말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본질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마음이 상처 위에 새살 돋듯이 올라왔다.
살면서 항상 좋은 것만 있어야 하는 걸까. 부딪히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둘 사이의 모순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이 정형된 모델처럼 똑같아야 평화가 온다는 생각은 도피처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안전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으면 세상 밖을 끝내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