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을 십 대 시절 사춘기가 왔을 때 충분히 다 한 줄 알았는데, 무사히 떠나보낸 사춘기를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하려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나를 짓누르는 감각은 참 오랜만이었다.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로 식을 올리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니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이러다 실수를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위기의식은 갓난아기처럼 나를 진득하게 붙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내 일부라는 듯이 내 마음을 쥐어 잡고 늘어졌다.
덕지덕지 붙은 것들을 떼어내기 위해 나는 숲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다양한 환경과 재료들이 있는 넓은 환경으로 가야 하는 법이었다. 다른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서로 만나 평생의 약속을 맺은 결혼 선배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다름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제일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좋은 기회로 국제 커플들과 몇 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아시아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동남아시아 사람과 한국 사람이 만나 부부를 이룬 경우가 제일 많았고 두 번째는 한일 및 한중 커플로 비등비등한 상황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설득을 하기 어렵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묵혀두는 답답함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공감이 갔다. 평범한 다른 부부들이 부럽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모임은 여기가 유일할 것이다.
어느 날은 페이스북 메시지로 미국인 친구에게 부부생활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한국 커플들의 대답과 별 차이 없었다. 친구는 강조하듯이 내 영어 이름을 문자 맨 앞에 끼워 넣었다.
“클라라야. 나는 잘 지내고 있지! 내 남편과 귀여운 아기들, 너무 행복한 가족을 이뤘어. 넌 어때?”
“결혼식은 이제 3달 남았고 이제 이런저런 문제로 부딪히고 있지. 너에게 조언을 얻고 싶은데, 너도 네 남편이랑 서로 힘든 적이 있었어?”
“물론이지, 사소한 것으로 많이 부딪혀. 예를 들자면 남편은 양말을 툭툭 바닥에 던져. 난 그걸 주워 담고 있고 내 남편은 아주 훌륭한 농구 선수야. 모든 부부들이 겪는 그런 깜찍한 다툼은 일상이야.”
“맞아. 내 피앙세도 그래. 이런 작은 것들은 귀엽게 여길 수 있는데 대화할 땐 서로 쿨하지 못해.”
“오, 남녀 차이는 아니고?”
“응, 그거 때문에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봤는데 소용없었어. 대화를 자주 해야 한대.”
“안타깝다, 클라라. 난 네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잘될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그저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사이는 축복 같은 거다. 그 친구는 나에게 잘 될 거라며 행운의 여신은 네 편이라는 정서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잘될 거야’라는 긍정 속에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동남아시아와 한국인 국제 커플 셋이 마침내 이별을 선언하고야 말았는데 어찌 웃을 수 있을까. 한중 커플도 갈라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이유를 물어보니 해결할 수 없는 성격 차이란다. 행복한 결말은 모래알 속에 숨어 있는 사금 찾기나 마찬가지였다.
한일 커플은 일본인 와이프에게 양보를 하며 사는 것을 택했다. 일본을 두고 한국으로 와 준 부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훨씬 컸다는 말을 들으니 그 사람 입장이 이해되긴 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절대 시도를 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자기 입장을 내세운 부분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을 완벽히 외국인으로 바꿀 수도 없는 것처럼 반대쪽도 마찬가지야. 시도하지 마. 그러나 쫑난다. 갈라서기 싫으면 그냥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
“이해하기 힘든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도 진작에 노력을 했어.”
“그걸 다 짊어지고 결혼해야 하는 거야. 안된다고 하지 말고 짊어진다 생각해.”
오빠가 물을 때마다 일본인과 결혼한 지인은 단호히 나왔다. 나는 이 남자가 참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걸 굳이 들춰내진 않았다.
예비남편도 같은 의문을 던졌다.
‘참으면 마음이 병나는데 그것도 본인이 바카라임져야 하나?’
하지만 참아야 한다와 배워야 한다는 것은 명쾌한 해답이 되어주지 못했다. 이 말을 숱 없이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원점인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참는 게 맞는 건가?
이론으로는 알고 있는데 뇌가 따라와 주질 않았다. 나도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부터 나를 많이 아껴줬던 미국 학교 선배 언니가 있었지! 이미 결혼한 지 10년이 된 언니인데 사랑싸움 문제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잘 알 것 같았다.
우리 사정을 자초지종 적어낸 후 글 말미에 조언을 구한다는 말을 각주처럼 덧붙였다. 문자에 대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노란 화살표를 눌렀다. 문자를 보낸 후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답장을 기다리면서도 내내 걱정을 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 몸과 마음이 퇴색해서 빛바랜 잿더미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기쁠 때나 힘들 때나 내 이야기를 전부 말해줄 수 있었던 언니였는데 내 등 뒤에서 예비남편의 경고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한국에서는 속마음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등 도움을 청해도 사람들이 흠을 잡을 뿐 너에게 오는 도움은 별로 없을 거라는 체념이 가득한 말을 오빠가 평소에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비단 오빠뿐만 아니었다. 내 부모님도 한국에서 만난 내 친구들도 속마음이나 감정은 꺼내면 안 되는 불필요한 이물질처럼 여겼으니까.
감정을 죽이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슬픈 세상일 것이다. 내 주변을 의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만든 모두에게 바카라임이 있는 것이었다.
표현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너무 오래 살아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내 주위에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웃고 울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필요할 때 도와주고 서로 찾아주는 이웃들이 있었다. 낯선 환경인 한국은 오히려 삭막하게 느껴졌다. 그걸 생각하니 왠지 미국언니가 그런 고민들은 네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며 화를 내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미국인일까, 한국인일까. 그 무엇도 되지 못하는 기분을 누가 헤아려주길 바라면서도 선뜻 내비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그저 바카라상 앞에 앉아있었다. 밤 만이 내 옆을 묵묵히 지켰다.
두 나라에서 살아온 시간들은 나 자신을 속였다. 내가 지금 가장 믿고 있는 미국언니를 의심하게 되었으니까.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뒤이어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밀려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바카라상에 놓여 있는 스마트폰을 멍하니 바라보았는데 창가에 햇빛이 비쳤다. 아니, 벌써? 나는 아직 잠에 못 들었는데 너무 빨리 떠 버린 해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어두운 밤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내 마음이 정리가 되었을 텐데 세상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아침이 시작되어 아쉬운 마음을 다시며 바카라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알람 진동이 끼어들었다. 갑자기 서너 번 연달아 울리는 알람을 이토록 기다린 건가.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잠금 해제 비밀번호를 연달아 틀려버렸다. 보고 싶었던 언니를 향한 반가움은 내 마음을 물들인 의구심을 깔끔히 정화시켰다.
“쉽지 않았네. 나도 한국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어. 그냥 내 스타일대로 할 걸 후회되기도 하고.”
언니의 한 마디는 더 잘해야 한다는 둥 노력해야 한다며 일언반구도 없이 속단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실려있었다. 그저 내 상황을 그대로 받아주는 말을 그토록 듣고 싶었던 거다.
뒤이어 나머지 글자를 따라 읽어내리는 도중 시선이 걸리는 문장이 있었다.
“… 다르지만 서로 맞춰가는 거야. 깎이는 거지.”
보통은 결혼생활을 서로 손해를 보거나 마음이 상하는 등 깎인다고 표현을 하지 않는데 이 언니는 굳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언니의 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언니, 그게 무슨 뜻이야?”
“사랑하는 상대방이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서로 느끼는 것이 똑같을 수 없잖아? 결혼은 돌이 깎이듯 나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야.”
나는 서로 깎여나간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내 예비남편은 더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해줬으니까 나도 똑같이 자기에게 그것쯤은 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자주 했었으니까.
그는 내가 만져주고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여주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노터치” 교육을 받아왔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민감한 행동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이 상황이 제일 힘들었다.
'너는 나를 자주 만져주잖아. 근데 내가 너를 만지면 왜 싫어하는 거야?’
오빠의 속상한 얼굴과 가시가 돋친 말이 지금 딱 생각이 났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임에도 그가 좋아하기 때문에 해주었다. 반대로 그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싫어하는 것임에도 똑같이 해주고 싶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그에겐 별로 내키지 않는 것이면 슬금슬금 피하는 오빠의 모습이 떠오른 거다.
나랑 함께 결혼준비를 하는 이 남자는 호불호에 너무나도 솔직한 게 탈이었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나를 위해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기꺼이 한다는 것은 동네 뒷산이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속보인 셈이다. 언니의 충언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틈을 주지 않는 모습이 완고한 금강석 같은 사람을 어떻게 돌을 깎듯 다듬을 수 있을까. 나는 내 예비남편이 나랑 성격이 달라서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을 언니에게 어렵게 꺼냈다.
“언니. 내 예비남편은 좋고 싫음이 너무나 확실한 사람이야. 그래서 지금도 갈등이 있어. 대화가 잘 안 되는 것도 그 부분을 건드릴 때 대화가 너무 안 돼.”
“그래? 너 남자친구가 생각이 좀 짧네. 넌 어때? 그 사람이랑 함께 하고 싶어?”
“아니. 난 이 부분은 감당할 수 없어. 나도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야. 일방적인 관계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그런 부분에서 난 내 예비남편이 어려워.”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말을 문득 내뱉고 나니 머리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오빠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한 사이인데 왜 나에게 일방적으로 느껴질까 모르겠다.
언니는 짧은 해결바카라을 하나 건넸다.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 나도 결혼하고 애 둘 낳았는데 이게 되게 중요하더라.”
“그래야겠다. 언니.”
“그래. 결정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상황에 대한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고민해 주는 미국언니가 너무 고마웠다. 내 혈육이 아닌 대학교 선배인데도 친언니를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니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잠깐,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이 언니 미국사람인데?’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여권을 가지고 있는 언닌데 오히려 한국 사람들 보다 훨씬 정이 많아서 의아했다. 내가 만나왔던 한국계 미국인들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은 적이 없었다. 이참에 한번 물어봐야겠다 싶어 스마트폰을 계속 붙들었다.
“근데, 언니는 미국에서 태어났잖아. 왜 결혼식은 한국에서만 한 거야? 미국에서 스몰 웨딩으로 또 할 수 있었잖아.”
이 질문을 통해 나는 미국언니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