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는 착각이 만든 위기

20화

by명형인

우리는 청첩장을 만들기 전에 먼저 상견례를 하기로 했다. 애초에 순서가 약간 틀어지긴 했지만, 예식장 문제를 잘 해결해 낸 뒤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람에 기대 흔들리는 하천의 갈대처럼 양쪽 부모들과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게 좋은 걸까, 결혼의 문턱과 가까워지면서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우리가 직접 결정하는 일에 쉽게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을 보여주는 첫 사건이 상견례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터졌다. 지금 글을 쓰며 다시 돌아보니, 그때 일이 안 풀렸다면 우리가 결혼식을 못 올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서늘하다.


상견례 날이 다가오면서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믿음이 결국 깨져버렸다. 처가와 시댁, 그리고 예비남편은 전부 다 알고 있는 상견례 날짜를 나만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기가 막히게도 오빠 엄마를 통해 통보식으로 알게 되었다. 내 엄마도 상견례 날짜를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었다. 이때 첫 번째로 든 생각은 “회사에 연차 내야 하는데!”였다. 그 후 갑자기 서러움이 밀물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왜 내게 말 안 한 거지?’


나는 먼저 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폰 스피커 너머로 평소와 같은 엄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딸, 잘 지냈니?” 아무 일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칼날처럼 내 마음을 긁었다.


“엄마! 상견례 날짜를 왜 말 안 했어요? 저 이걸 방금 시어머님을 통해 들었어요. 제 의견을 묻지도 않고 상견례를 덜컥 잡으신 거예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되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 부모님인데 그러시면 안 되죠.”


서운함을 가득 담아 말했더니 엄마의 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당황해야 할 사람은 난데?’ 참으로 깝깝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든 채 덩그러니 서서 마른침을 삼켰다. 내 집 안이 그렇게 춥게 느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게 무슨 일이야. 너 남자친구랑 사전에 합의한 날짜가 아니었니? 난 너 아빠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너희들이 먼저 네 아빠에게 말한 줄 알았다. 나도 당황스럽구나.”


전화 통화로 상황이 쉬이 가라앉지 않아 우리 모녀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급히 잡았다. 그날, 고등어구이 자반집에서 엄마를 만났는데, 생선구이를 내 앞에 두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너무나 서러웠던 것일까, 고등어구이가 너무 짰던 것일까?


내 서러움에는 그도 한몫을 했다. 시어머님께 갑작스러운 통보를 듣고 나서 오빠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는데 원래 한국에서는 부모님들끼리 정하기 때문에 부모가 대부분의 권한을 쥐고 있다 생각하라고 그가 나를 나무라는 게 아닌가. 나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내 부모님이 한국사람인데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직접 부모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건의 원인은 내 아빠였다. 아빠는 알다시피 지독히 가부장적인 시대에 살아온 인간이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그는 아직도 엄마에게 공유를 하지 않고 남자가 다 해야 한다며 돈을 쥐고 집안 대소사를 홀로 맡아왔으니 이런 일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지금은 두 분이 서로 이혼했지만 아빠는 아직도 그 시대에 머물러 살고 있었다.

아빠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견례 날짜를 잡았다고 통보를 한 것이다. 엄마는 당연히 큰 딸에게 말하고 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세히 캐지 않고 묻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가부장적이었던 시대라 해도 엄마의 아버지 되는 우리 외할아버지는 집안 중요한 날짜 정도는 가족들에게 공유한 후에 결정했었기 때문에 내 아빠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단다.


그리고 시댁에서도 처가 부모에게서 연락 온 게 너무 당연하게 자식이랑 이미 이야기를 나눈 일이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오빠도 자기 부모님에게로부터 들은 게 당연히 내가 이미 시간을 비운 날인 줄 알았던 거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 오히려 일을 키웠다. 뒤늦게 내가 그날 회사 허락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상견례를 올지 안 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시댁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빠로부터 계속 영상통화가 오길래 받았는데 미간이 잔뜩 구겨진 그의 얼굴이 딱 보였다. “지금 내 엄마가 너 엄마랑 통화 중인데 이러다 일이 커지는 거 아니야?” 그는 평소보다 호흡이 더 거칠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었는지 왜 일을 크게 만들었냐고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구멍이 뚫릴세라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다. 아차, 엄마랑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이 소리를 왜 들어야 하나 내 마음이 푹 꺼질 것 같이 내려앉았다. 오빠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들어 냉큼 전화를 끊고 앱을 열어 키보드를 빠르게 연타했다. “어머님, 너무 서운합니다. 저는 상견례에 대해 듣지도 못했습니다. 오빠랑 상의를 한 것도 아니고요.”


옆에 있던 엄마도 상황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안색이 매우 나빴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읽음 표시가 뜨고 1분 채 안되어 엄마 가방 속에서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아, 오빠 엄마다’


내 엄마는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입을 가리고 스마트폰을 얼굴에 갖다 댄 채 열심히 뭐라 중얼거렸다. 애써서 내가 보지 못하도록 입을 가렸지만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포기를 했는지 엄마가 사건의 발단부터 전부 다 오빠 엄마에게 설명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문자 알람이 떴다.


“며늘아. 미안하다.” 오빠 엄마에게로부터 온 짧은 한 마디가 스크린 위에 깜빡거렸다.


처음에 오빠는 내가 잘 몰라서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르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한국에 살면서 보아온 것은 사람들이 암묵적인 이해를 통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아마 공동체가 생각이 비슷하고 행동이 비슷해야 매끄럽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별사탕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자기가 진품이라고 우기며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애초에 별사탕은 하나하나 모양이 다 다르다. 그 사실을 알까 모르겠다.


그들을 조그마한 별사탕이라고 상상하니 기분이 좀 나아지긴 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오빠는 입을 싹 다물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엄마의 얼굴을 살폈는데 잔뜩 붉어지다 못해 검붉은 안색이 맛이 가기 직전의 토마토 같았다. 실수로 찔렀다가는 큰일 날 게 뻔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폰 너머로 낮고 굵은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내 아빠였다.


엄마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딸하고 상의해서 말한 날짜가 아니었어? 지금 시댁에서도 아주 난리가 났어. 신부가 우리 딸인데 당연히 상의를 하고 나서 나에게 말을 해야지!”


말이 끝나자마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정했으니까 당연히 따라야지!!”


그 말을 듣자마자 한숨을 푹 쉬었는데 옆에서 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얘가 내 앞에서 울고 있어. 잘 키워놓은 큰 딸 시집보내는 상황에서 당신이 애 아빠 맞아? 답답하네.”


“뭐라고? 왜 걔가 울어? 왜 우나? 무슨 일이야.”

그때 내 아빠가 왜 도리어 당황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큰소리친 사람이 내 아빤데!


시댁에서도 너무 속상하고 어이가 없었는지 한동안 난리였다. 폭풍우가 치는 것 같은 상황이 꽤 이어졌다.


그 후로 일을 매듭짓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었다. 부모님은 다시 나에게 날짜를 물어봤고 나는 미리 시간을 비우고 준비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모두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고 쉬쉬하는 듯했다. 단 하나, 바뀐 게 있다면 전보다 우리 의견을 미리 앞서서 물어보는 횟수가 훨씬 늘어났다.


부모님이 전부 다 결정해야 한다는 말은 어딘가로 쏙 들어가 버렸는지 보이질 않았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엄마가 먼저 나에게 “네가 니 남편하고 이야기를 해야지. 얘기하고 나서 어떻게 됐는지 나에게 알려줘.”라고 바통을 슬며시 밀어낸다.


그리고 예비남편은 서울 집에서 엄청나게 깨졌다고 들었다. 오빠가 잔뜩 울상이 되어 나에게 전부 다 말했는데 모든 일은 나하고 우선으로 상의를 해야 집안싸움이 안 난다고 아주 혼난 모양이다.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간 “내가 큰일 나겠구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을 결정하기 전에 서로 꼭 상의를 하기로 약속했다.


결혼하려다가 도리어 끝장날 뻔했다.


여담이지만 내 아빠도 엄마에게 큰 소리를 들은 듯하다. 오빠가 장인어른인 내 아빠랑 가끔씩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자들끼리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으니 그런 거겠지. 어쩐지, 아빠가 나를 갑자기 불러서 양식 스파게티를 사준 이유가 있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라는 말을 맨 앞에 갖다 붙이면서 넘어가는 건 더 이상 안 될 것 같았다. 우리가 서로 사이가 틀어져서 헤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해도 이리 일이 커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오빠를 설득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이것 참, 그는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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