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갈 예식장을 알아보면서 가족들이 각자 말하는 결혼식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었다. 당장 웨딩홀을 예약하는 찰나에는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부분이었는데, 그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의미를 담아 건네는 초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타인에게 잘 보여야 하는 그런 잘 포장된 봉투.
그것을 허름하게 대충 종이를 덧대어 감싸는 것을 가족들은 용납하지 못했다.
그깟 예식장 하나 때문에 우리 사이에도 처음으로 냉전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무를 수 없는 노릇이라 아찔했다. 예식장은 우리가 양가의 입장과 위치를 충분히 고려를 해서 정한 장소였다. 이 좋은 위치를 가지고 두 엄마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속상함을 자식들에게 터뜨려 놓았다.
나랑 그 이는 수원과 서울이라는 수도권 안에서 두 시간 거리라는 애매한 위치에서 살고 있었다. 이 두 시간이라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감 때문에 서로 조금만 더 양보해 줄거라 생각을 했던 걸까. 내 엄마는 당당하게 수원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 했고 오빠 엄마는 여의도를 원했다. 서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 내 엄마가 중간지점에서 합의를 보고 식을 올려도 괜찮다 했는데 돌연간 걸려온 오빠 엄마의 전화로 인해 마음이 상하는 바람에 도루묵이 된 거였다. 남자 쪽이 당당하게 서울에서 해야 한다 하니 질세라 자기는 수원에서 해야 한다며 맞붙은 모양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참 믿기 어려웠다.
엄마는 어느 날 나를 불러와 놓고선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내 귓구멍을 두들겼다.
“딸, 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오늘 그쪽 어머님이랑 전화를 했단다.”
“대화 잘 나누셨어요?”
“글쎄, 너희들 예식장을 정해야 하니 상의를 잠깐 했단다. 그런데 그쪽이 하는 말이 자기는 서울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 하더라. 우리는 친척들이 전부 다 수원에 살고 서울에 사는 분이 몇 안되지 않니?”
“네.”
“그리고 봐라, 너 아빠도 친척들이 대부분 부산에 있지 않니? 근데도 그쪽은 여의도에서 결혼식을 하자고 한다. 너무하지 않니? 난 당연히 결혼식을 수원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 수원역 근처에서 해야지.”
“… 그렇군요. 생각해 볼게요.”
“나는 너무 속상하구나! 그쪽은 무슨 생각인 건지 당연히 수원에서 결혼을 해야지 왜 서울에서 하자고 하는 거니? 아이고 속상하다! 큰 딸을 시집보내는데 이런 푸대접이 어디 있냐.”
“… 저희가 상의해서 예식장 위치를 정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서로 중간 지점에서 식을 올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나랑 엄마는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돌아오는 주말에 남자친구를 만나보니 얼굴이 평소보다 어두웠다. 자기도 엄마랑 예식장에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데 그 얼굴을 바라보니 왠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상상이 갔다.
오빠랑 예식장 위치에 대한 고민을 진짜 많이 했었다. 그 이는 짜증이 난다며 애꿎은 볼펜을 고문했다. 딸깍 딸깍 펜 뚜껑이 들어갔다 튕기는 소음이 심장박동 소리 같았다.
그가 슬며시 나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난 솔직히 둘 다 똑같아 보여. 울 엄마에게 말하면 안 돼. 뒷 목 잡고 쓰러질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을 도저히 참지 못했다.
“동감이야. 오빠. 우리 엄마도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모를 거야”
“있잖아. 부모님은 원래 그런 걸까? 내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니 혼란스러워.”
“나도 마찬가지야. 오빠. 난 내 엄마가 천사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도저히 눈을 못 맞추겠다면 내 말을 믿을 거야?”
내가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머리카락 대신 구불거리는 뱀 여러 마리가 뒤엉킨 것 같았다.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친 내가 돌이 되어버린 걸까. 그 이도 피차일반이었다. 요즘 그도 내 집에 부쩍 자주 오기 시작했니까. 내 집에 와서 잠자는 날이 늘어났다면 이유는 뻔하다. 그이가 서울 집에 들어가는 횟수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여의도는 며칠간 동안 오빠 꿈속에서 나온 모양이다. 밤마다 뒤척이며 아주 끙끙댔다. 그는 예비장모님에게 예쁨을 받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었는데 여의도에서 식을 올리겠다는 자기 엄마의 통보에 힘이 빠져 시든 풀 같이 지냈다.
우리는 불행히도 서로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와 오빠가 양가를 봤을 땐 서로 자기 집과 가까운 곳을 원했으니 서운함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했다. 두 엄마는 우리의 속 사정을 모르는 듯 자신의 속상함을 알아달라 아우성쳤다.
괜히 나섰다간 싸움이 커졌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각자 부모에게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그 이유를 세세히 늘어놓았다면, 그 싸움의 화살은 분명 다른 방향으로 틀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싸움을 일으키면 나라가 불탄다는 사실은 역사 속 기록 만으로 충분하다.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 가능한 평화를 오래 지키고 싶었다.
예식장 계약 전 날, 나는 오빠를 설득해서 계약 전 사전조사라는 핑계로 서로 엄마들을 모시고 오겠다는 약속을 따냈다. 말로 안된다면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르기 마련이다. 내가 장녀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막둥이인 내 남자친구는 엄마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걸 어려워했다. 그 이유는 위에 있는 두 누나들 때문이리라. 나는 위에 아무도 없었다. 투쟁에는 내가 강했다.
“엄마! 부탁할 게 있어요. 도와줄 수 있어요?”
“그래, 딸. 내가 뭘 도와주면 되니? 도와줄게.”
“예식장을 한번 구경하려고 하는데요. 엄마도 함께 해주면 좋겠어요. 업체에서 사기 칠지도 모르잖아요. 엄마가 경험이 훨씬 많으니 아는 것도 더 많으시잖아요.”
이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컸다. 나보다 어른인 사람의 경험과 지혜를 빌린다는 말을 누가 싫어할 수 있겠나. 특히 부모는 결혼을 앞둔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 했기 때문에 대화가 순조로웠다.
“당연하지. 엄마가 너보다 더 잘 아는 게 많으니 도와줄게. 예식장 어디니? 혹시 너 남자친구 엄마도 온다니?”
“아뇨. 아직 그런 말은 없었어요. 도와준다니 감사해요. 엄마. 전 오빠 엄마도 올 수 있으면 함께하면 좋겠어요. 전화로 상의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빠르잖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통화로 대화를 나누면 오해도 생기고 불편하니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빠르지. 내가 그쪽과 한번 통화해 볼게.”
엄마의 승낙을 받아낸 순간 속으로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이제 오빠 차례였다. 오빠에게는 내가 신신당부를 했었다. 절대 엄마 앞에서 짜증을 내지 말 것, 그리고 상황이 잘 안 풀리거나 강한 의견이 들어와도 차분하게 대화를 할 것을 단단히 일러두었다. 밖에서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인데 그의 엄마랑 누나들의 말발은 이기지 못했다. 내가 오빠 옆에서 도와줘야 했다. 걱정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면 안 되겠냐고 그에게 물어봤었는데 자기 아빠는 내 엄마 편이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예식장 투어를 하는 당일, 나랑 오빠는 일부러 우리가 점찍어둔 곳만 부모에게 알렸다. 어차피 다른 곳은 볼 생각이 없었다. 이미 전부 다 둘러봤고 견적을 비교해 봤기 때문에 답은 이미 정해진 상황인 셈이다. 여기에서 한번 두 엄마들을 데리고 가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자 도박이었다. 나는 수원에서 엄마랑 차를 타고 출발하였고, 오빠는 서울에서 출발했다. 만나는 곳은 분당, 딱 중간지점이었다. 웨딩홀에 도착하기 전 내내 대략 왜 수원에서 하지 않고 분당에서 하냐는 엄마의 툴툴거림을 들어야 했다. 오빠도 운전하는 내내 자기 엄마가 조수석에서 여의도의 장점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고 자기 귀가 폭행당했다는 말을 했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동병상련이라 느껴지니 뭔가 서로 짠해지는 게 결혼 준비의 장점인 거 같다.
우리가 점찍어둔 장소에 도착하자마다 한눈에 보이는 건물 외관은 두 엄마의 입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구색은 전부 다 갖춰져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예쁘다며 엄마들이 상담실에 걸어가면서 칭찬을 했는데, 나랑 오빠는 서로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서로 조용히 눈빛 교환을 했다.
‘아니, 오빠. 이게 맞아?’
‘그러게. 둘 다 좋아하시네.’
‘그니까. 다행이다.’
오빠가 먼저 앞서서 웨딩홀 상담실 문을 열어주었는데 엄마 둘을 들이고 내가 문 안으로 지나갈 때 내 눈을 맞추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얼굴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오빠 얼굴을 보며 킥킥거렸다. 내 엄마지만 사랑스러웠다.
상담이 걱정한 것과 달리 잘 진행되어서 안도했다. 계약할 때에 두 엄마가 나보다 훨씬 어른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오랜 세월을 경험하면서 쌓인 노련함으로 견적서에 적힌 숫자를 열심히 털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처음에 부른 숫자보다 훨씬 더 좋은 가격으로 날짜를 계약하게 되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것 같았다. 두 엄마가 자신의 아들 딸의 행복을 위해 힘을 합친다면 뭐든 해낼 것 만 같았다. 역시 엄마는 위대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설득을 하려고 함께 데려간 건데 둘이 합심하여 견적까지 야무지게 털어내는 바람에 생각지 못한 일석이조를 누렸다. 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나 보다.
그리고 운전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기 때문에 예식장 위치에 대한 두 엄마의 불만은 해결되었다. 운전하는 내내 주변 경치도 유심히 봤는데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며 하객들도 좋아할 거 같다는 극찬을 받았다. 식당을 둘러보니 밥도 잘 나왔고 깔끔하니 다행이었다. 내 엄마는 잘했다며 나와 오빠의 기를 추켜세웠다. 오빠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오빠의 어깨가 들썩일 정도였다.
우리는 동시에 두 엄마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만큼 잘 살아갈게요.”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결혼은 우리 둘 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 두 가족들이 끼어있는 일이기도 했다. 자녀들이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부모님은 서운함을 느끼기 일쑤였다. 당연한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엄마의 등을 보니 쉽지 않은 일임을 느꼈다. 나는 이 과정을 곧 비워질 방을 정리하는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내가 알던 엄마의 새로운 면모를 보아서 당혹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사랑은 결함을 전부 다 덮어버렸다. 결혼은 두 사람의 일이고 두 가족의 만남이다.
청첩장 속에서도 결혼이 가족들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 경험한 두 문화를 조율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빠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은 깊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