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르지만, 같은 미래를 본다

18화

by명형인

으레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땐 마치 내가 콜럼버스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상대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신대륙을 정복하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연애할 때는 너무 좋았다. 다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새롭고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막상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상대방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알아차려야 했다. 세기의 모험가 콜럼버스가 원주민*들에게는 악덕업주였다는 사실을!


*개척지 또는 이주지 이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을 뜻함


서로 악역을 자처할 때 관계의 금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한 배를 탔기 때문에 의견 충돌로 싸우고, 맘이 상해 등을 돌리거나 토라지기도 했다. 잘해 보려는 마음이 커서 오히려 파국으로 간다는 사실을 오빠가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나보다 훨씬 더한 완벽주의였고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슬롯에서 자라온 선비 같은 내 남자친구. 잘 안되면 대충 넘어가고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하는 나와는 달랐다. 세상이 뜻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 가지 묘바카라을 떠올렸다.


같은 배를 탔으면 원하는 대륙으로 가기 위해선 뱃사공이 필요했다. 패들을 밟고 노를 젓는 사람이 없으면 배는 동력을 잃어 바닷속으로 빠질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침몰을 막아야 했다.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아옹다옹 싸울 바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함께 협력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회사에서도 각각 잘하는 부분을 밀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데, 우리도 못할게 뭐 있을까. 그래서 오빠에게 제안을 했다.



“오빠. 그럼 오빠가 잘하는 부분은 내가 전부 다 맡길게. 나 오빠만 믿는다?”


참 웃긴 게, 미간을 찡끄리던 그가 내가 오빠를 믿는다는 말 한마디에 사르르 풀렸다. 입가를 씰룩거리면서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좋아. 나에게 맡겨!”


“응. 대신 내가 잘하는 건 직접 알아보고 진행할게. 나에게 맡겨줘.”


“그래. 어떻게 되고 있는지 중간중간 나에게 꼭 알려줘야 해.”


믿어준다는 말은 어디서나 통하는 마법의 언어다. 이걸 마다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오빠도 나를 믿어준다니 내심 기분은 좋았다. 나는 이렇게 결혼준비를 하나의 업무 프로젝트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속상해서 울분이 터질 테니까.



결혼준비를 하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 그렇게 역할을 나누고 나니,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신혼집, 일정과 예산 이 세 가지에 자신이 있었다. 업체를 찾고, 협의하면서 서로 원하는 모습의 예식을 기획하는 과정을 실제로 엄청 즐겼다. 가격을 흥정하고 협의하는 것도 내 영역이었다. 오빠가 여기에서 손을 아예 놨는데,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에 내심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실무를 맡았다면, 오빠는 사람 사이를 다루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내 남자친구는 능숙한 분위기 메이커였다. 예를 들어 싸움이 나거나 상대방이 불만을 드러낼 때 오빠 말 한마디면 상황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내가 그 일을 맡았다면 더 크게 화를 내거나 싸움이 붙었을게 뻔하다. 미국에서 관계를 지키는 방법을 잘 알 뿐이지, 한국에서는 영 젬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내 부모님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엄마 아빠가 오빠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됐다. 이걸 보면서 기분이 좋으면 없던 복이 굴러온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이 균형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준비에서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부모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이 때문에 갈등의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시작되기 일쑤였다. 한국의 정서와 이미 공유되고 있는 맥락을 파악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느렸다. 하객의 개념과 부주라는 단어조차도 몰랐다. 특히 미국의 하객 개념은 한국과 아주 달랐다. 오히려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나이의 앞 뒤가 뒤바뀐 셈이다. 그만큼 나는 이 구조에 익숙하지 않았다.



내 부모는 이 상황을 답답해했다. 어느 날은 참다못해 나에게 소리를 빽 지르고 나를 심한 말로 불효자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욕으로 말하면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결혼 준비 하는 내내 많이 들었는데, 중간에 끼어있는 오빠가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엄마 아빠는 화를 내고, 후회하고, 다시 반복했다. 그게 몇 달째 이어졌다.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니 속상함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부모는 한번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는 예비남편을 많이 아꼈다. 나에게서 느끼지 못한 것들을 남의 아들을 통해 위안을 삼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끔 마음속 모퉁이 쪽이 시렸다. 하지만 둘 다 말이 안 통하는 것보단 나았다.



결혼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만약 우리 둘이 서로 같았다면, 조각상처럼 똑같은 존재였다면 준비를 잘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오빠가 사교적인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고양이 상이었기 때문에 그가 나랑 똑같았다면 내 부모님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의 부모님은 오빠랑 달리 나랑 아주 잘 맞았다. 오빠는 자신의 부모님 앞에선 공을 물고 기다리는 처량한 골든 레트리버 같았다. 그때 당시 예식장 위치를 정하는 문제로 남자친구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웨딩홀 위치를 선정하는데 내 부모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중간에 위치가 가까운 수원에서 하고 싶단 말이 나왔지만,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결혼식을 멋있게 준비하고 싶다는 오빠의 말에 엄마 아빠는 사르르 녹았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오빠를 귀여워했기 때문에 협상이 빨라진 것도 있었다.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서울댁에 다녀온 그는 내 앞에서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울상이길래 무슨 일인지 물어봤는데 엄마에게 말하면 자꾸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는 거다. 오빠는 자기 엄마가 너무 서운하다고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빠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아니,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그러는 거지?’ 내가 기억하기로 오빠 엄마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시시한 이유로 안된다 말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날,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오는 주말에 오빠 엄마랑 함께 커피 마시기로 냉큼 약속을 잡아놓았다.



오빠 엄마랑 커피 한 잔을 함께 해보니 뭐가 문제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내 예상대로였다. 의견을 말해도 본인이 납득을 해야만 그 생각이 받아들여지는데, 오빠가 이유로 댄 근거들이 오빠 엄마 입장에선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위치를 선정한 이유와 예식장 내부 구조 등을 세세히 설명해야 하는데 경치가 좋고 교통이 편한 장소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한 모양이었다. 예식장 위치는 분당으로 정하고 싶었는데 오빠 엄마의 논지로는 서울이나 분당이나 교통이 편한 건 매한가지인데 왜 서울로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굳이 분당으로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나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친구 성격 상으론 답답할 만도 했다. 연애 초기 때 나랑 많이 싸웠던 이유가 지금 이 상황과 똑같았으니까.



강아지 같이 순둥한 오빠와 달리 그의 엄마는 새침한 검은 고양이 같았다. 솔직히 많이 찔렸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는 듯했다. 그날 커피를 입으로 마셨는지 코로 들이켰는지 모르겠다. ‘아, 이 사람은 이쁘게 봐달라는 말도 소용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오빠는 분명 자기가 아들이니까 좀 좋게 생각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을 했던 모양이었다.



“양가 부모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인 예식장을 그런 식으로 설득하니 당연히 소용없지!”라고 말하려다 참았었다. 오빠가 들으면 분명 속상할게 뻔하니까. 어떻게 보면 내 엄마 아빠랑 오빠는 참 찰떡궁합이었다. 그냥 기분 좋으면 모든 게 다 좋다며 서로 죽이 맞았다. 사이가 좋다는 이유로 흔쾌히 봐주고 넘어가주는 모습에 비하면 그의 부모님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의 엄마가 원하는 예식장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예식장과 양가에서 원하는 장소의 방향이 같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도마 위에 놓인 협상자리에서 그의 엄마랑 마주하게 되었다.

내 뒤에는 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는 든든한 오빠가 서 있었다.



예식장을 보러 가는 날은 점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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