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에 담긴 온도차

21화

by명형인

우리가 청첩장을 주문할 즈음에도 부모님의 제안은 계속되었다. 내 부모님과 오빠 부모님이 원하는 청첩장 봉투의 수량이 달랐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인쇄물을 주문해야 하는데 계속되는 협상에 지쳐버린 우리는 양쪽 의견을 전부 기각시키기로 결심했다. 한쪽을 희생하는 것보다 양쪽을 떨어트리는 게 더 나을 때가 있었다.


하객 수도 언제는 백오십 명, 이백 명이 되었다가 다시 백팔십이 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깔끔하게 이백 명으로 인쇄 주문을 넣었다. 넘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했다. 나중에 하객이 덜 오면 가격 부분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에서 나온 질문들은 내가 미리 업체들에 연락해서 받아놓은 인쇄 견적을 보여주니 어디론가 쏙 들어가 버렸다.


나랑 오빠는 청첩장을 스스로 만들어서 직접 인쇄 주문을 넣었기 때문에 제일 최저가인 셈이다. 다행히도 부모님의 반박을 방어할 수 있는 카드가 많았다. 어차피 우리가 다 하는데, 우리 돈으로 해결하는 거라 뭐라 따질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우리 둘 사이에서 생긴 서운한 일들은 보이지 않는 카드를 맞히는 것만큼이나 복잡했다. 이젠 서로 무를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사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오빠보다 훨씬 더 일찍 청첩장 모임을 시작했는데 그이는 그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일찍 모이면 그만큼 돈을 앞당겨 써야 하니 경제적이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빠 말이 맞긴 했다. 오빠가 나에 대해 간과하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사람 관계에서는 논리를 내세우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바일 청첩장을 선호하는 그와 달리 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덕담과 함께 초대장을 건네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지인들은 이미 결혼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오빠 말에 의하면 결혼 준비가 얼마나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인지 다들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모바일 청첩장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태라고 했다. 굳이 밥 살 일이 없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며 이렇게 하면 어떠냐는 질문을 얼떨결에 받았다.


오빠는 발이 워낙 크고 넓어서 인맥에서는 문어 발이었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사람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을 버거워하는 편이라 딱 새 발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그래서 딱히 돈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 마당에 왜 이리 딴지를 거는 것인지, 억울한 마음에 입김을 후 불어 촛불을 끄듯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렇게 효율적인 사람이 톡을 보내놓고선 서운해하나?”


실제로 그는 문자로 결혼 소식을 지인에게 알렸는데 속으로는 내심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엄청나게 서운해했는데 그 모습이 내 눈에 뻔히 보였다. 차라리 그럴 바에 나 같으면 솔직하게 말했을 텐데 말이다. 나도 내 남편이 될 사람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이만 내가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말해봤자 싸움만 생길 게 뻔하고 스스로 느끼는 게 제일 빠르다는 사실을 이미 막둥이 동생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왜 서운하냐는 내 말에 오빠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러는 너는 한번 청첩장 모임을 하면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아니?”


오빠는 결혼 준비를 하는데 비용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나는 그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 하지만 내 계획을 먼저 묻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하니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


“오빠, 내가 왜 청첩장 모임에 돈을 많이 쓸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할지 나에게 묻지도 않았잖아. 함부로 판단해 버리면 싸움이 생길 뿐이야.”


“뭘 내가 함부로 판단했어. 청첩장 모임에 밥 사는 거 말고 더 있어?”


“난 애초에 만 원 정도 하는 답례품을 준비해서 청첩장과 함께 드리려고 했어. 내 지인들이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지금 연말 연초라서 시간을 내기 힘들어. 밥을 사는 건 극히 일부뿐이고.”


“…”


내가 또박또박 상황을 설명하니 바로 반박이 들어오진 않았다. 오빠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렇다고 수긍하거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때는 냉랭한 공기 속에서 숨을 쉬기 힘들어 고역이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똑바른 말만 해서 기분 나빠.”


내 남자 친구는 이상하게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내가 너무 바르다며 서운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때에만 오빠의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들을 수 있었다. 바르다는 게 무얼 말하는지 모른다. 일단 청첩장을 빨리 나눠줘야 했기 때문에 그 후 각자 조용히 움직였다.


청첩장을 내 지인들에게 나눠줬을 때 반응은 두 가지였다. 밥을 안 산다는 말에 내심 서운해하는 사람과 기쁘게 내 결혼 소식을 함께 축하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일부 지인들은 청첩장 연락을 기점으로 아예 끊어졌다. 그리고 일부 모임에는 남편 될 사람인 오빠를 불러서 내 친구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만끽했다.


몇 번의 청첩장 모임을 오빠랑 함께했을까. 주말 늦은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는데 열심히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는 오빠의 뒤통수가 내 시야 속에 들어왔다.


까치발을 하고 몰래 등 뒤로 다가가 자리를 잡은 후 거북이처럼 목에 힘을 줬다. 고개를 쓱 내밀어 오빠 어깨너머로 비치는 스크린을 훔쳐보니 지인들과 청첩장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번 만나자고 오빠가 직접 청첩장을 건네주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밝히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생각이 이제서야 바뀌어 버린 것이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지?’ 열심히 추리하고 있었는데 앞에서 탄식이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어 무슨 일인가 하고 다시 오빠 등 뒤에서 상황을 훔쳐보았다.


지인이 정말 고마운데 시간이 안 된다며 모바일 청첩장으로 만족하겠다는 답변이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그때 당시에 오빠가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사람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긴 했다. 그는 30대 후반을 달리는 나이였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고 있는 지인들이 많았고 일에 매진할 시기여서 약속을 잡기 쉽지 않았다. 오빠는 현실을 뒤늦게 자각한 듯했었다.


갑자기 의자를 돌리는 바람에 얼굴이 딱 마주쳤는데 숨을 참지 못해 마른기침이 자꾸 나왔다. 오빠를 몰래 염탐하던 걸 들켰는데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속상하다며 내 친구들이 늦게 연락해도 기꺼이 와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거절이 많아 어쩔 줄 몰라 했었다.


그는 효율과 감정 사이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듯하였다. 나는 효율과 감정이 한자리에 함께 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결혼식 초대만큼은 비효율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덕분에 돈이 들고 내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그만큼 후회는 없었다. 상대방도 내가 시간을 내어준 만큼 기꺼이 그들의 시간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는 나랑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걱정이 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억지로 비트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개입하지 않고 오빠가 하는 대로 놔두었다. 오빠는 반대로 내가 뭔가를 할 때마다 걱정하고 거기서 더 개입하고 싶어 했다. 마치 넘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아빠를 보는 듯했다.


넘어져도 괜찮은데 말이야. 다시 일어서면 되잖아?


청첩장의 온도는 그에겐 현실적으로는 따뜻했을지 몰라도 사람의 체온은 차가웠다. 반대로 나는 현실적으로는 내가 부담해야 할 게 많아 으슬으슬 추웠지만 사람의 따뜻함은 푸근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은 초대장 하나를 쥐고 서로 생각하는 게 달랐다.


금전적인 부담도 사람에게서 오는 서운함도 정신없는 사이 어찌어찌 지나가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서운했나, 왜 서로에게 모질었나 싶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왜 모진 말로 낭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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