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by함지연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필요한 것을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내 차례가 되어 카드를 건넸더니, 마트 직원이 말했다.

꽃게를 30% 할인 중인데, 필요하지 않으세요?

요즘 꽃게 철인지 가는 곳마다 꽃게가 자주 보인다. 크고 싱싱한 활꽃게를 떠올리면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그렇지만 꽃게는 손질부터 까다로운 식재료다.

귀찮아서요.

내가 그렇게 얼버무리며 계산한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데, 카드를 건네주며 하던 직원의 말이 귀에 꽂혔다.

아무리 귀찮아도 주부니까 가족들을 위해 당연히 해야죠.


그 말을 듣고서야 그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였다. 낮에는 마트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퇴근 후, 어쩌면 가정 내의 가사노동, 특히 부엌일을 전담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퇴근하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부엌으로 달려가 밥을 안치고, 된장을 물에 풀어 끓이며 반찬을 만드느라 종종거리는 저녁의 삶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오며 생각했다. 주부라는 말과 가족들을 위한다는 말과 그리고 ‘당연하다’는 말에 대해서.


주부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

한자 표기로는 주인 주(主)에 아내/며느리 부(婦)

2인 가구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여자인 것은 맞지만, 아내도 며느리도 아닌 나는 주부인가 아닌가. 아내와 며느리 노릇은 진작 은퇴했고 아직 엄마이기는 하니, 주모쯤 되려나.


내가 딴지를 걸고 싶었던 부분은, 주부와 가족들을 위해서와 당연하다는 말이 한 문장 안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주부, 그러니까 가정의 안주인은 왜 가족을 위해서 당연히 꽃게를 손질하고 요리해야 할까.


사실 나는 꽃게를 좋아한다. 잘 익어서 희고 폭신한 꽃게살을 입 안에 넣고 씹으면 황홀하다. 얼마든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꽃게가 주재료인 음식을 하지 않은지 십 년 가까이 된다.


십 년 전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전 시가 사람들은 꽃게를 좋아했다. 꽃게 철이 되면 밥상에 자주 올렸다.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된장을 풀어 꽃게 찌개를 만들었다. 명절 전날부터 명절 다음날까지 십수 명이 몇 끼를 먹는 명절 음식이니 그 양이 어땠을까. 양푼 다라이 한가득 꽃게를 죽이거나 또는 산 채로 씻고 자르고 등껍질을 벗겨냈다. 그럴 때마다 꽃게는 열 개의 다리를 경련하듯 파르르 떨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집게다리에 손가락을 물려 눈물이 나게 아팠다. 손질한 꽃게는 된장 양념을 풀어 가장 큰 솥에 넣고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진동했다. 그리고 십수 명이 밥상 두 개에 나눠 앉아 꽃게를 먹어댔다. 주부이니까, 며느리니까, 여자니까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꽃게를 사 와서 손질하고 요리했다. 그리고 밥상을 받은 그들은 실제로 맛있게 먹는다.

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의 밥상이라고 간단하지는 않다. 어린 자녀 셋에게 골고루 단단한 껍질을 벗겨 꽃게살을 입에 넣어주다 보면 정작 내 입에는 한 입도 제대로 넣지 못한다. 좋은 곳은 발라먹고 살이 없는 다리만 남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단계의 난이도 역시 쉽지 않다. 밥상 여기저기에 꽃게 껍질과 이빨로 씹어 으깬 꽃게 다리들이 무덤처럼 쌓여있다.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것도 당연히 주부들의 일. 밥상과 밥그릇과 숟가락에 남은 비린내가 심해서 세제로 닦고 헹궈내기를 반복하는 것도 당연히 주부들의 일.


나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요리한 음식을 받아먹기만 해 봤으면 좋겠다. 느긋하게 꽃게를 해체하고 제일 두툼한 살을 입에 넣어 천천히 씹고 싶다. 가위로 단단한 껍질을 자르고 그 안에 쏙 박힌 쫄깃한 다리 살을 맛보고 싶다. 다 먹고 산처럼 껍질이 쌓인 밥상은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서 냄새나지 않게 싹 씻었으면 좋겠다. 설거지는 언제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길게 누워 TV나 봤으면 좋겠다. 30대의 나는, 40대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60이 되니 그런 상상이나마 하게 되었다.


시장이나 마트에 갔다가 싸고 싱싱한 꽃게를 보면, 사서 찌거나 찌개를 끓여 먹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정 먹고 싶으면 식당에 가서 남이 차려준 음식을 먹는다. 집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것, 손질이나 준비가 간소한 것 위주로만 먹을 생각이다. 시장에 가서 사 와서, 시간을 들여 손질하고 시간을 들여 요리하고, 또 시간을 들여 치우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 너무 긴 시간, 그 일이 내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니, 이제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주부니까 가족들을 위해 당연히 꽃게를 손질하고 요리해야 한다고 했던 그녀도 언젠가 알아채면 좋겠다. 그건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꽃게를 손질하고 요리하고 치우는 그 일이 주부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럴 때 어쩌면 삶이 조금쯤 바뀔 수도 있다. 더는 꽃게를 손질하지 않겠다는 나의 선택이나 퇴근 후, 가족들을 위해 꽃게를 요리할 누군가의 선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가족 구성원 여럿 중에서 한 사람에게 떠맡겨지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나와 그녀가 한 것은, ‘살림’이다. 살리는 일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애씀을 당연히 받아도 안 되고, 자신의 애씀을 여자라서 엄마라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규정해도 안 될 것이다.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해 ‘살림’을 한다. 허둥대지 않고 간소하게 ‘살림’을 한다. 누룽지를 한 그릇 끓이고 고추장과 식초를 넣어 새콤하게 무친 오이와 김치로 저녁을 먹는다. 역시 손질이 귀찮은 꽃게를 사지 않기를 잘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