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by함지연

30년간 지속된 세계가 붕괴하고 무너진 것들 위에서 삶을 재건하느라 분투 중이다.

상처 입은 나 자신을 스스로 돕고 사랑하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고 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병원과 상담센터를 다닐 무렵, 어떻게 참고 견디셨어요,라고 상담사가 물었다. 그제야 내가 했던 것이 ‘참고 견딘’ 것이었음을 알아챘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제는 알겠다. 무거운 짐은 내려놓아도 괜찮았으며 기껍게 도와줄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지난해 독립출판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포토샵과 인디자인을 배우고 1인 출판사를 창업한 후 인쇄소에 주문하고 서점에 입고하는 과정을 그야말로 쩔쩔매며 했다. 원고 쓰는 것도 어려웠는데 바카라을 만드는 것은 더 어려웠고 그렇게 만든 바카라을 판매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사업자등록증을 내러 세무서를 처음 가봤고, 출판사 등록을 위해 구청의 문화예술과를 처음 가 보았다. 독립출판 워크숍에서 강사님이 편집에 필요한 인디자인의 기능들만 족집게 과외를 해주셔도 집에 돌아오면 까먹었다. 그 자리에서는 따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혼자 노트북 앞에 앉으면 경로를 전부 잊고 막막했다.

오늘 배우고 내일 아침이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나 자신이 창피했다. 늙어서 이러는구나, 앞으로 점점 더 이러겠구나. 60이라는 나이 앞에서 자주 좌절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어제의 젊은 나와 오늘의 늙은 나를 비교하느라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졌다.


나중에 그 얘기를 털어놓으니 바카라 만들기 수업에 함께 참여한 후, 나처럼 1인 출판사를 창업하고 바카라을 낸 J 작가님이 놀라며 말했다.

진작 알았으면 제가 도와드렸을 텐데요.

그때 그의 표정에서 순수하게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읽혔다.

그랬을걸.

진작 도와달라고 했을걸.

혼자 쩔쩔맸던 것들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모르는 게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거절당하고 상처받을까 봐 왜 미리 겁을 냈을까.

이번에는 도와달라는 말을 꺼낼 용기를 냈다.

두 번째 바카라을 내기로 마음먹고,

바카라나물 출판사의 김화영 대표님께 편집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도와주는 사람 덕분에 두 번째 바카라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오늘 배운 것을 내일 잊어버리더라도

의기소침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배우고 내일 잊어버리면

모레 다시 또 배우면 된다.

배운 열 가지 중 아홉을 잊어버리고 한 개만 남아도 괜찮다.

그렇게 남은 한 개를 잘해 내는 내가 될 것이다.

하다가 막히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도와주세요.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돕는 사람.

도와달라는 사람을 기꺼운 마음으로 도우러 달려가는 사람.

열 개를 배우고 아홉을 잊어버리고 남아 내 것이 된 한 개를 남을 위해

쓰는 사람.


최근에 몇몇 사람이 내게로 왔다.

바카라을 내고 싶은 사람과 신인 공모전에 글을 내고 싶은 사람과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

도전도 하고 좌절도 하고 실패도 경험했던 사람이기에, 내가 배우고 잊지 않고 남은 한 가지를 그들과 나눌 수 있었다. 현실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제 더는 젊지 않고, 몸의 기능은 점점 약해지고, 머리의 기능 또한 그러하다.

이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속도를 맞춰 나아갈 것이다. 천천히 산바카라하듯 걸어야지.

걷다가 힘들면 풀숲에 앉아 실컷 쉴 거다. 누군가를 초대해서 돗자리를 깔고 소풍을 즐길 거다.


새로운 길 앞에 서면 여전히 머뭇거린다.

실패와 실망이 두렵고 길을 잃을까 봐 겁이 난다.

60이 되도록 미성숙한 내면 아이는 내게 속삭인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것이 길이 아니라 닫힌 문이면 어쩌지.

그렇지만 한 번 더 용기를 내본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고,

문밖에는 귀인이 기다린다.

삶은 내게 줄 선물을 아직 남겨둔 것 같다. 그걸 발견하는 건 당연하게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말년운 좋은 60살 여자의 성장일기는 앞으로도 쭉 계속될 예정이다.

올해가 가기 전, 첫 소설집과 두 번째 에세이 이렇게 두 권이 연이어 출간될 예정입니다.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

불광문고에서 만난 바카라나물 대표님과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8월의 어떤 날 풍경.

노트북으로 볼 때와 출력해서 볼 때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종이라는 물성을 좋아하는 1인,

프린트한 종이만으로도 행복한데 바카라으로 나오면

얼마나 더 많이 행복할까요.

출판사로 넘기기 전, 열심히 수정 중입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