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이 이제 22일 남았다. 친구와 나는 드문드문 전화나 카지노톡으로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12박 13일의 긴 여행은 처음이다. 그러니 가져가야 할 옷과 속옷, 양말의 개수까지 여간 고민이 아니다. 우리가 여행할 도시는 세 곳, 토론토와 오타와 그리고 퀘벡이다. 토론토는 안 춥고, 오타와는 적당하며 퀘벡은 약간 쌀쌀하다고 한다. 각각의 날씨에 맞게 겉옷도 챙겨야 한다. 옷만으로도 이미 화물용 캐리어가 가득 찰 것 같다.
우리는 카지노톡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마음의 소리를 손가락의 타자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손가락이 아프기도 해서 결국 통화 버튼을 눌러서 남은 대화를 이어갔다. 환전은 얼마나 해갈 것인가와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 선물 목록에 대한 이야기였다. 둘이 준비한 선물이 중복되면 안 되고 기껏 싸들고 갔는데 불필요한 것들이라면 받는 사람도 난처할 것 같으니 이왕이면 잘 쓸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하고 싶었다. 나는 친구에게 남동생 가족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으로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 얼굴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 중에 선택하는데 덜 헤맬 것 같았다.
친구는 온라인 게임에 다닌다. 2주간의 휴가를 쓰기 위해 여행 전에 연차나 휴가를 낼 수 없다.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니 나보다는 당연히 여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항공권을 예매하면서 시작된 카운트다운. 50여 일이 남았을 때부터 나는 친구의 바쁜 사정을 아니 미리미리 조금씩 준비하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3박 4일간 일본에 여행을 갔던 일이 있고, 그때도 친구는 여행 전날밤에야 여행가방을 쌌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대로 주섬주섬 넣다 보니 가방은 가득 찼는데, 여행지에서 풀러 놓고 보니, 이걸 왜 넣어왔지 싶은 것들이 여러 개 있어서 함께 폭소를 터뜨렸던 적이 있다. 우리는 겨울에 여행을 왔는데, 친구의 가방에서 여름옷이 세 개가 나왔고 그 옷을 입은 일은 없다. 오히려 너무 추워서 시장에 가서 두꺼운 겉옷을 하나 더 샀다.
성질이 급한 나는 여행 기록을 위한 노트를 진작에 준비했고, 일정과 날씨 정보, 그리고 필요한 준비물을 적기 시작했다. 2주간 집에 혼자 있을 아들을 위해서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서 그것도 차례차례 적었다. 냉동실과 냉장실, 실온 보관용 먹거리를 틈틈이 사서 쟁여놓고, 생활습관이나 전기를 사용할 때의 주의점도 반복해서 알려주니, 아들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여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드디어 여행 가방을 한구석에 펼쳐두었다. 더 일찍 그러고 싶었지만, 너무 오버인가 싶어 참았다. 펼쳐놓은 가방 안에 생각나는 대로 우선 물건을 던져 넣는다. 선글라스와 선크림을 넣고,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르다가 스카프를 한 장 넣고, 용량이 조금 남은 헤어에센스를 던져 넣는 식이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른 스카프를 하는 게 낫겠다 싶으면 가방 안에서 스카프를 꺼내고 새로 고른 스카프는 넣는다. 여행을 갈 때 신으라며 경화가 사준 새 운동화까지 가방 위에 올려두었다. 어제는 약국에 들른 김에 호올스를 사서 매고 다닐 크로스가방에 넣었다. 갑자기 목이 건조해지고 기침이 멈추지 않으면 난감하다(이것도 노화가 시작되며 새롭게 경험하는 일이고, 예전에 어르신들이 가방에 사탕 몇 알씩을 왜 넣고 다녔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일 바로 떠나도 될 만큼 준비는 완료되었다. 날짜가 임박해서 챙겨야 할 것들만 남았다.
친구와 나는 각자의 여행가방 사진을 공유했다. 그리고 서로 할 말을 잃었다.
친구의 사진 아래 내가 남긴 댓글은, '......'
내 사진 아래 남긴 친구의 댓글은, '대박'
친구의 여행가방 안에는 여권 한 개만 던져져 있다. 그나마 여권을 챙긴 건, 여행 며칠 전 여권이 어딨는지 몰라 크게 당황했던 경험을 했던지라 서둘러했던 것.
우리는 이렇게나 다르구나. 사진을 보며 느꼈다. 그런데 우리가 친해졌던 계기는 놀랍게도 너무 같아서였다. 너무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아서 친해졌던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극단적으로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며 놀라고 있다. 또 남았을까, 싶으면 새롭게 깨닫는 다름. 먼 곳으로 떠나 장기간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다름을 알게 될까. 그렇지만 우리가 다를 뿐, 누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름을 받아들이며 우정은 성숙해질 것이다.
친구와 2주간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괜찮겠어요?라고 걱정하던 사람이 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오래된 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이후, 서먹해졌다고 한다. 하필 여행을 떠나기 직전, 싸워서 여행을 취소하지도 못하고 가게 되었다던 지인의 지인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한 달 동안 여행을 하기로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좋아, 하며 안타까워했는데 그 뒷이야기는 어쨌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취소할 수 없어서 여행을 가긴 갔고, 여행 내내 어색했고, 여행을 다녀온 후 손절했다는 슬픈 결말이었던 것 같다.
환전과 선물과 옷차림에 대한 대화를 마친 후, 나는 대화방에 남아있는 친구와 나의 여행가방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싸우지 않고 잘 다녀올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