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와 한로로를 들으며
나에게 어떤 감수성이란 게 있다면, 그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동안 만들어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십 대 중반에서 이십 대를 거쳐 삽 십 대 초반까지, 학교와 회사를 오가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아티스트가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을 노래 가사를 곱씹던 그 시간 동안 말이다.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스파이스에서 시작해 못, 짙은, 브로콜리 너마저, 옥상달빛과 검정치마까지, 9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 활동했던 한국 모던록 밴드들의 음악을 먹고 내 감수성은 무럭무럭 자랐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빅뱅에 이르는 메인스트림 음악도 꾸준히 듣긴 했지만, 왠지 혼자 있을 때는 세상에서 빗겨나 자기 신발만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음악(Shoegazing), 아니면 대놓고 세상을 뒤엎자고 외치는 R.A.T.M같은 밴드 음악을 들으며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오래오래 그 가사가 마음에 남는 음악이 있었으니 바로 자우림 김윤아의 음악이다. 자우림 시절에도 음악순위 프로그램에 오르는 밝고 경쾌한 음악들에 비해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수록곡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김윤아의 첫 솔로 음반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특히 <담>이라는 곡이 그랬다. 사랑 노래로 읽힐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통에 관한 노래다. 나름 살만큼 산(?) 지금에야, 사람 사이에 완벽한 소통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였지만 처음 이 음악을 들었던 때만 해도, 나는 꽤 젊었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 뼘 남짓한 바카라상에서 수년간 입시 공부만 주야장천 하다 갓 세상에 나왔으니, 진실된 마음과 노오력으로 안될 게 없다는, 그건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도 그럴 거라는, 다소 나이브한 긍정 바이브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말랑말랑하고 연한 마음에 소금 뿌리듯 아프게 세상을 가르쳐준 노래가 바로 김윤아의 <담>이었다. 이후로도, 사람을 겪으며 힘든 든 순간마다 이 노래가 생각났다. 사십 대가 된 지금은 너무 당연한 얘기라 흘려들었을 것 같은, '우리 사이에 담이 있다'는 선언이 그때는 왜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훌쩍 시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방식으로 인상에 남는 김윤아의 노래가 있다. <Going Home>과 <키리에>가 그것이다.
<Going Home>을 듣고 있으면 부모의 둥지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삼십 대의 뒷모습이 보였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키리에>는 더 아팠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 울부짖는 노래처럼 들렸다.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고통을 견디며 지옥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마 내가 이제야 그 노래를 조금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이별을 겪고, 상실을 겪고, 어떤 고통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아티스트가 조금 더 어렸다면 이런 식으로 풀어내진 못했을 것 같다. 듣는 입장에서도 지금이라서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으니, 감수성이란 게, 그걸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삶의 경험이라는 게, 살아온 시간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동안 음악을 잘 안 찾아 듣다가 최근 오랜만에 찾아들은 게 한로로다. 일단 한글로 된 가사 자체가 드문 요즘 음악 시장에서 한글로 된 가사에, 그것도 한때 주야장천 듣던 모던록 장르의 신인이 나왔다고 하니 사십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호기심이 일었다. 한국대중음악상도 받고, 인기곡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된 신인. 국문과 출신에 직접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라니. 반짝이는 젊은 아티스트만큼 빛나는 존재가 있을까.
일단 멜로디가 좋고 가사도 풋풋해서 한동안 한로로의 음악을 꽤 많이 들었다. 음반과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자몽살구클럽>이라는 소설도 찾아 읽었으니 꽤 노력했달까. 특히 가장 많이 들은 <사랑하게 될 거야>나 <0+0>은 관계에 거는 기대, 어긋남, 시샘, 소통, 영원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는데 어린 시절 처음 <담>을 들었을 때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단순히 가삿말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노래가 열심히 외치고 있는 관계나 소통이라는 주제에 내가 이미 무심해졌거나 덤덤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서,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사람에게 기대하고 그 기대가 어긋나고 서로 부딪히고 깨지는 그런 감정에서 너무 멀어져 있어서, 그래서 이 노래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걸까.
나는 이제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에게 기대하고, 기대가 어긋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는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고. 그래서인지 마음의 문도 예전보다 단단히 닫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많은 것에 마음이 움직인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것들에 그렇다. 젊었을 때는 사람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사랑과 우정의 어긋남에 오래 마음을 쓰고,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화를 냈다면, 지금은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고, 지인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쓸쓸해진다. 오래된 노래 한 곡에 십 년 전, 이십 년 전의 내가 불쑥 나타날 때도 있다. 어쩌면 감수성이 사라진 게 아니라, 감수성이 닿는 곳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젊음은 지나간다. 예전처럼 모든 것이 새롭지는 않다. 사람에게도, 사랑에도, 세상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어떤 노래는 예전만큼 아프지 않다. 그렇다고 감수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젊었을 때와 같은 곳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뿐이다. 예전에는 처음 만난 사랑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이제는 오래 함께한 사람의 주름에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예전에는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볼 수도 있다. 어쩌면 감수성이란 젊음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만큼 달라지는 마음의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담> 김윤아 (2001)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아요
내가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들었더라면
당신이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내가 알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부서진 내 맘도 당신에게 보이지 않아요
나의 깊은 상처를 당신이 보았더라면
당신 어깨에 앉은 긴 한숨을 내가 보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어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마음의 상처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해도 이젠 소용 없어요
나의 닫힌 마음을 당신이 열었더라면
당신 마음에 걸린 긴 근심을 내가 덜었더라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마음의 상처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해도 이젠 소용 없어요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어요
<Going Home>, 김윤아 (2010)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 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 주기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뤄지기를 난 기도해 본다
<키리에>, 김윤아(2016)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나
가슴 안에 가득 찬 너의 기억이, 흔적이
나를 태우네 나를 불태우네
울어도 울어도 네가 돌아올 수 없다면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꿈이야
불러도 불러도 너는 돌아올 수가 없네
나는 지옥에 나는 지옥에 있나 봐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나
차라리 지금 이대로 눈을 감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수 있다면
울어도 울어도 네가 돌아올 수 없다면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꿈이야
불러도 불러도 너는 돌아올 수가 없네
나는 지옥에 나는 지옥에 있나 봐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나
<사랑하게 될 거야> 한로로(2023)
영원을 꿈꾸던 널 떠나보내고
슬퍼하던 날까지도 떠나보냈네
오늘의 나에게 남아있는 건
피하지 못해 자라난 무던함뿐야
그곳의 나는 얼마만큼 울었는지
이곳의 나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후회로 가득 채운 유리잔만
내려다보네
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그토록 휘몰아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아파했지만 또 아파도 되는 기억
불안한 내게 모난 돌을 쥐여주던
깨진 조각 틈 새어 나온 눈물
터뜨려 보네
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그토록 휘몰아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그토록 휘몰아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사랑하게 될 거야
<0+0> 한로로(2025)
검은 눈동자의 사각지대를 찾으러 가자
여름 코코아, 겨울 수박도
혼나지 않는 파라다이스
앞서가는 너의 머리가
두 볼을 간지럽힐 때
나의 내일이 뛰어오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저 너머의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단다
영생과 영면의 차이를 너는 알고 있니?
멍든 발목을 꺾으려 해도
망설임 없이 태어나는 꿈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저 너머의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단다
아,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