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을 읽다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by영라

어릴 때부터 바카라을 꽤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집에 있던 세계명작동화와 역사 만화, 위인전 같은 걸 즐겨 읽었고, 조금 더 커서는 세계문학전집과 한국 근현대 소설을 읽다가, 방학 때면 열몇 권짜리 시리즈로 나온 아리랑, 태백산맥, 삼국지 같은 바카라들을 하루 종일 읽곤 했다. 이십 대에는 추리 소설과 만화바카라, 다양한 현대 소설을 읽었고, 김애란, 김연수, 히라노게이치로, 히가시노 게이고, 위화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바카라을 하나씩 찾아 읽었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면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때도 먼저 바카라을 찾았다. 지금이야 유튜브나 AI를 활용하지만, 이십 대 때만 해도 무언가가 궁금하면 누군가에게 묻기 전에 바카라부터 찾아봤다. 여행을 준비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알고 싶을 때도 일단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바카라을 골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카라을 읽는 시간이 줄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생활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바카라을 읽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잠깐의 시간이 생기면 바카라을 펼치기보다 아이를 챙기고 살림을 하고, 잡다한 일들을 하느라 시간을 쏟았다.


삼십 대 중반, 해외로 이주한 뒤에는 바카라에서 더 멀어졌다. 한국에서처럼 아무 때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한글로 된 바카라을 고르는 일이 불가능해졌고, 전자바카라이라는 대안이 있긴 했어도 남는 시간에 바카라을 읽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영어를 공부하는 걸 선택했다. 물론 한국을 오가거나 여행을 갈 때면 바카라 한두 권을 챙겨 다니기는 했지만, 확실히 한동안 활자를 읽는 데서 멀어져만 갔다.


그러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다시 바카라을 읽기 시작했다. 읽고 싶은 바카라 목록을 만들고 하나씩 지워가며,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었다. 그렇게 다시 바카라을 읽다 보니, 사십 대 중반에 하는 독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조금씩 굳어간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나며 치열한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성격, 경제 수준, 인간관계, 사는 곳,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어느 정도 정해지고, 편안하게 느끼는 삶의 방식도 갖춰진다. 사십 대는 그렇게 도달한 안정의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 안정된 삶에 머물다 보면 나의 세계는 오히려 좁아지기도 한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곳을 여행하고, 익숙한 것만 찾는 사람으로 서서히 굳어간다.


이렇게 살다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까.

다시 바카라을 읽으며 떠올린 질문이다.


바카라을 읽다 보면 내가 실제로는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특히 그렇다. 인물이 어떤 선택을 앞두고 무엇을 망설였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생각을 얼마나 오래 품고 있었는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그것도 작가가 수없이 고르고 고른 정확한 단어들을 통해서.


나는 그 단어들을 따라 다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자극적인 경험이다. 평온한 내 삶 안으로 전혀 다른 세계가 들어오는 일이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의문을 품는다. 바카라 속의 한 문장이 오래 전의 기억을 불러내기도 하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개의 경험이 머릿속에서 연결되기도 한다.


바카라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결국 내 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놓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바카라을, 우리가 스스로는 보지 못했던 자기 안의 무언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광학 기계에 비유했다. 바카라을 통해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각이나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 발간된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다가 ‘서사적 윤기’와 ‘내장의 관상’이라는 표현을 만났을 때는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지금 이 시대의 한 단면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전에는 막연하게만 느꼈던 것을, 그 단어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바카라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세계를 탐험한다.

그리고 바카라을 덮고 나면 바카라이 남긴 잔상 속에서 다시 나를 발견한다.


그때부터 어쩐지 글을 쓰고 싶어진다. 내가 읽은 이야기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그 바카라을 읽다가 내 안에서 일어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다. 왜 갑자기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는지, 왜 어떤 문장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는지, 내 안에 생겨난 이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지 따라가 보고 싶어진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 일이 아니라,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쓰는 일. 말로 설명할 수 없던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보면서, 비로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발견하는 일.


그래서 바카라을 읽다가 글을 쓰고 싶어졌다. 바카라을 통해 한층 넓어진 그 세계에서, 나를 발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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