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을 땅에 딛고, 비교하며 나아가기
회사를 그만두고부터 확실히 슬롯적 접점이 줄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운동 수업 외에는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거의 없다.
요즘은 인스타그램도 거의 안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도 아주 가끔 확인한다.
대신 날마다 도서관에 출근해 바카라을 읽거나 수업을 듣고 습작을 하고, 대부분... 멍을 때린다.
남편이나 아이가 올 때까지는 사람과 대화할 일이 거의 없지만, 심심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되든 안 되든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 굉장히 바쁘다...)
진도가 안 나가면 조바심이 나고 하루 종일 몇 백 글자를 겨우 쓴 날이면 울적해진다.
그러니까 요즘은, 소설 쓰는 일 외에는, 대부분은 마음 편히 지낸다는 얘기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안 그런 척했지만 그게 뭐든, 누구보다도 잘하고 싶었고, 일 등이 되고 싶어 했다.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 우위에 서는 것으로 자존감이 높아지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가 그랬다.
적당히 공부해서 적당히 좋은 성적을 받는 효율적인 공부를 한 건 아니었고, 꾸준히 성실히 공부하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중학교 방학 때 혼자 독서실에 다니며 다음 학기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나 홀로 선행하기도 했다. 그 기저에는 단순히 공부를 잘하고 싶다기보다는, 다른 아이들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른 걸로 이기는 방법은 몰랐고, 아는 건 공부밖에 없으니 그걸로 이기고 싶었다. 네가 제일 잘한다, 네가 최고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슬롯에 나와서는 기준이 조금 다양해졌다.
회사, 평가, 승진, 연봉 같은 것들이 다는 아니란 걸 알지만, 은근히 그런 것들로 가격표를 매겨 사람들을 줄 세우는 분위기에서, 나 역시 이기고 싶었다. 셈법이 복잡해진 만큼 예전처럼 단순히 일 등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줄 앞쪽에 서는 걸로 자존심을 지키곤 했다. OO님이 우리 팀 에이스지, △△님보다는 OO님하고 일하는 게 안심이 돼, OO님은 □□님보다 일하는 게 더 깔끔하잖아, 같은 말들에 두 발이 땅 위로 두둥실 떠오르기도 했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더 고군분투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한 줄로 세워놓고 등수를 매기는 게 더 어려워졌다.
돈으로 승부 보는 쪽은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리그는 아니었고, 그렇다면 아예 문화적으로 세련되거나 성숙한 쪽에서의 경쟁이 가능성 있어 보였다. 인스타그램 하나를 하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쟤는 뭔가 있어, 쟤는 생각이 깊어, 쟤는 좀 특별해 같은 말로, 포스팅에 달리는 '좋아요' 개수로, 겨우 씩 웃을 수 있었다.
가능성 있어 보이는 영역에서 늘 이기고 싶었다.
어중간하거나 뒤쳐지는 건 싫었다. 일 등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앞에, 더 위쪽에 있고 싶었다.
비교와 경쟁은 당연한 것이고, 이기고 싶은 욕심이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칭찬도 받고 상도 받고 하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장기판의 말처럼 여기저기로 옮겨지면서, 더 이상 두 발이 두둥실 떠오르지 않아서일까. 인생의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 기대와 어긋남, 좌절과 극복을 거치며 사십 대에 이르러서일까.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선 사십 대의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 하나만 붙잡는다.
가능성 있는 모든 것에서 일 등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 삶이 되돌려주는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딱 하나를 위해 쓰게 된다.
그래서 소설 쓰는 일 외에는 마음이 편하다는 말은, 소설을 쓸 때만큼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거 하나만큼은 잘하고 싶어서 그렇다. 이상은 명작이지만 현실은 유치한 비유와 성긴 문장으로 가득한 것이 지금의 내 글이기 때문이다. 보는 눈은 높지만 솜씨는 서투른 '안고수비(眼高手卑)'의 상태라는 걸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소설들을 읽으며 끊임없이 나와 비교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 나도 저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하고, 부러워하는 걸 그만둘 수가 없다. 다른 데서는 비교를 멈췄는데, 오직 소설 쓰는 데서는 마음껏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요즘이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남들보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때로는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 소설 쓰기에서만큼은, 당장 앞서지 못하더라도 계속 머무르고 싶다.
비교하는 걸 멈출 수는 없지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내기 위해 날마다 도서관에 간다.
두 발을 땅에 붙이고, 터벅터벅 걸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