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이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by재인

"왜 이렇게 불안할까."


관계의 언저리에서 나는 유독 자주 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상대의 말 한마디,

미세하게 변하는 거리감,

평소보다 늦어지는 연락.

그 사소한 징후들 앞에서 나는 마치 벼랑 끝에 선 사람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처음엔 그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 생각했다.

다정한 말과 충분한 표현으로 내 불안을 잠재워주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불안의 실체는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이 관계 안에서 내가 다시는 ‘버려지지 않을 존재’라는 단단한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혼이라는 경험은 내게 참 복잡한 흉터를 남겼다.

사실 이혼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마침표였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내린 결단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선택한 이별이었음에도 내 안에는 ‘결국 끝났다’는 상실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내가 내 커리어를 헌신하고 인생을 걸었는데."

"내가 아이를 낳고 지켜온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 회한과 자바카라이 현실의 벽 앞에서 터져 나올 때면,

나는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처럼 작아지곤 했다.

내가 끝낸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끝이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내 안에 깊은 그늘을 만들었다.

다시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라는 존재가 또다시 부정당하면 어쩌나,

이 사람마저 나를 떠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상대의 속도가 조금만 느려져도 나는 혼자서 서둘러 최악의 시나리오를 썼다.

사랑이 식어가는 것이라 오해하며 마음의 문을 먼저 닫아걸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식게 만든 건 식어버린 사랑이 아니라,

나 혼자 먼저 시작했던 ‘이별 예행연습’이었다.

버려질까 두려워 마음을 아끼고 벽을 쌓는 일,

그 서툰 방어기제가 나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에게서 확신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내가 스스로 끝낼 수도 있고,

또 스스로 시작할 수도 있는 주체적인 사람임을 믿는 것.

설령 이 관계가 끝난다 해도,

그것은 내가 버림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위한 또 다른 선택일 뿐이라는 걸 점점 배워 가고 있다.


그 배움에는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 소중한 지인과

실수가 있어도, 아직 부족해도 나를 믿어주는 온라인 게임 상사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하지만 필요할 때, 나를 찾아 주는 우리 아이들이 있다.


관계의 결과가 내 전부를 결정하게 두지 않으려 한다.

나는 누군가를 이토록 깊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사람임을 이제는 확신한다.


불안 때문에 도망치지 않고,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아끼지 않는 것.

나의 어둠과 고통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얻어낸 이 성숙함이야말로,

그 어떤 시련보다 나를 더 우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에 조금 더 안전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당당하게 머무를 것이다.

혼자 먼저 두려워하며 사랑의 가능성을 갉아먹던 날들과는 이제 정중히 작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