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보낼 답장을 지웠다 썼다 반복했다.
'나 보러 올래?'
라고 묻고 싶던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대신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라는 담백한 문장으로 대체하며
나는 또 한 번 나라는 사람을 억눌렀다.
그의 삶에 나는 1순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역시 나의 하루에 전부를 걸 수 없다는 진실을 마주한 그 순간,
나는 어른의 연애가 가진 그 건조한 서늘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서늘함에 마음이 시려올 때쯤,
아끼는 언니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를 보았다.
"우린 각자의 삶에 1순위가 아님을 알면서도, 욕심에 꼭 내 곁에 붙잡아 두고 싶어 결국 놓치는 게 아닐까. 무슨 꿈에서 깨어나는 동화를 읽는 느낌이야. 곧 끝나겠지, 싶은."
타인의 독백인 줄만 알았던 그 문장들이 이내 거울이 되어,
내 안의 가장 취약한 민낯을 비추었다.
40이 넘은 우리에게 사랑은 각자의 삶이라는 짐을 진 채 걷는 도보 여행과 같다.
바카라임져야 할 울타리가 확고한 어른들에게 서로의 인생에서 결코 '1순위'가 될 수 없다는 한계는,
이미 시작부터 예고된 현실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현실과 가슴으로 앓는 감정은 늘 따로 놀았다.
사랑이라는 다정한 온도를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온기가 영원하지 않다면?'이라는 불안이 밤마다 내 목을 죄어왔다.
언니의 말처럼, 이 연애는 '곧 끝나겠지'라는 이별의 예고편을 매일 보며 달리는 시한부 동화 같았다.
이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는 독인가,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인가.
어쩌면 이 불안은 처참한 이별의 순간에 바닥까지 부서지지 않도록,
마음이 미리 놓아주는 서글픈 예방주사인지도 모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었던 단단한 감옥,
혹은 나의 방어기제.
하지만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불안은 상대를 향한 불신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증명하는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더 이상 불안의 파도에 내 하루를 저당 잡히지 않기로 한다.
비록 이 관계의 결말이 언젠가 깨어날 꿈일지라도,
내가 이 불안을 품은 채 오늘을 살아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그만큼 가장 눈부신 빛 속에 서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인생에 1순위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
대신 나는 나의 삶에서 가장 단단한 1순위로 나 자신을 세우려 한다.
내 일상을 흔들림 없이 가꾸고,
내 감정을 정성스레 돌보며,
관계의 끝을 두려워하기보다
현재의 순도 높은 다정함을 만끽하는 것.
그것이 과거의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더 우아하고 견고하게 빚어가는 '성숙의 방식'이다.
끝이 예견된 동화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나눈 진심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거친 삶을 버티게 해 준 순도 100%의 다정함은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구원이다.
나는 오늘,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간절히 기대하는 이 순간을 사랑한다.
변해버릴 미래를 걱정하며 상상을 갉아먹기보다,
지금 내 곁에 머무는 이 온기를 가장 나답게,
가장 품격 있게 지켜내고 싶다.
나를 잃지 않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더 깊어지는 나.
이것이 내가 기억의 퇴적층 위에 쌓아 올리는, 가장 우아한 어른의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