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읽어보다 ③

마음이 먼저 길을 잃는 날

by신은정


이번 주 토요일은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 필라테스를 못 갈 것 같았다. 보충 수업이 가능하다는 선생님 말씀에 목요일 아침 8시 수업으로 변경했다.


아침 일찍 필라테스를 마치고 운동까지 하니 미술 수업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다. 바카라방에 들러 바카라이라도 한 권 살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문득 수제비집 할머니가 떠올랐다.


"요즘 왜 안 와?"


가게 문을 열고 나오시며 반갑게 물으셨다.

친구가 온라인 게임을 잡아 함께 오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혼자는 못 와."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수제비 한 그릇을 먹고 커피를 마신 뒤 그림을 그리러 갔다.


미술특강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간다.

무엇을 그릴까를 선생님과 의논했다.

시작하기전에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여인, 머리위에 무언가를 이고 도로를 걸어다니며 과일을 판고있는 그림을 그릴까 했다.

문든 말이그리고싶어졓다.

난 66년 말띠다.

아버지가 여자가 말띠라서 주민등록상으로는 다르게 올렸다고했다. 관계가 친하게되면 말띠라고 이야기하게된다.

법적 나이보다 사실상 나이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말을 그려보고싶다고 했다.

도화지에 먼저 연습해보기로 했다.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가 그리고도 놀랄 만큼 마음에 들었다.



미술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 약속 잊지 말아요."


남편은 스크린골프를 하며 알게 된 지인과 친하게 지낸다.

우리 부부가 가끔 보신탕을 먹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식사하자며 초대해 주셨다. 지난번에는 고기가 떨어져 흑염소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미리 수육까지 주문해 두셨다고 했다.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초대해 주신 분의 마음을 알기에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남편도 원했기 때문이다.

망설인 채 생각은 게속 저녁 약속을 향하고 있었다.

산후도우미 교육도 신청해야했다. 지난번 신청한것은 대기번호는 2번이었다. 끝까지 기다렸지만 자리가 나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7월 20일 추가 교육이 열릴 수도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둘러 고용24에 접속해 신청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담당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받기로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분명 목적지는 오리역이었다. 출발하기 전에도 "오리역 3번 출구 맞죠?" 하고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야탑역 3번 출구에 서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다시 오리역으로 향해 직원의 친절한 도웅으로 신정을 마쳤다. 배움카드를 사용해서 결제를 할수있는 시스템이었다.


오후 5시 30분, 다행히 약속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했다. 남편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단골손님이라서인지 서비스 음식도 푸짐하게 내어 주셨다. 미리 주문해 둔 수육과 따뜻한 국물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나는 역시 전골이 더 입맛에 맞는 모양이다. 수육을 국물에 담가 먹으며 혼자 웃음이 났다.
식사를 하던 중 그분은 좋은 분이 있으면 소개받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플 때 사인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선뜻 그러겠다고 말하기도,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AI한테 한번 물어봐."
분위기를 맞추려 휴대전화를 꺼내 몇 번이나 질문을 바꿔 가며 물어보았다. 마음에 드는 답이 나오지 않아 다시 묻고, 또 다르게 물었다.


마지막에는 "지금 제 앞에 계신 분입니다. 좋은 말씀도 좀 해 주세요."라는 말까지 덧붙이고서야 웃으며 읽어 드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오리역 대신 야탑역에 내린 이유가 떠올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택적 지각'이라고도 설명했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익숙한 경험과 그때의 마음 상태에 따라 해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날 내 마음은 하루 종일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다.
내키지 않았던 저녁 약속, 분주한 일정, 여러 생각이 뒤엉켜 '오리역'이라는 말을 듣고도 내가 생각한 '야탑역'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길을 잃은 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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