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오래된 상처가 건드려졌나 봐
이른 아침, 뉴질랜드에 있는 막내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엄마, 비행기표가 380만 원에 나왔어."
잠시 표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말했다.
"아빠한테는 오늘 말하지 말고 내일 이야기해. 오늘은 좀 예민할 수도 있으니까."
딸이 물었다.
"엄마, 아빠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딸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몇 번이고 물었고, 결국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딸은 아빠의 입장도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내가 묻는 말에는 왜 대답 안 해줘?"
그 순간, 마음이 서운함으로 기울었다.
딸이 아빠 편을 든다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내 안에 숨어 있던 그늘이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글을 쓰는 일조차 의미가 없어졌다.
'당분간 온라인카지노를 쉬겠습니다.'
그 한 줄을 올릴까.
아무것도 하지 말까.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릴까.
생각은 자꾸만 어두운 곳으로 흘러갔다.
그런 내 감정이 무서웠다.
몇 달 전 우리는 집을 정리했고, 오래된 빚도 모두 갚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편과 휴대전화를 바꾸고, 서로에게 옷도 한 벌씩 선물했다. 이제는 정말 편안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남편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서 오래된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남편은 말했다.
"그 돈이 그 돈인데 왜 달라고 해. 쓸 데가 있어?"
10월에 주겠다는 말이 서운했다.
딸에게 빌린 돈은 이자까지 챙겨 돌려주면서, 정작 나에게는 왜 이토록 인색한 걸까.
필요할 때만 부부는 하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내 목소리를 잃고 살아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무렵 딸이 말했다.
"엄마가 '내 돈'이라고 표현한 건 조금 아쉬웠어."
그 말은 내게 아빠 편을 드는 말처럼 들렸다.
순간 또 한 번, 내 마음은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알 것 같았다.
딸은 누구의 편을 들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이겨 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날 오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눈을 감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막내딸에게 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가 오랫동안 눈치 보고 살아온 거 알아."
"엄마가 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알아."
"엄마를 아프게 하려는 게 절대 아니었어."
그 몇 줄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났다.
딸은 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삶을 이해하려 애써 주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래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 결혼생활을 여기까지 걸어온 이유도 결국은 아이들이었다.
막내를 뉴질랜드로 보낼 때, 학비를 제외한 생활비는 내가 바카라임지기로 마음먹었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보내고 싶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딸은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함께하며 힘겨운 유학생활을 견뎌 냈다.
그 아이가 이제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 애쓰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거창한 위로나 사과가 아니었다.
"엄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 한마디였다.
사람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순간,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이번 일을 겪으며 또 하나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당당해졌고, 오래된 자격지심에서도 많이 벗어났다고 믿었다.
그런데 막내딸과의 대화 하나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제야 알았다.
내 안에는 아직도 건드려지면 아파하는 오래된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숨어 있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왜 아팠는지,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려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오래된 자격지심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고 싶다.
당당하고, 따뜻하고, 멋진 어른으로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