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었을 뿐
운전이 예전 같지 않다.
사고 이후 운전대가 조금은 낯설어졌고, 요즘은 차보다 걷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은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 주겠다고 한다.
나는 "오늘은 괜찮아." 하고 걸어 나선다.
걷는 길은 예쁘지 않다.
공장들이 늘어서 있고, 오가는 차도 많다.
그런데 오늘은 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본다.
공장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를 피해 잠시 멈춰 서기도 한다.
길가에 핀 장미꽃이 눈에 들어오고, 남편이 데려다 키우고 싶다던 고양이도 눈에 띈다.
문득 생각한다.
오늘은 이 길이 어느 공원길보다 정겹다.
길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길을 바라보는 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오포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스무 해가 되어 간다.
당시에도 주변에서는 왜 그런 곳으로 가느냐고 걱정했다.
공장들이 있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우겠느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서현동으로 들어가려면 집은 훨씬 작아졌고, 서울 집을 모두 정리하기에도 여건이 넉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 아이에게 방 하나씩은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포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현실적이고 따뜻한 선택이었다.
시간은 흘러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게도 작은 로망 하나가 생겼다.
걸어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곳.
걸어서 스포츠센터에 갈 수 있는 곳.
차 없이도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삶.
한때는 그 꿈이 곧 이루어질 것 같았다.
오포 집은 딸에게 주고, 서울로 이사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현실을 하나씩 마주할수록 마음은 다른 답을 내놓았다.
빚을 지며 서두르기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금의 삶을 선택하자.
그래서 나는 멈추었다.
아니,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
그래도 내 작은 로망은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다.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스포츠센터에 가는 일상.
언젠가는 그런 동네에서 살아 보고 싶다.
오늘 공장길이 정겹게 느껴진 것도,
어쩌면 그 꿈을 아직 놓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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