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따라 가는 길

② 가비앙, 커피를 배우기 시작한 곳

by신은정


문을 열면 진한 원두 향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오래된 나무 가구의 냄새도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오래전 분당, 가비앙이라는 핸드드립 전문점.


지금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인 카페는 아니었다. 집에서 쓰던 가구와 소품을 하나둘 옮겨 놓은 듯한 투박한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늘 사람이 많았다. 이유는 단 하나, 커피가 맛있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는 발레파킹을 해 주시던 아저씨가 계셨다. 2천 원을 내면서도 사람들은 기꺼이 그곳을 찾았다.


가비앙을 생각하면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가비앙이 들어오기 전 그곳은 매물로 나와 있던 공간이었다. 그 무렵 나는 잠시 분당에서 부동산 일을 도우며 그 자리를 알고 있었다.

가까운 지인도 그곳에 카페를 열고 싶어 했지만 인연은 닿지 않았다. 얼마 뒤 그 자리에 가비앙이 들어섰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카페 하나였겠지만, 내게는 그 시작을 지켜본 공간이었다.

그곳으로 나를 데려간 사람은 친한 언니였다.


"핸드드립 커피 한잔 마시러 가자."


그 시절만 해도 핸드드립이라는 말은 낯설었다.

주문대 앞에 서자 메뉴판에는 처음 보는 이름들이 가득했다.


케냐, 만델링….

언니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마치 오래 알던 사람의 이름을 부르듯 말했다.


"예가체프 한 잔 주세요."


순간 나는 커피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신청하는 줄 알았다.


'예가체프.'

처음 듣는 그 이름이 어쩐지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때는 몰랐다. 예가체프가 에티오피아의 작은 지역 이름이며,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원두라는 것을.


그날 내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커피 이름이 아니었다.

자신의 취향을 알고 망설임 없이 주문하던 언니의 모습이었다.

'나도 저렇게 커피를 알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핸드드립을 배우기 시작했다.


배우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같은 원두 같은 양의 물을 써도 커피 맛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물을 붓는 속도와 온도,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향과 맛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 작은 차이를 알아가는 일이, 묘하게 마음을 가다듬게 했다.


그렇게 시작한 핸드드립이 어느새 15년이 넘었다.


지금도 나는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린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시간은, 나를 천천히 하루 속으로 들어서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절 가비앙에는 덩치는 크지만 무척 순한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딸아이를 데리고 갔던 날, 나는 커피를 마시고 딸아이는 강아지와 한참을 놀았다. 딸아이에게 가비앙은 커피보다 강아지가 있는 카페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즐거움이 하나 더 있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는 커피 알갱이에 초콜릿을 입힌 간식이 신기해 사 먹곤 했다. 달콤한 초콜릿 속에서 퍼지던 커피 향이 참 좋았다. 지금도 가비앙을 떠올리면 그 초콜릿이 먼저 생각난다.


가비앙은 오래전 문을 닫았다.


예가체프라는 이름을 들을 때면, 투박했던 공간과 발레파킹 아저씨, 커다란 강아지, 커피 초콜릿,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예가체프를 주문하던 언니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좋은 커피는 향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그 커피를 함께한 사람과, 그 곁을 흐르던 시간까지도 오래 기억된다.




*강아지는 딸아이에게 글을보냈더니 사진을 보내주어서 다시넣은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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