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왁커피가 열어준 커피의 세계
지인들이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를 다녀올 때마다 내 손에는 어김없이 커피 한 봉지가 들어왔다. 낯선 나라의 흙냄새를 품은 원두들은 받을 때마다 반가웠다.
내가 직접 골라온 커피도 있다.
베트남 여행 중 들렀던 한 커피 매장이었다. 꽤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 했고, 진열된 원두의 종류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곳에서 루왁커피를 만났다.
루왁커피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씨앗으로 만든다고 했다. 족제비똥 커피라 부르는 이도 있을 만큼 별난 사연을 지닌 커피였다. 내가 사 온 커피도 바로 그 루왁커피였다.
한 봉지 가격이 8만 원 가까이 된다는 말에 손이 떨렸지만, 결국 나는 그 봉지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한 모금 머금자 초콜릿처럼 진하고 묵직한 향이 입안 가득 번졌다. 흔히 마시던 커피와는 결이 다른, 고급스럽다는 말이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그 행복을 혼자 누리기 아까워 가까운 이들을 불러 한 잔씩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잔을 건네며 함께 향을 맡던 그 순간들이 어쩌면 그 커피보다 더 오래 남는 맛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같은 나무에서 자란 같은 열매인데 왜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답은 땅에 있었다.
커피나무는 어디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을 품는다. 에티오피아의 원두와 콜롬비아의 원두, 브라질의 원두가 저마다 다른 향과 맛을 지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차이를 그대로 즐기려는 ‘싱글 오리진’ 커피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한 지역, 한 농장의 개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커피다.
반대로 여러 원두를 섞어 만드는 ‘블렌드’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균형을 맞춘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싱글 오리진은 개성을,
블렌드는 조화를 보여줄 뿐이다.
맛을 결정하는 건 땅만이 아니다. 푸르스름하던 생두가 불 위에서 점점 짙어지는 과정, 그 로스팅의 정도 역시 또 하나의 변수다.
살짝 볶은 원두에서는 꽃과 과일을 닮은 밝은 산미가 살아 있고, 깊이 볶을수록 묵직한 쓴맛과 진한 풍미가 자리를 잡는다.
같은 원두라도 어디까지 볶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커피가 되는 셈이다.
베트남에서 만난 그 루왁커피의 깊은 맛도 결국은 그 땅과 그 불의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였을 것이다.
탄자니아를 다녀오며 커피와 함께 사 온 대추야자와 꿀을 떠올려 보면, 땅은 늘 자기만의 단맛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자라온 땅을 닮아가는 것처럼.
이제부터 나는 그렇게 알아간 커피 이야기를 따라, 직접 찾아다니며 마주한 카페들의 기록을 하나씩 적어보려 한다.
낯선 이름의 원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한 잔에 담긴 땅과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나는 이제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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