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따라 가는 길

나는 왜 칸트의 마을을 찾는가

by신은정


수국이 다 져 버렸을까. 아직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저번 주부터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커피를 따라 가는 길》 연재를 쓰며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칸트의 마을이었다.


토요일이라 길이 막힐 줄 알았다. 평일에 갈까, 일요일 아침 일찍 다녀올까 고민도 했다. 그래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식기 전에 소영 언니와 함께 양평으로 향했다.


의외로 길은 한산했다. 늘 차로 붐비던 길이 오늘은 평일처럼 여유로웠다. 창밖 풍경도 덩달아 느긋하게 흘러갔다.



칸트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칸트 동상 앞에서 멋쟁이 여사님 두 분이 사진을 찍고 계셨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언니의 말에 두 분은 환하게 웃으며 휴대전화를 건네셨다. 사진을 찍어 드린 뒤 이야기를 나누는데, 두 분이 수줍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여든셋이에요."
"우와, 정말요? 친구세요?"
당당하게 나이를 말하는 모습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저도 두 분처럼 멋지게 나이 들고 싶어요."


수국을 만나러 왔는데, 수국보다 먼저 아름답게 나이 드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달콤한 커피 향과 갓 구운 빵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언니가 먼저 음료를 주문하려 하기에


"우리 먼저 사색의 길부터 걸을까?"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숲길 곳곳에는 칸트의 문장들이 걸려 있었다. 문득 칸트가 매일 오후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같은 길을 걸어, 이웃들이 그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평생 걸었던 그 길은 지금도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행복의 원칙은 어떤 일을 할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
문장을 읽고 숲길을 걷고, 수국 앞에 걸음을 멈추다 보니 시간은 나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활짝 핀 수국도 아름다웠지만, 계절을 품으며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는 수국 또한 곱게 느껴졌다.
"내년에 잊지 않고, 수국이 가장 아름다울 때 다시 올 수 있을까?"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년에는 꼭 가장 예쁠 때 다시 오자."


그 약속을 하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년에도 우리는 이렇게 함께 걸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마음에 닿는 순간, 오늘 함께 걷고, 함께 웃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리를 골라 앉아 음료를 주문했다. 커피 연재를 쓰러 왔는데도 나는 습관처럼 망고주스를 시켰다. 생각해 보니 칸트의 마을에 올 때마다 늘 그랬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리웠던 것은 커피가 아니라, 이곳에서 느꼈던 편안함이었다.


음료를 마신 뒤 우리는 다시 숲길로 올라갔다. 꽃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데크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쉬었다.
그러다 장난처럼 둘 다 발을 쭉 내밀었다.
"언니, 이것도 찍어 봐."



핑크 슬리퍼와 검은 슬리퍼가 나란히 하늘을 향했다.
별것 아닌 사진 한 장에도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사람은 잠시 나이를 잊고 아이처럼 웃게 되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도 올 때처럼 한산했다. 토요일인데도 평일 같은 여유가 느껴졌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주인은 왜 이곳의 이름을 칸트의 마을이라 지었을까.'
아직은 그 답을 온전히 모른다.
하지만 숲길을 걸으며 문장을 읽고, 수국 앞에 걸음을 멈추고, 좋은 사람과 함께 웃다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이곳은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었다.
올 때는 수국이 남아 있을까 조바심내는 마음으로 왔고, 돌아갈 때는 편안한 마음 하나를 두둑이 품고 돌아갔다.


이제야 내가 왜 칸트의 마을을 찾는지 알 것 같다.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좋은 사람과 함께 웃고, 마음이 쉬어 가는 시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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