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은 그냥 거기에 있다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예수는 말했다.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왜 이렇게 다를까.


온라인 게임이 없었다면 내일 출근할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만두면 된다.

말은 쉽다.


그런데 그 말을 쉽게 실행하지 못하는 마음 밑바닥에는 늘 돈이 있다.

내가 지불해야 할 것들,

내가 지켜야 할 것들,

내가 바카라임져야 할 것들.


백합은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조직의 목표가 있고,

맡겨진 과업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일이 있다.


오늘 김정일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인터뷰를 잠깐 들었다.

돈이 절대 기준이 되는 슬롯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가 말한 병리는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돈이 인간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될 때,

사람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한다.


쓸모가 있는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

손해가 되는 사람,

계산이 맞는 사람.


그렇게 타인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보기 시작할 때

관계는 병들고,

신뢰는 사라지고,

마음은 점점 외로워진다.


사기꾼 이야기도 마음에 남았다.

수고 없이 얻는 유혹.

그 유혹은 마약보다 무섭다고 했다.


사람은 왜 속을까.

속이는 사람이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속는 사람 안에도 욕망이 있다.


내 돈이 몇 배로 불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일반적인 노력 밖의 횡재가

왜 하필 나에게 오는지 묻지 않는 마음.


더 빨리,

더 많이,

더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돈이 주는 윤택한 삶일까.

아니면 더 큰 불안일까.


성경은 하루를 말한다.

오늘의 괴로움은 오늘로 족하다고.


에크하르트 톨레도 비슷한 곳을 가리킨다.

과거와 미래에 붙들리지 말고,

지금 여기에 있으라고.


나는 자주 어제에 묶인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로 달려간다.


“내일 출근하면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그 사이에서 오늘은 자꾸 사라진다.


어제는 기억이고,

내일은 생각이다.

오늘만이 내가 실제로 서 있는 자리다.


그런데도 오늘의 나는 여전히 돈 걱정을 한다.

출근 걱정을 한다.

바카라임을 생각한다.

그만두지 못하는 나를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백합을 다시 본다.


백합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자기를 증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에 있다.


나는 백합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바카라임지고,

때로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다만 오늘 하루만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을 미리 살지 않는 법.

어제를 다시 고치려 들지 않는 법.

지금 내 앞의 하루를 너무 세게 움켜쥐지 않는 법.


백합은 그냥 거기에 있다.


나도 오늘은

조금만 그렇게 있어보기로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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