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앞서 떠나는 사람 앞에서, 나는 2028년의 나를 보았다
이달에 명예퇴직하는 직원과 모닝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딸 이야기를 했다. 스물세 살인데 집에서 휴대폰만 한다고 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라 근심이 크다고 했다. 여러 해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작년에는 손목이 골절되어 큰 수술을 했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일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픈 사람이 찡그리며 꺼내는 이야기는 오래 듣기 어려웠다.
그녀는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나는 선뜻 응하지 못했다.
긴 이야기를 들을 힘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사실은 내가 선을 긋고 있다는 걸 나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부서에 있었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별로 나눈 정이 없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나와 식사를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놀랐다.
“저 이달 말까지만 나와요.”
그 말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날 제가 어디를 가서요. 그럼 커피라도 마셔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알았다.
내가 그녀를 대하는 방식 속에, 내 미래가 먼저 와 있었다는 것을.
나는 2028년에 이곳을 떠난다.
그녀는 나보다 앞서 떠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보다 앞서 떠나는 그녀에게 내가 이렇게 대접하고 있다면,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접받을 수 있겠구나.
그녀는 내게 먼저 온 미래였다.
나는 석별의 아쉬움보다, 이제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먼저 꺼내고 있었다.
그 마음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사람들이 나를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먼저 사람들을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말했다.
사람들은 다 자기밖에 몰라.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끼리 다 해 먹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조금 편했다.
남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덜 아팠다. 덜 외로웠다. 덜 바카라임져도 되었다.
그런데 오늘, 떠나는 그녀 앞에서 그 말들이 거울처럼 되돌아왔다.
나는 정말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을까.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를 들을 마음의 자리를 남겨두고 살았을까.
아니면 나도 결국 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사람을 만나고, 내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관계를 허락했던 걸까.
커피 한 잔은 길지 않았다.
식사도 하지 않았다.
눈물겨운 작별도 없었다.
다만 오늘 나는, 종이학 하나 접듯 하루의 한 장면을 접어본다.
매일 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국수가락 하나 뽑듯 이야기를 꺼내 길게 이어 본다.
나는 2028년에 이곳을 떠난다.
아쉽지 않게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창하게 남길 것은 없을지 모른다.
내 실패가 엮인 이 글들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알았다.
나보다 앞서 떠나는 사람은
내가 언젠가 도착할 자리에서
나를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는 오늘 내 앞에 온 사람이 아니라,
내게 먼저 온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