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횃불, 경첩

byMYNO

“신당에 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거라.”


어떻게든 일어서려는 나인을 사내 하나가 쓰러뜨리고는 작은 칼을 꺼내 쥐었다. 잘 벼린 날에 불빛이 짓뭉개진 채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나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살이 베이고 성대가 잘렸다. 이 간결한 손짓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농군이 논을 매고 장사치가 셈을 하듯 해야만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검붉은 선혈이 이번에는 상처 틈에서 쏟아져 내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나인. 그녀가 내는 소리라고는 상처 속에서 거품과 함께 부글거리는 기묘한 신음이 전부였다. 고통 속에서 버둥거릴수록 흙바닥은 점점 되직해지고만 있었다.


소복만큼 새하얀 저고리 위로 끈적한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비리면서도 역한 냄새가 양녕에게까지 은은하게 닿았다. 분명 기름이었다. 그것은 무명천을 적시며 여인의 속살을 내비치고 있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양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흐트러지지 않은 상투, 붉게 젖은 손끝, 굳게 다문 입술.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보았던가. 결코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분명 저자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양녕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머릿속에 어지럽게 끼었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기분이었다.


나인을 끌고 갔던 내금위였다.


의복은 궁에서 입는 융복이 아니었다. 털가죽으로 된 거친 옷을 입은 모습이 꼭 왈패와도 같았다.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궁 밖에서 마주칠 이들로부터, 아니면 궁 안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상선에게 눈짓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것도 설마 나라의 일인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인지 세자로서의 오만함인지 알 수 없었다. 저들이 내금위 소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양녕은 막연한 자신감을 느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인 이상, 임금의 아들을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


어둠 속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양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너희는 내금위가 아니더냐. 누구의 명을 받고 이리도 흉악한 짓을 벌이는 게야?”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사내들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들은 재빠르게 몸을 틀었다. 방금 나인을 베었던 칼이 이제는 양녕에게 향했다.


긴장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바람이 불며 횃불이 흔들렸다. 일렁거리는 불빛 너머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얼굴이 선명해지는 것을 사내들은 느꼈다. 흐릿하게 보이던 이목구비는 서서히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날렵한 콧날, 깊게 파인 눈매. 그리고 그 위에서 번뜩이는 눈동자.


세자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사내들은 일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살벌한 기세로 위협하던 자들이 이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고만 있었다.


다가오는 이가 세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그들로서는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양녕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혹 아바마마께서 내리신 명이냐?”


사내들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살기를 내뿜던 손끝이 흔들렸다. 서늘한 눈빛은 목표를 잃어버린 채 동료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임금이라는 존재에 대한 반응, 그것은 단순한 당혹감만이 아니었다.


피를 쏟던 나인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그녀는 기괴한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녕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자 저하께서는 지금 불필요한 일에 관여하고 계십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다.”


양녕은 코웃음을 치고는 이내 얼굴을 굳혔다.


“아바마마의 명인지 물었다. 어서 고하거라!”


또 다른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 끝에 나인이 있었다. 숨이 끊어져 가는지 움직임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횃불을 쥔 손이 들썩이자, 양녕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게야. 당장 멈추지 못할까?”


흠칫하면서도 그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분명 사내는 횃불을 나인에게 던지려 했다.


“네깟 게 감히 국본을 무시해?”


결국 손이 멈췄다. 사내는 난처한 기색으로 양녕을 바라보았다. 임금을 호위하는 내금위라지만 세자의 명을 거역한 적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세자가 자신들을 막아선다면,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서 답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참할 것이다.”


“저하, 이 여인은 당장 소각해야만 합니다. 부디 모른 척 지나가 주시옵소서.”


긴 침묵 속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양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술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감히 세자를, 왕의 아들을, 내일의 임금을 무시하다니. 지금까지 모든 이들로부터 떠받들어지던 양녕이었다. 자신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이는 태종과 원경왕후를 제외하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개 내금위 따위가 자신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네놈들이 감히…….”


이를 갈며 사내들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순간, 양녕의 얼굴이 일순간 창백해졌다.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흘러내렸다. 눈앞의 사내들은 물론 손에 들린 칼도 횃불도 모두 시야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양녕의 시선은 오직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인이 일어서고 있었다.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팔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덜거덕거리는 턱, 뒤로 꺾인 등뼈.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두 다리로 땅을 디뎠다.


핏발 선 눈동자가 서서히 까뒤집혀지더니 이내 텅 빈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처럼 주변을 느끼고 있었다. 종묘에서 보았던 괴인의 형상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애벌레처럼 꿈틀댔다. 갈라진 성대 사이로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소리가 아닌 기괴한 잡음.


사내들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일을 그르친 뒤였다.


“으아악!”


나인이 횃불을 든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어깨로 파고든 이빨이 살점을 한 움큼 뜯어냈다. 선혈이 튀어 얼굴을 흠뻑 적시자, 입술에 남아 있던 마른 핏자국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저, 저리 썩 꺼지거라!”


옆에 있던 사내가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허리에 걸려있던 칼자루를 더듬었다. 하지만 손끝이 떨려 제대로 쥐지도 못했다. 이를 악문 그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억지로 굽혔다.


간신히 뽑혀져 나온 칼로 그녀를 모로 베었다.


옆구리에 생긴 칼자국 사이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내장이 삐져나왔다. 그뿐이었다.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 나인은 살점을 입에 가득 문 채 고개를 돌렸다. 어깨를 물어뜯긴 사내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몸을 들썩거렸다. 쏟아지는 피가 적어도 한 됫박은 되어 보였다.


“안 돼, 안…….”


밤공기 속에서 또 다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내의 시선이 양녕을 향했다. 희미하게 떨리는 눈동자. 마지막 남은 의식을 짜내듯 필사적으로 부릅뜬 눈꺼풀. 그 속에는 온갖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두려움, 공포…… 그리고 원망과도 같은.


그들이 왜 나인을 불에 태우려 했는지, 모른 척 지나가달라며 애원했는지 양녕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등 쓸모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처음 나인에게 물렸던 사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고통에 겨워 울부짖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끈이 풀린 탈처럼 머리와 목이 다른 방향으로 기묘하게 꺾여 있었다.


죽어가던 자가 산 사람처럼 일어났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복잡해질수록 양녕의 숨이 가빠졌다.


시간이 멈춘 듯 찰나의 침묵이 뺨을 훑고 지나갔다.


“카하악!”


곧 사내가 이빨을 내보이며 양녕에게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아귀 같은 턱을 밀쳐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사내의 무게는 이제 약관을 갓 넘긴 양녕이 버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등이 으스러지는 통증과 함께 숨이 턱 막혔다. 도포 너머로 차가운 땅바닥이 느껴졌다. 눈앞을 어지럽히던 섬광이 사라지고…… 침으로 번들거리는 잇몸이 지척에서 달각거렸다.


거칠게 숨을 들이켜자 뜨거운 입김과 함께 피비린내가 훅 느껴졌다.


이성적인 사고는 증발해 버린 지 오래였다. 양녕은 사내의 어깨와 목을 밀어내던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에서 이내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양녕은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 그것을 휘둘렀다.


“끄륵.”


기괴한 소리. 사내의 머리가 반대편으로 꺾였다. 양녕은 자신을 짓누르던 몸뚱이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손에 들린 것이 피 묻은 돌덩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내는 곧 다시 일어난다.


종묘에서 보았던 괴인은 미간에 화살이 박히고도 멀쩡하게 움직였으니까.


그때까지도 나인은 고개를 처박고 또 다른 사내의 살점을 뜯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얼굴은 피 칠갑으로 더 이상 알아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양녕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서 주변을 살폈다. 불씨가 아무렇게 나 널브러진 채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어거지를 써가며 막아섰던 횃불.


나인에게서는 아직 기름 냄새가 났다.


-저것들을 가져다 불에 태워라.


아버지가 종묘에서 무심하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저 없이 그것에 손을 뻗었다. 움켜쥐는 순간 열기가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양녕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나인을 향해 횃불을 휘둘렀다.


불은 삽시간에 나인의 몸을 뒤덮으며 살갗을 살라 먹기 시작했다. 과연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까와는 다른 결로 괴성을 내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머리카락이 타고 살이 녹아내리는 노린내가 지독했다.


내금위도 아닌 세자에게 불태워질 줄은 그녀 역시 알 수 없었겠지.


종묘에서 보았던 괴인처럼, 그리고 나인처럼 흉물이 되어버린 두 사람. 양녕의 입에서 탄식이 작게 터져 나왔다.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굶주린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그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눈동자를 천천히 옆으로 굴렸다. 낡고 썩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나무문. 그 너머로 반쯤 부서져 버린 아궁이.


양녕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전력으로 내달렸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사내들이 몸을 던졌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주위로 퍼져 나갔다. 임금을 지키던 자들이 이제는 그 아들의 고기를 탐하고 있었다.


“큭……!”


머리카락을 잡아채듯 도포 자락이 억세게 뒤로 끌렸다. 양녕은 고름을 뜯어내듯 풀어 옷을 집어 던졌다. 세자로서의 위엄은 내팽개쳐진 지 오래였다.


숨이 차올라 폐가 찢기는 듯했다. 절벽 끝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양녕을 재촉하는 감정은 공포였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는 순간 저들에게 물어뜯겨 죽으리라는 공포.


그리고 어쩌면, 아니 분명 저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나무문을 밀친 양녕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목덜미로 거친 손톱이 느껴지고, 거칠게 닫는 문틈 사이로 손 하나가 끼어 꿈틀거렸다. 사내는 아귀힘으로 문을 열어젖히려 했다. 자꾸만 벌어지는 문짝을 양녕이 반대편에서 온몸으로 짓눌렀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어깨를 타고 전해졌다. 옅은 피 맛이 혀뿌리에서 돌았다. 이를 악문 그가 하체에 힘을 주어 손을 밀어냈다.


쿵, 하는 충격음. 문이 닫히기 무섭게 양녕이 빗장을 걸어 잠갔다.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치는 그 내부는 평온했다. 깨진 옹기 몇 개와 썩은 장작더미가 안에 있는 전부였다.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아 바닥에는 잡초마저 자라나 있었다.


“크악, 크하악!”


바깥에서 괴성이 끊이지 않았다. 안에 고기가 있다. 그렇기에 둘은 문을 부수려 몸부림쳤다. 밀봉된 상자의 포장을 뜯듯, 뚜껑을 열듯.


문설주가 거칠게 삐걱거렸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흙벽에서 가루가 우수수 흩어져 내렸다.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가시는 양녕.


이윽고 녹슨 경첩 하나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MYNO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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