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누워있어야 한다.”
이토록 마땅한 말이, 어느새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초여름의 기운이 서서히 종묘 정전을 감싸고 돌았다. 뜨거운 볕이 박석을 달구었고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례악과 함께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제관 하나가 나직한 음성으로 제문을 낭독했다.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향부터 호를 그리며 잔을 채우는 술마저 엄숙한 것이, 감히 숨소리조차 편하게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양녕은 따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불편함에 옴짝달싹하는 몸을 따라 소매가 흔들리는 사이 그는 잠시 눈을 감고서 입술을 이기죽거렸다.
“이럴 시간이 있으면 노루라도 한 마리 더 잡겠는데.”
지금 당장 말을 몰아 사냥을 나간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나무 사이를 누비며 산짐승들을 잡고 시원한 계곡에 이르러 목을 축일 수 있다면. 양녕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더욱 사람다운 일이었다.
옆에 있던 그의 어머니, 중전 민 씨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곧이어 태종의 시선이 날카롭게 양녕에게로 향했다.
“승하하신 태상왕 전하의 첫 제례다. 세자는 언행에 신중하라.”
아버지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에 양녕은 머쓱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가까이에서 그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효령과 충녕.
동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효령은 묵묵히 제 형을 바라보았고, 충녕은 나무라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떼었다. 양녕은 피식 웃었다. 아버지의 타박에 움츠러들 법도 했지만,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궁녀들이 술렁였고 몇몇 신하는 몸을 움츠렸다. 소리는 분명 정전의 오른쪽, 동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양녕의 시선이 그 방향으로 향했다.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기이한 모습이었다. 헤진 옷에 머리가 산발한 그의 피부는 창백했고 두 눈에는 공허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흐느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더니, 사내는 괴성을 지르며 제례복을 입은 신하에게 달려들었다. 검고 투박한 치아가 목을 물어뜯었다.
순식간에 선혈이 사방으로 퍼지고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내관들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궁녀 몇몇이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는 사이에도 태종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 광경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보다 분노와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저하!“
효령과 충녕이 동시에 외치며 양녕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양녕, ‘이제’는 전주 이씨 가문의 장남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어 내일의 군왕이 될 세자였다. 연약하게 동생들 뒤에 숨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아니, 따분했던 차에 도리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까지 했다.
양녕은 뒤이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익위사 무사로부터 활을 빼앗듯 낚아챘다. 그러고는 동생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효령과 충녕은 내 뒤로 물러서거라!
양녕의 손이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였다. 줌통에 걸린 화살로 사내의 이마를 정확히 겨누었다. 보이는 건 노루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힘껏 당긴 시위를 놓았다.
곧이어 사내의 머리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
그렇지, 양녕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데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바로 했다. 화살이 분명 이마 깊숙이 박혀 있는데……. 양녕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순간, 사내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 흉물의 사지를 끊어라!”
사내가 양녕에게 가까워지는 모습에 태종이 다급히 외쳤다.
내금위가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차가운 금속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 주인의 말을 따랐다.
사내의 팔이 잘린 채 하늘을 날았다. 땅에 떨어졌어도 그것은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며 퍼덕거렸다. 마치 갓 잡은 물고기처럼.
이어 두 다리마저 잘려 나갔다. 몸뚱이만 남은 괴인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 위에 엎어져 버둥거렸다. 마치 아직도 살아 있으려는 듯.
양녕은 숨을 삼켰다.
눈앞의 광경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꿈틀거리는 사내. 사람의 형상을 했지만, 과연 저자를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뒤이어 사내에게 물렸던 신하가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목덜미가 뜯겨 나가 머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그의 입에서 낮고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아니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태종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 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금위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기괴한 사내처럼 변해버린 자는 정5품 예조정랑의 신분이었다. 종6품에 불과한 내금위들에게 상관을 죽이라는 명령은 가볍게 따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 하오나 전하…….”
내금위들이 주저하며 태종을 바라보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어명이다!”
이 나라의 임금이었다. 스승인 포은의 머리를 으깨고 숙부 삼봉은 물론 세자였던 이복동생을 죽이면서까지 스스로 왕이 된 사내였다. 서릿발 같은 명령에 내금위들도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서 칼을 힘껏 쥐었다.
단칼에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베어졌다. 그 역시 사지가 잘린 채 바닥 위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장내에 침묵이 돌았다.
태종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내금위로부터 건네받은 칼을 높이 치켜세웠다. 그리고 단칼에 목을 내려쳤다.
하지만 이조차도 끝이 아니었다.
잘린 머리는 바닥을 구르며 여전히 입을 끔벅거렸다. 성대가 끊어져 나오는 기괴한 신음만이 고요 속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이 끔찍한 광경에 사람들은 더욱 뒷걸음쳤고, 양녕은 숨을 삼킨 채 태종을 바라보았다.
태종에게는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 칼을 내금위에게 돌려주며 짧게 말했다.
“저것들을 가져다 불에 태워라.”
곧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양녕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그것들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짐승처럼 사람을 물어뜯는 사람, 사지 없이 버둥거리는 몸뚱이, 무정하게 목을 내려치는 아버지.
방금 전 끔찍한 광경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세자.”
태종이 나직이 양녕을 불렀다.
퍼뜩 정신을 차린 양녕이 고개를 돌리자, 태종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제례가 미처 끝나지 않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라.”
태종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제단 앞에 서 있었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제례복. 그것은 참극 따윈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아니, 오히려 이 사단조차 종묘에서 거행되는 의식의 일부라고 말하는 듯 했다.
여전히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뺨에 닿았으나 아까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진 못했다. 양녕은 제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말없이 발걸음을 떼었다. 주춤주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바닥을 디디고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내는 다시 엄숙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신하들이 하나둘씩 흐트러진 자세를 가다듬으며 다시금 몸을 낮췄다. 비명을 내질렀던 궁녀들조차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애써 감추며 평정심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바닥에 선명하게 남은 핏자국을 제례악이 무심하게 덮었다.
그럼에도 종묘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떨어져 나간 팔과 다리는, 그리고 사지가 분리된 몸뚱이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서서히 그 움직임이 잦아드는 모습은 흙바닥을 기어다니는 지렁이가 떠오르게 만들었다.
하얀 면포로 그 모습을 가린 흔적을 내관들이 부리나케 치우기 시작했다. 제례를 방해하지 않으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종묘의 모습은 더욱 기괴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양녕은, 더 이상 제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눈총을 느끼면서도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깨닫지 못한 채.
그날 밤, 어둠이 깊게 깔린 궁궐.
구름에 반쯤 가려진 달빛이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밤바람이 궁궐의 지붕을 스치며 나뭇잎을 흔들었다. 그리고 아득하게 들려오는 부엉이 울음소리. 낮보다 고즈넉한 밤이었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불길한 기운을 부추기고 있었다.
태종이 피곤한 듯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그의 신경을 묘하게 긁고 있는 탓이었다.
일렁이는 촛불 너머로 양녕이 제 아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효령과 충녕이 그 뒤를 이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임금이 침소에 들기 전 문안 인사를 올리는 자리였다.
“아바마마, 괜찮으십니까?”
효령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태종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그사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양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온데 아바마마. 낮에 있었던 그 일은…….”
태종이 그 말을 자르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세자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있는 일이니.”
양녕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다니. 세자로 바카라봉된 이래 적잖은 의식과 의례를 경험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지.
태종은, 조선의 임금인 자신의 아버지는 학문을 닦는 일 외에 양녕이 관심을 두는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릴 때부터 활쏘기에 몰두하다 보면 여지없이 꾸지람을 내렸고 정치나 학문에 도통 흥미를 보이지 않는 자신을 무능하다 질바카라했다.
학문이 아닌 것을 물어보는 자신을 언제나 한심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지난날의 기억이 하나둘 겹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반항심에 다시 파문이 일었다. 양녕의 가슴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의 목을 물어뜯었습니다. 그것도 신성한 종묘에서요. 거열을 하듯 사지를 잘라냈음에도…….”
양녕은 말을 멈추고서 생각을 정리하려 잠시 숨을 골랐다. 곧이어 조용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살아있었습니다. 헌데 어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태종과 양녕의 시선이 허공에서 엇갈렸다. 잠시 이어진 정적. 태종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양녕의 질문에 답을 하기보다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따름이었다.
“대학연의를 배우고 있다 들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태종은 깊이 외우고 있는 듯한 구절을 읊었다.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고 재친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 이 뜻을 아느냐?”
양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바카라보다는 말을 타는 것이 더 즐거운 삶이었다. 공부를 하기보다 기방에서 술을 퍼마시는 날이 더욱 많은 소년이었다. 태종이 툭, 하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면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쾌한 건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그 눈빛에 담긴 기대와 확신을 알기에, 양녕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대학의 도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충녕의 말이 옳다.”
뒤에서 들려오는 셋째 아들의 목소리에 태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릇 임금이란 군왕이기 이전에 유자여야 한다. 허나 바카라 읽기는 멀리하고 사냥과 활쏘기도 모자라 이토록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쏟으니, 이것이 어디 내일의 군왕에게 어울리는 행실이더냐?”
양녕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태종은 자신이 반항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무안을 주었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대답을 충녕에게 받아내며 입을 막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타박을 들을 때마다 반항심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마침내 참았던 감정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토록 유학을 중시하는 분께서 지난 무인년에는 어찌 직접 칼을 드셨습니까? 오늘은 대낮에 신하를 참하기까지 하시고요!”
태종의 표정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감히 누구도 고개를 들어 임금을 바라보지 못했다. 침전에 있던 내관과 궁녀들은 몸을 한껏 움츠리고만 있었다. 친아들인 효령과 충녕마저 서로를 바라보며 침을 삼키고만 있었다.
무인정사, 왕자의 난은 태종에게 있어 무엇보다 예민한 과거였다. 어느 누구도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전주 이씨의 장자가, 조선의 세자가 면전에 대고 이를 언급했다.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겁박한 날을.
“저, 저하…….”
효령이 가늘게 제 형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양녕은 이미 물러설 시기를 놓친 모양새였다.
“세자!”
태종의 목소리가 침전을 가르듯 울렸다.
냉랭했던 공기는 이제 아예 얼어붙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찰나의 적막을 깨는 것은 양녕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침 소리였다. 가벼운 헛기침이 아니었다. 폐 깊숙이 끄집어내듯 끔찍하게 갈라지는 소리. 그것은 비명과도 같았다.
태종과 양녕의 시선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동시에 향했다. 불길한 직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얼굴이 창백해진 나인 하나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고 입술 사이로 선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경련하는 몸. 그리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숨소리.
“아닙니다. 저는, 아닙…….”
나인의 눈동자가 절박하게 흔들리며 태종을 향하고 있었다.
MY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