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곤, 용상, 동궁

byMYNO

바깥에서 낮고 긴 대라 소리가 들려왔다. 소라로 만든 나발에서 시작된 공기의 떨림이 양녕에게까지 닿고 있었다. 높낮이 없이 하나로 이어지는 투박한 음색. 파루를 치기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각, 밤공기를 타고 날아오는 그것은 탁한 기운 하나 없이 선명했다.


괴성이 멈췄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했던 문이 고요를 되찾았다.


날숨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기약 없이 찾아온 침묵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목이 베인 나인이 산 사람처럼 일어섰고 갑사들은 자신을 물어뜯으려 달려들었다. 직전까지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죽음. 헌데 도끼로 내려찍듯 뚝 끊긴 지금은 양녕에게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찰나의 정적을 참지 못하고 끔찍한 소리가 무심하게 터져 나왔다. 무언가 부러지고 쪼개지는 파열음. 사내들은 아까와 다르게 무력했다. 짐승 같은 울부짖음은 몇 차례 끊어지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양녕은 주춤주춤 문에 다가가 손을 짚었다. 밖을 볼 수가 없어 귀를 대고 기척을 느꼈다. 오한이 여인의 손길처럼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으아악!”


문이 폭발하듯 넘어지며 양녕을 덮쳤다. 뒤로 주저앉은 그가 처음으로 마주한 건 인육을 탐하던 사내들이었다.


부서져 있었다. 턱뼈는 어긋난 채 주저앉았고 비틀린 팔다리는 살과 뼈가 제멋대로 꺾여 너덜거렸다. 군데군데 선명하게 드러난 상처와 그 사이로 끈적하게 흐르는 피. 깊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근육의 결과 반대로 예리하게 잘린 흔적이었다.


그들은 버둥댔다. 짓이겨져 다물어지지 않는 입이 덜그럭거리며 침을 흘렸고 눈알은 이리저리 굴렀다. 뼈와 근육이 철저하게 파괴된 탓에 몸뚱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뿐이었다.


사내…… 아니, 그것들은 완벽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그 위로 툭 던져진 횃불이 일렁거렸다. 조금씩 육신을 삼키는 불빛 너머로 뒤편 하늘만큼 검은 철릭과 흑립이 비춰 보였다. 세 개의 형상이었으나, 그들이 사람인지 양녕은 가늠할 자신이 없었다.


“사, 산 놈들이냐?”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미동도 없는 모습. 양녕은 뻣뻣하게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살아 있냐고…….”


“가서 네 아비에게나 물어보거라.”


설명도 없이 담담한 목소리. 양녕은 두 눈을 치켜세웠다. 분명 자신을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허면 태종을 아버지로 둔 사실도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아비라는 천한 말을 입에 담았다. 임금을, 나라의 군왕을 이리 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역심을 품고 있지 않고서야.


공포를 밀어낸 감정은 분노였다. 임금을 조롱하고 왕실을 부정했다. 세자, 왕의 장남…… 자신이 가진 자리를 업신여겼다.


“지금 누구를 두고 하는 소리인지 알고 지껄이는 게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흑립 아래 동공이 번뜩였다. 등잔불을 닮은 시선이 양녕을 꿰뚫었다. 공경도 격식도 깃들지 않은 낯빛. 속이 보이지 않는 차분함에 발걸음이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형상의 손에 들린 물건이 무엇인지 시야에 들어왔다.


편곤이었다. 철쇄로 쇳덩이를 엮은 장대를 휘둘러 흉물들을 이리 만든 것이다. 그렇게 피와 살점이 엉겨 붙은 자편이 다시 쓰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안군에 대해서는 너보다 우리가 더 잘 알 것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태종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이는 조선에 존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용상에 앉아 있던 시절, 그저 다섯 번째 왕자에 불과했던 아버지가 받은 군호. 정안군.


양녕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자들은 아버지를 임금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시체를 시체로 보지 않았으니, 정안군이 너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무슨 말인지 다그치려 했다. 하지만 형상들은 무심하게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갈 뿐이었다. 붙잡으려 해도 멈춰 서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생전 처음 겪는 굴욕감.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새끼처럼 꼬여 마음을 짓눌렀다. 양녕은 어두워지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가서 네 아비에게나 물어보거라.


바늘 같은 한마디가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종묘에서도 그랬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아버지는 놀란 기색 없이 내금위에게 명을 내렸다. 이미 흉물을 본 적 있는 사람처럼. 그렇다면 대체 아버지는 저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아버지가 만든 조선과 내가 아는 조선은…… 과연 같은 나라가 맞는 것인가.


양녕은 부서진 아궁이 위에 걸터앉았다. 사내들을 살라 먹으며 몸집을 불리는 횃불이 안을 밝히고 있었다. 섬뜩한 모습에도, 그것을 섬뜩하게 여길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아득해져 눈앞의 광경조차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문득 희미하지만 날 선 금속성이 다시 귀를 스쳤다. 날이 선 쇠가 미세하게 긁히는 소리. 칼끝이 스치듯 짧고도 날카로운 울림.


저들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태종은 바카라장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누렇게 뜬 닥지가 바스락거렸다. 칠흑만큼 간결한 문자에서 희미하게 먹 냄새가 났다.


날이 밝을 때는 신하들로 가득 찬 어전이지만, 흔들리는 촛불에 기대어 용상에 앉은 그의 앞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읍하는 백관 대신 불빛에 옅어진 어둠이 태종 앞을 채우고 있었다.


글을 따라 눈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정제된 숨소리.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버릇처럼 하던 일이었다.


적막은 오래가지 않았다.


거친 손길이 문을 밀쳤다. 벌컥 열린 틈 사이로 밀려든 밤공기에 촛불이 몸을 떨었다. 내관에게 고하라는 예조차 없이 성큼 걸어 들어온 이는 양녕이었다.


서서히 고개를 드는 태종. 침침한 듯 깊어진 동공에는 마음이 없었다.


“세자의 무례가 점점 도를 넘어서는구나.”


“그 나인, 아바마마께서 명하신 겁니까?”


제 눈을 피하지 않는 아들에 태종은 양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바카라을 덮었다. 손등에 진 잔주름이 전보다 그늘져 있었다.


“충녕과 강독을 하지 않고 출궁했다 들었다. 그새를 못 참고 기방에서 또 술을 퍼마시다 왔느냐?”


실망 섞인 질바카라에도 양녕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그 덕에 보았지요. 내금위가 궁 밖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를요.”


태종이 입술을 멈칫했다. 찰나와 같은 침묵. 하지만 그는 이 짧은 순간이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내 글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 이르지 않았느냐. 헌데도 세자는 자꾸만 어긋나려고만 하는구나.”


“나인이 변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종묘에서 보았던 그놈처럼요. 아바마마께서 그리 만드신 겁니까?”


양녕이 아버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하지만 태종은 대답 대신 시선을 돌려 심지를 응시했다. 불에 휘감기고도 끝내 타지 않는 실. 이따금 그것이 용하다고 여겼었는데……. 왜 지금 이 상념이 다시 떠오르는지 그조차도 의문이었다.


태종이 길게 들이마신 숨결은 가슴 속에 오래 머물다 쏟아져 나왔다.


“세자의 행실이 이토록 방자하니, 내 더 이상 묵과할 수가 없다.”


“아바마마께서 이리도 답하지 않으시니, 제가 직접 내금위장을 불러 문초라도 해야겠습니까?”


그 오만방자한 말에, 태종의 무심함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세자!”


“아버지!”


거친 숨소리가 어전을 가득 메웠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궁인들조차 숨을 죽인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손톱이 움켜쥔 주먹에 파고들 정도였고 시퍼렇게 날 선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심지에 붙은 불이 흐트러진 공기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오늘의 임금과 내일의 군왕. 왕과 신하. 그저 아버지와 아들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들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대체 그자들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누구를 이르는 말이냐?”


“나인에게 물린 내금위를 도륙 낸 자들 말입니다. 검은 철릭에 편곤을 쓰는 세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윽고 서바카라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마루에 부딪히며 퍼지는 둔탁함. 발밑으로는 불빛이 닿지 않아 제첨마저 흐릿했다. 그것을 도로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태종은 부릅뜬 눈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자들과…… 만났다고?”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양녕이었다.


도무지 얼굴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아버지였다. 양위를 선언하며 어린 자신을 돌바닥에 꿇렸을 때도, 제 처남들에게 자결을 명할 때도 속을 내보이지 않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 균열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경악. 그것은 경악이었다.


“설마…….”


길어지는 정적을 깨고 태종이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양녕은 비로소 알아차렸다. 답하지 않으면서도 이미 답을 주고 있음을. 아버지도 그들을 알고 있다.


-정안군에 대해서는 너보다 우리가 더 잘 알 것이다.


문밖의 목소리가 귀에다 다시 속삭이는 듯 했다.


“아니다, 아니야. 그놈들은…….”


다시 말을 붙이려는 양녕을 태종이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아비는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 것이나, 지금은 아니다. 그저 못 본 듯 지나치거라.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다.”


“그럴 수는 없지요. 아버지의 성정을 물려받아, 갖고 싶은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하니까요.”


퉁명스러운 대꾸에 태종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졌다. 다시 서리가 맺히는 낯빛. 은연중에 스며 나오던 감정이 완벽하게 걷혔다. 마치 해가 뜨고 난 뒤 사라지는 안개처럼.


“제멋대로인 성미를 내 앞에서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용상에 앉아 있던 그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밤이 지나도록 그 무게를 버텨내던 나무가 삐그덕 신음을 흘렸다.


“갖고 싶은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그게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더냐? 권세를 원하면서도, 무게를 짊어질 생각은 조금도 없구나.”


앞으로 발을 내딛는 동안 곤룡포에 수놓인 용이 태종을 따라 흔들렸다.


작은 불빛이 고작인 어전이었다. 그마저도 꺼진다면 사방을 가늠하지 못할 만큼 불완전한 공간. 이 작은 방을 지탱하기 위해 지금껏 쌓아 올린 시체가 몇 구인지 미처 다 세어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묻어놓았던 업보를 양녕이, 자신의 후계자가 들춰내려 하고 있었다.


“네가 진정 가진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하면서.”


서늘하게 양녕을 내려다보았다. 방종하고 쾌락을 좇는 장남. 자식 셋을 먼저 보내고 다시 얻은 네 번째 아들. 아비는 비틀리는 심사를 애써 감췄다. 촛불을 마주한 그림자가 태종의 뒤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음영이 자신을 압도함을 양녕이 느낄 무렵, 어명이 지엄하게 떨어졌다.


“세자 이제는 동궁전에서 근신하며 지금껏 미루었던 학문을 닦아라. 닦으면서 세자의 본분이 무엇인지 뼈에 다시 새기도록 하라.”


임금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거칠어져 있었다.


“아직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양녕이 고개를 쳐들었다. 항상 자신을 바카라망하면서도 끝내는 패배하던 아버지. 부성을 숨기고도 이따금 자신을 불러 수라를 함께 들던 아버지. 하지만 지금 보이는 눈빛은 아들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하를 굽어보는 군왕의 것이었다.


“아버지!”


태종은 손을 뻗어 어전 밖을 가리켰다.


“세자를 동궁전으로 끌고 가라!”


다시 벌컥 열리는 문. 이번에는 융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내금위가 들어와 세자의 두 팔을 붙잡았다. 그들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긴 시간 단련을 해왔을 터였다. 양녕을 결박하는 표정에 힘든 기색이 없었다. 온몸을 비틀며 저항해도 손아귀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호통에 차마 움직이지 못하던 사내들과 다르게, 어명을 직접 받은 그들은 머뭇거림 없이 양녕을 어전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태종은 동요가 없었다. 이미 예정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처럼 감정의 기척도 보이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놔라, 이놈들! 감히…….”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과의 언쟁이, 그 아이가 쏟아낸 의문이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적막만이 남았다. 닫히지 않은 문 너머로 조용히 명을 기다리는 상선. 하지만 고개를 작게 내젓는 태종에 그는 허리를 숙였다.


조용히 문을 닫는 나인들의 손길을 마지막으로 임금은 다시 혼자 남았다.


용상에 다시 앉아 떨어진 서바카라을 주웠다. 끝내지 못한 독서를 애써 다시 이어 나가려 했다. 하지만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잊힌 기억처럼 모두 지난 일이라 여겼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발밑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흐릿하게 남은 흔적이 다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마주했다. 태종은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착각인지, 실제로 들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하륜에게 입궁하라 전하라.”


바람도 불지 않는 실내에서 촛불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MYNO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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