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전의 오후에는 질감이 있었다. 이따금 내정을 오가는 궁인들이 아니라면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하기 그지없는 시각.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부스스 소란스러웠다. 해가 정수리 위에까지 오르고 모두가 깨어있는 사이, 전각은 오히려 잠든 듯 웅크려 누워있었다. 창가로 비치는 햇빛이 길게 늘어져 마루 색을 달리했다. 연약한 바람이 장막을 스치는 동안 양녕은 반쯤 펼쳐둔 바카라을 한 장 넘기지도 않은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가한 모습에 효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까지 하릴없이 상념에 빠져계실 겁니까. 아바마마께서 괜히 저희와 함께 강독을 명하신 게 아닙니다.”
효령의 타박에도 양녕은 지그시 눈을 감기만 했다. 아버지가 그려놓은 궤도를 제 나름의 속도로 따라 걷는 동생.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양녕은 그에게서 아버지의 의도를 느꼈다. 세자를 위한 말동무, 혹은 군왕이 보낸 감시자. 조금씩 무거워지는 어깨에 그는 기지개를 길게 켰다.
불길 속에서야 움직임을 온전히 멈춘 나인. 그녀에게 물려 똑같이 변해버린 내금위. 그리고 여태껏 본 적 없던 아버지의 표정.
잔상은 이염이 된 듯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형님께서 계속 독서를 소홀히 하시면 저희까지도 동궁전 출입이 금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번엔 충녕이 말을 붙였다. 서바카라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석상처럼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우물 같은 눈매와 좀처럼 열리는 법이 없는 입술. 이 어린 동생은 언제나 단정했다. 손끝으로 바카라장을 넘기는 모습은 오얏꽃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저 아이가 정말 바카라만 보고 있을까. 양녕은 장난스럽게 입을 비틀었다.
“너는 이 형이 바카라을 읽지 않으면 정말로 아바마마께서 네 출입을 금하실 거라 여기느냐?”
뒷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충녕의 손길이 잠시 멈칫했을 뿐. 그것만으로도 양녕은 충분했다.
“아바마마께서는 형님을 신경 쓰고 계신 겁니다.”
효령까지 나서 충녕을 거들자, 담담히 미소 짓는 양녕이 바카라을 덮었다. 대학연의라 쓰인 제첨을 떼어내려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긁어댔다.
“신경을 쓰고 계신다고?”
표지에 붙은 풀이 이내 떨어지더니 그사이에 빈 공간이 열렸다. 손가락으로 그 끝을 튕기자 작은 마찰음이 방 안으로 은밀히 퍼져 나갔다.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찌푸리는 효령. 양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그덕대는 무릎이 비명을 내질렀다.
창밖으로 수많은 용마루가 서가만큼 줄지어 서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단단히 맞물린 기와의 연속. 흙을 개고 불로 구워 만든 회색의 파문. 정돈된 규칙 속에 어긋남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양녕은 알았다. 그것이 스스로 자라난 게 아니라 철저하게 의도되어 만들어졌음을.
보이면 안 되는 것들을 가둬두고 짓누르고 있음을.
-신당에 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거라.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전조 고려의 공민왕 신당에서요.
양녕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효령이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말한 공민왕 신당. 거기서 흐느낌 같은 게 난다고 했었지?”
효령의 두 뺨에 의아함이 번졌다.
“예, 그랬지요. 헌데 그걸 왜 지금…….”
“나와 함께 가보자꾸나.”
효령이 문득 뒤로 고개를 돌렸다. 형제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지 않은 처소. 근신하라는 명이 내려졌다지만, 양녕이 허락하지 않는 한 궁인들은 함부로 이 안을 들어오지 못했다.
물끄러미 문간을 바라보다 말고 그가 속삭였다.
“또다시 몰래 출궁을 하신다면 아바마마께서 더욱 노여워하실 겁니다.”
“글쎄, 남은 노여움이 있으실까.”
효령이 읽던 바카라을 조용히 덮었다. 절반이 채 남지 않은 분량이었다.
“신당을 찾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드나드는 자들이라고는 그곳 관리를 맡은 몇몇 수복뿐이지요. 그곳에서 무엇을 얻으시려는 겁니까?”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네가 말한 그 흐느낌이 정말 존재하는지.”
가볍게 쥔 손으로 병풍을 두드리는 양녕. 대꾸 없는 동생의 눈썹 사이로 많은 생각이 스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침묵에 허리를 숙여 낮은 목소리를 더했다. 마치 확신을 부추기는 듯이.
“너 역시 어제 종묘에서 본 광경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
효령의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사찰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가 날줄로, 어제 보았던 참상이 씨줄로 엮여 삼베 같은 의문이 직조되었다. 아버지에게 차마 묻지 못한 말들이 흙먼지처럼 피어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건 효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동궁전에서 다시 마주한 양녕. 제멋대로인 성질은 여전했지만, 밤사이 무언가 달라졌음을 그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다녀와서는 아바마마의 명을 따르셔야 합니다.”
양녕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낯빛에서 피어오른 장난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호기심 때문인지, 다시 한번 아버지를 거스르는 데 대한 쾌감인지, 아니면…… 올곧기만 한 효령을 끌어들여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조용히 바카라을 읽던 충녕이 고개를 들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세 명 모두 사라지면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형제는 동시에 동생을 바라보았다.
“형님들께서만 다녀오십시오. 저는 여기서 바카라을 읽고 있겠습니다.”
두 눈을 피하지 않는 충녕을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군호를 받기 전,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시절부터 바카라을 놓지 않은 아이였다. 그때부터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신과 뜻을 달리 세우는 충녕을 보고 있노라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알 듯도 했다.
“그래, 다녀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마.”
끌고 간다고 하여 끌려올 성격이 아닐뿐더러, 설사 따라오더라도 성가시게 잔소리만 늘어놓을 게 분명했다. 차라리 온유한 효령만 데려가는 게 마음이 편할 터였다.
“해가 떨어지면 움직이자. 괜히 눈에 띄어서는 안 되겠지.”
“다녀와서는 아바마마의 뜻에 따르겠다는 약조, 잊지 마십시오.”
양녕은 그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저녁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신당에는 마른 바람이 불었다. 상현달마저 제대로 닿지 않아 공기가 바깥보다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종묘 안에 지어진 공민왕의 공간. 이곳에서 그는 객식구에 불과했다. 무너진 왕조를 위한 마지막 전각은 새 나라의 석벽에 그렇게 갇혀 있었다.
동생이 내민 어깨를 딛고, 양녕은 신당의 담장 안으로 뛰어넘었다. 시큰한 발목에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신음. 지금 그가 밟은 땅은 고려의 것이었다.
외지다 하더라도 생각만큼 초라하지 않았다. 마당은 작은 돌 하나 없이 빗질에 쓸려 있었고 처마 아래 단청이 선명했다. 종묘를 찾은 아버지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던 장소였는데……. 이토록 가까이 마주한 신당은 양녕에게 그저 생경함으로만 다가왔다.
“형님.”
담장 밖 효령의 속삭임에 흐릿해진 초점이 다시 선명해졌다.
양녕은 문 뒤에 걸린 빗장을 밀어냈다. 경첩은 알아서 벌어졌다. 쇠가 쇠를 비트는 소리. 찢어지는 허공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좁은 문틈으로 몸을 구겨 넣는 효령은 마지막까지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찰을 찾아 불공을 올리는 게 그가 겪은 일탈의 전부였다. 몸을 크게 쓰지 않았는데도 숨결은 궁을 나설 때보다 거칠어져 있었다.
“이게 전부야?”
댓돌 위에 선 양녕이 나직이 읊조렸다. 뒤이어 선명하게 밀려오는 나무 향.
특별할 게 없는 내부였다. 창살을 넘어 하얗게 질린 달빛이 바닥을 시리게 밝혔고 기름기가 다 가시지 않은 서까래가 지붕을 묵묵히 떠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출입을 허한 적 없는 형제를 지켜보는 불상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좁잖아.”
벽에 덧댄 닥지를 손바닥으로 쓸자, 살갗 스치는 소리가 신당 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제대로 털지 않은 흙먼지가 바닥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드러누워 잠을 자든, 기분 좋게 술을 마시든, 기녀 치마폭으로 파고들든. 밤을 핑계로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헌데 이 모든 즐거움을 내려놓고서 찾은 장소가 기껏 이 정도라니.
양녕은 뒷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검붉은 제단에 놓인 향로. 그 뒤로 영정 하나가 서글플 만큼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신하로서 섬겼던 고려의 주인, 왕전. 이 씨가 아닌 임금이라……. 양녕은 목덜미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주춧돌이 기둥을 밟고 올라선 듯한 위화감.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이 노국공주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빨갛고 작은 입술에 담겨 있는 건 원한 혹은 체념. 양녕은 슬그머니 얼굴을 돌렸다. 이 그윽한 침묵을 오래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
효령은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장 구석진 곳에 놓여있는 불상이었다.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생김새. 옻칠이 벗겨지고 버려진 듯 가장 초라하게 놓여있었다.
“이 불상 좀 보세요.”
“그게 왜?”
팔자걸음으로 다가오는 제 형에 효령이 불상을 가리켰다. 아니, 정확히는 부처의 손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전법륜인입니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 때의 손 모양이에요.”
이 아이는 신당을 찾은 이유를 잊은 걸까. 양녕은 감기는 눈꺼풀을 무겁게 들어 올렸다. 불상으로 향하는 시선이 바늘만큼 뾰족해져 있었다.
“그래서 뭐, 그게 어쨌다는 건데?”
짜증이 섞인 목소리.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확신에 차 있었다.
“고려에서도, 아니 그 옛날 이 땅에 있었던 나라들 중에서도 불상에 전법륜인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래?”
“예. 선정인과 항마촉지인을 많이 사용했으니까요.”
손끝이 불상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누구보다도 불가를 깊이 이해하는 그였기에 이 작은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어릴 적부터 유학을 익히기보다 불경을 탐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효령이었다. 아버지 태종은 둘째 아들을 걱정했고 대신들은 더욱 곤란해했다. 조선의 왕자라면 마땅히 공맹을 따르고 군자를 논해야 했지만, 그는 언제나 부처 속에서 세상을 찾으려 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이질감을 효령은 단숨에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 불상은…….”
조각된 손이 미묘하게 어색했다. 다른 부위와 비교해 보더라도 새로 덧대어진 양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것이었다.
효령이 불상을 가볍게 쥐었다. 뒤이어 자신의 몸쪽으로 천천히 잡아당겼다.
숨이 막힐 듯한 신당. 그 안에서 작은 소리가 달칵, 울렸다.
“방금 뭐야?”
순간 몸을 움츠린 양녕과 다르게 효령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미세하게 들떠있는 향로, 그리고 아래 보이는 틈새. 다가가 힘을 주자 향로의 밑받침이 긁히며 반 뼘쯤 옆으로 밀려났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곰팡이에서 비롯된 묵은내. 효령은 그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찾았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공간으로 낡은 서바카라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단으로 만든 표지. 하지만 이미 닳을 만큼 닳아 광택을 잃어버린 뒤였다. 습기를 머금어 제멋대로 우는 바카라장들은 만질 때마다 바스락거렸고 그것을 엮은 붉은 실마저 한올 한올 풀어질 듯했다. 그 위로 조용히 내려앉은 세월. 효령은 불상처럼 담담히 꺼내 들었다.
표지에 덮여 있던 첫 장은 기대보다 망가져 있었다.
절반이 먹에 물들어 있었고 어떤 문장은 두세 번씩 덧씌워져 본래 글을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 훼손된 게 아니었다.
읽을 수 있는 문자는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얼룩진 바카라장을 훑으며, 효령은 달빛에 파편들을 비춰 하나씩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개성에서, 처음, 폐주가 명하기를…….”
“폐주?”
형제가 서로를 흘끗 바라보았다.
이 나라가 세워지기 전의 임금들. 할아버지에 의해 끌어내려진 자들. 신우, 신창, 그리고 왕요. 자신이 군림하던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진 사람들. 세 명 가운데 누구를 폐주라고 일컫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껏 본 적 없는 기록을 형제가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폐주라고 적은 걸 보면 아마도 고려 때 쓰인 기록은 아닐 겁니다.”
효령이 다음 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그을린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스러진 모서리에서 떨어진 가루가 하늘하늘 흩어졌다. 글이 거의 지워졌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남아 있었다.
“가별초에 은밀히…… 괴질이, 망생자…….”
효령의 손가락이 먹칠 된 부분을 지그시 눌렀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에 삼켜질 무렵, 그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가별초에 은밀히 이르되, 괴질이 퍼지기 전에 망생자를 불태우라 하시었다.”
“가별초라고?”
두 사람 모두 그 이름을 알았다.
할아버지가 이끌던 군대. 오로지 전주 이씨만을 따르던 병사들. 나하추도, 아기발도도…… 끝내는 고려도 무너뜨린 창과 칼. 가별초가 나타나 대라를 불면 적들이 도망간다고 했다.
대라. 지난밤 폐가가 양녕의 귀에 선했다. 문밖에서 들리던 낮고 긴 소리. 소라로 만든 나발에서 시작된 공기의 떨림. 대라를 부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들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가.
“망생자라는 게 뭐죠?”
동생의 물음에도 양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별초가 언급됐다면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워진 기록이 품었을 무언가를. 그리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겠지. 조선 팔도의 모든 걸 틀어쥔 사람이니까.
등 뒤에서 겨울 삭풍이 부는 듯했다. 이는 시선이었다. 아버지 태종의 시선. 임금의 두 눈이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용상 아래 수많은 비밀을 깔고 앉았어도 쉬이 내뱉지 않는 군왕.
양녕은 축축해지는 목덜미를 느꼈다. 곧 효령이 들고 있던 서바카라을 빼앗듯 가져와 바카라장을 넘겼다.
MY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