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효령이 저도 모르게 되뇌는 염불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속내를 도통 내비치지 않는 충녕조차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태종은 그렇지 않았다. 익숙한 광경인 듯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주저앉은 나인을 지그시 응시할 따름이었다.
그 눈빛 속에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근자에 일이 고되었던 지라…… 그뿐이옵니다. 아무렇지 않사옵니다.”
나인은 붉게 물든 입술로 애써 말을 이었다. 선혈이 울컥 쏟아졌다.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주변에 서 있던 나인들은 한두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 누구도 손을 뻗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이 증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 탓이었을까.
가늘게 새어 나오던 신음은 조금씩 떨림으로 바뀌고 있었다.
태종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상선에게 시선을 던졌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그는 이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허리를 숙였다.
그 짧은 순간을 양녕은 놓치지 않았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는 없어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벌컥,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건장한 사내 두 명이 침전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임금을 지키는 내금위였다. 굳게 다문 입술과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나인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끌어당겼다.
“저, 전하. 전하!”
애처롭게 침전을 메우는 비명.
필사적인 저항도 우악스러운 손길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바닥을 긁으며 무언가라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톱 끝에 닿는 것이라고는 방금 토한 선혈이 전부였다.
허공만 움켜쥐던 그녀가 문 너머로 사라지자, 침전은 숨이 막힐 듯 고요했다.
“아바마마, 지금 이것이…….”
아연실색하여 태종을 부르는 양녕. 하지만 제 아비의 냉담한 표정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단하구나. 세자와 두 왕자는 이만 돌아가 보거라.”
태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는 듯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에 세 형제는 주춤주춤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방문을 나서던 양녕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다시 이마를 짚은 채 미동도 없는 태종. 어릴 적 자신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던 젊은 아버지는 그곳에 없었다. 마음속에 칼날을 품은 임금만이, 감당하기 어려운 세월에 지쳐버린 사내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변한 것인지 원래 그런 분이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오래 마주할 수도 없는 얼굴. 양녕은 입을 꾹 다물었다.
숨이 턱 막힌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사지가 끊어지고도 살아있던 사내, 궁인들 앞에서 면박을 주며 호통까지 치던 아버지, 그리고 피를 토하며 끌려 나가던 나인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양녕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어 놓았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그럼에도 식지 않는 것이 있었다. 오히려 심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분노였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자신이 이토록 엇나가는 이유 또한 아버지, 태종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런 기분을 달랠 방법이야 뻔했다. 기방에 들어앉아 술에 취하다 보면 끝 모를 불쾌함도 어느샌가 사라질 터였다. 그리고 자신의 품속을 교태스럽게 파고드는 여인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양녕,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저하…….”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 효령을 바라보며 양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예전처럼 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예, 형님.”
효령은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일전에 인근 사찰을 찾았을 때, 그곳 주지승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찰? 그 중놈이 뭐라고 했길래 그러느냐?”
양녕은 뒷짐을 진 채 터벅터벅 앞으로 걸음을 내딛기만 했다. 그의 생각은 이미 동생의 불안한 표정보다 어느 기녀를 불러다 앉힐지에 닿아 있었다. 그럴 수록 효령은 미간을 더욱 좁혔다.
“종묘를 관리하는 수복이 불공을 드리러 온 적이 있는데, 그자 말로는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전조 고려의 공민왕 신당에서요.”
“공민왕 신당에서?”
그제야 흥미가 돋은 듯 양녕이 걸음을 멈추고 효령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동생의 눈빛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예. 혹시 오늘 종묘에서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는 게…….”
“난 또 무슨 소리라고. 공연한 말 말거라.”
양녕이 가소롭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효령을 뒤로 물렸다. 말을 이으려던 효령은 결국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 모습에 웃음을 흘린 양녕이 동생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궁을 나서려면 채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뒤이어 그를 붙잡는 이가 있었다. 충녕이었다.
“저녁 공부도 미루고 활쏘기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저와 강독을 하겠다고 약조를…….”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충녕에게 꽂혔다. 또다시 학문 이야기를 꺼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의 입을 막지 않으면 평소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을 터였다. 하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소매 자락을 휘날리며 충녕에게서 성큼성큼 멀어질 뿐이었다.
그런 양녕을, 충녕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워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술잔이 쉴 새 없이 채워졌다. 방 안에는 여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양녕은 옷고름도 풀어 헤친 채 반쯤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 사이로 얼핏 비치는 속살에 세자라는 체통은 이미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자신을 실망스럽게 바라볼 아버지의 얼굴 역시 한참 전에 지워진 뒤였다.
“저하, 나랏님이 되신 후에도 저희를 잊으시면 안 되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자주 찾아 주실 거죠?”
매향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양녕의 입으로 술을 흘려 넣고 있었다. 부드럽게 늘어진 눈꼬리와 묘하게 곡선을 그리는 콧등. 이 기녀의 얼굴에는 어딘가 나른하면서도 은밀한 분위기가 스며 있었다.
양녕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매향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스치는 순간 그녀의 향기가 더 짙어지는 듯했다.
“잊다니. 난 여길 아예 편전으로 삼을 것인데.”
또 다른 기녀들이 크게 웃으며 양녕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세에 양녕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 나른한 눈빛으로 술에 젖은 혀를 쓸었다.
세자로서 응당 느껴야만 하는 부담감과 의무감 모두 먼 과거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취기가 흐릿한 안개처럼 그의 기억을 덮으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따라 흥이 더욱 오르는구나. 어디 새로운 얼굴 없느냐?”
기녀들이 키득거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항시 부르던 여인들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잘 아는 자들이라지만, 지금의 익숙함만으로는 한껏 들뜬 기분을 돋우기에 싱거울 수밖에 없었다.
매향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따뜻한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침 개경에서 온 아이 하나가 있습니다. 하오나 아직 낯을 많이 가리는 터라…….”
앙녕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고려의 수도, 개경이라.
할아버지가 무너뜨린 왕조의 중심. 오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군왕의 권위를 품었던 땅. 지금은 옛 영광의 잔상만이 남아 있다지만 그 위세만큼은 여전히 한양에 못지않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었다.
그런 곳에서 어찌하여 한양까지 흘러들어온 것인가.
“상관없다. 한번 불러 보거라.”
매향이 기녀들과 눈짓을 조용히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으로 여인 하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소리 없이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등불의 금빛 아래서도 창백한 피부가 도드라져 있었다. 잘 빗어 쪽을 올린 머릿결에서 윤이 났고 검푸른 눈동자는 밤하늘을 닮아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기묘한 운치가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진옥이라 하옵니다.”
“개경에는 아직 전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을 터인데, 어찌 한양까지 오게 되었느냐?”
술잔을 내밀며 양녕이 묻자, 진옥의 손이 멈칫했다. 청자를 들려다 말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럼에도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티 나도록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개경에는…….”
어색한 침묵이 방 안을 메우려던 찰나,
“새 세상이 열린 지 오래인데 사라진 왕조를 이야기해서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제가 한 잔 올리겠사옵니다, 저하.”
매향이 진옥으로부터 술병을 받아들었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서도 어딘가 눈빛이 바뀌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우아한 손길로 술잔을 채우는 동안에도 양녕은 진옥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미묘한 떨림과 입술 끝에 맺혔다 사라진 말들. 보면 볼수록 이질적인 여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머리 아픈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느꼈던 감정들은 모두 내던지고 기녀들의 품에서 지금의 쾌락만을 탐닉할 뿐이었다.
양녕이 단숨에 술잔을 비우자 진옥이 조용히 그 안을 채웠다.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양녕은 기방을 나서며 느슨하게 허리띠를 풀었다.
앞으로는 젊은 내관 하나가 초롱을 든 채 길을 밝히고 있었다. 양녕을 보필하는 이는 그가 전부였다. 차라리 그것이 되레 편했다. 뒤를 따르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듣기 싫은 이야기만 더 늘어놓을 뿐이었다.
칠흑 같은 공기 속에서 두 사람 말고는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깊은 밤이었다. 하지만 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양녕에게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동궁을 돌아가면 세자로서의 삶은 지겹게 반복될 터였다.
양녕이 우뚝 멈춰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걸어왔던 길은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다. 당장 저 안으로 뛰어들어간다면. 해가 뜨고 난 뒤의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면. 어쩌면 자신을 괴롭히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라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은 다시금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원하는 것들을 스스럼 없이 취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세자라는 자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언젠가 용상에 앉을 것이라는 미래, 그 하나뿐이라는 점을.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칠 자신도 없는 까닭이었다.
“지금 환궁을 하고 싶지가 않구나. 내 좀 더 산보를 하다 가야겠다.”
양녕의 무심한 말에 내관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이미 너무 늦었사옵니다. 혹여 전하께서 아시기라도 하면…….”
“무얼 새삼스럽게.”
바로 그 때, 희미하지만 날 선 금속성이 양녕의 귀를 스쳤다. 거리가 멀어 희미한 것인지 지척이지만 약하게 들리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날이 선 쇠가 미세하게 긁히는 소리. 칼끝이 스치듯 짧고도 날카로운 울림이었다.
양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관이 들고 있는 초롱과 불 꺼진 인가, 텅 빈 골목길만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인기척을 죽여도 새소리만이 더욱 선명하게 들릴 뿐이었다.
‘바람 소리가 저렇게 들릴 수도 있나?’
등 뒤에서 희미하게 거슬리는 느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적막만이 짙게 내리앉아 있었다.
다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쇠가 스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그 순간, 낮에 있었던 일들이 양녕의 머릿 속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결코 사람이 아니었던 괴인. 붉게 튄 피, 찢겨나간 살점, 사지가 잘린 채 경련을 일으키는 그것. 살점이 뜯기는 소리, 궁인들의 절규…….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잔혹함이 현실처럼 그를 덮쳤다.
손끝이 서늘해졌다.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양녕은 고개를 숙이고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 모든 것을 술과 여자로 잊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기억은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뒤이어 흐느낌이 밤공기를 타고 흘러들었다. 아주 작았고, 방금 전의 금속성과는 분명 다른 결이었다. 아마도 숨을 죽이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듣지 못했을 소리. 분명 사람이 내는 울음이었다.
양녕은 내관을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초롱을 끄고 여기서 기다리거라.”
당황한 얼굴을 하던 내관은 이내 조용히 초롱 속의 불을 죽였다. 기다렸다는 듯 어둠이 달려와 주변을 집어삼켰다.
양녕은 발소리를 죽이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기대감에 가까웠다. 지겨운 일상 속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일어난 변수, 그것에 대한 기대감.
좁고 구불진 골목을 지나 낡은 초옥에 이르렀다. 손길이 닿지 않아 세월에 낡아가는 폐가. 오래된 담벼락과 제멋대로 뒤엉킨 수풀에 가려져 낮에도 사람이 찾지 않을 듯한 공간이었다.
세 명이 있었다. 횃불을 든 두 사내와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여인.
사내 하나가 여인의 입을 틀어막던 천을 거칠게 풀었다. 그녀는 억눌린 울음을 토해내며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나리, 제발 좀 풀어주십시오, 평생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 살겠습니다.”
“네가 살면, 이 나라가 죽는다.”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불빛에 비친 여인의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에는 말라붙은 피가 연지처럼 묻어 있었다.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 팔다리를 허우적대는 그녀를, 사내들은 무심하게 발로 밀어 넘어뜨릴 뿐이었다.
양녕의 숨이 멎었다.
조금 전…… 아버지의 침전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던 나인이었다.
MY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