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키티! 헬로 간사이!

by노푸름



이코카, 하루카, 왜 카가 많을카?


하루카(HARUKA)는 간사이 여행을 할 때 관광객의 90%가 이용하는 공항 특급열차로, 환승 없이 오사카와 교토, 신오사카, 텐노지로 데려다 주는 교통수단이다. 하루카는 한국에서 미리 예매를 하는 게 경제적이고, 대부분 ‘클룩’이라는 사이트에서 예약한다다. 승차권을 출력하지 않고 미리 발급된 QR코드를 게이트에 찍고 승강장에 들어가면 된다. 다만 승차권 예매 줄은 가득하고, ‘하루카(HARUKA)’라는 단어만 보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가고 싶어진다. 이럴 때는 정신줄을 단단히 잡고 다른 정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일본 여행 베테랑 선배님들의 후기를 믿고 곧장 게이트로 가서 나처럼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간사이 공항에서 중요한 미션은 ‘이코카(ICOCA)’카드를 발급 받는 일이다. 행선지에 도착해서 발급해도 되지만 혹시 발급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공항에서 미리 발급 받아 두기로 한다.


이코카는 우리나라의 ‘티-머니’와 같은 개념으로, 지하철, 버스 등을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는 교통카드다. 애플페이로도 발급 가능하나, 실물 카드를 가지는 게 안심이 되어 보증료를 주고 발급 받기로 했다. 일본은 아무래도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나라니까.


image.png(왼쪽) 이코카 교통 카드, (오른쪽) 하루카 공항 특급 열차

하루카, 이코카. 웬 교통 수단 이름들이 이다지도 헷갈리게 만들었나. 이건 공무원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중의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코카(ICOCA)는 교통 카드 Intelegent Card Ontact Card의 약자인데 공교롭게도 ‘가자!’ 라는 뜻의 간사이 지방 사투리와 같다. ‘우리 IC카드 타고 갈까?’ 라는 발음과 ‘가볼까?(이꼬까?)’의 발음이 정확히 일치해 버렸다.


공모전을 통해 정해진 하루카는 ‘아득히 먼 곳으로’라는 뜻으로, 간사이 공항에 내린 외국인과 여행객들이 "저 멀리 아득한 하늘을 날아와, 일본의 옛 정취가 남아있는 먼 교토까지 막힘없이 시원하게 달려간다"는 낭만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하루카의 의미를 담아 나도 아득히 먼 교토까지 달려간다.



헬로 키티! 헬로 간사이!


image.png승강장에 멈춰 선 하루카 열차. 헬로 키티 일러스트로 디자인되어 있다. (출처 : 마이리얼트립)

우여곡절 끝에 하루카 승강장에 도착하니, 헬로키티와 콜라보한 디자인 열차가 막 지나갔다. 귀여운 키티가 저 멀리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조금만 빨리 올 걸 아쉬워하다가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을 찾는다. 막 열차는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출발했는지 우리 말고는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생기니 긴장했던 마음이 풀린다. 플랫폼 내에 간소하게 차려진 세븐일레븐으로 가본다. 출출한 배를 채워줄 샛노란 타마고 샌드위치와 상큼한 레몬이 그려진 포카 삿포레 비타민 음료를 샀다. 샌드위치 하나만 사도 물티슈 한 장을 챙겨주는 센스에 감동하다가 샌드위치를 덥죽덥죽 베어 물었다. 질리지 않는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입안에 맴돈다. 목이 막힐 때쯤 상큼한 비타민 음료도 꿀꺽꿀꺽 마신다. 텁텁한 실내에만 있으니 이렇게 상큼한 맛이 그리웠다. 말끔히 다 먹은 후에 편의점 옆 열차 대기실에 USB 잭을 발견하고 핸드폰도 충전한다.


배가 부르니 멍해진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일본이라는 게 진짜인가. 현실감이 전혀 안 든다. JR이 아닌 한국의 넓은 승강장에 우두커니 앉아 코레일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모를까.


어쩐지 이런 현실감의 부재가 속상하다. 빨리 내 머리가 여기가 일본이라는 걸 알아차려야 비행기 값이 아깝지 않을 텐데. 내 자신에게 자꾸만 고함을 친다.


‘네가 그토록 고대하던 여행을 하고 있다고! 얼마나 소중한 지 알아?’


그 현실을 늦게 깨달을수록 손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려 해 봐도 머리가 아득해지기만 한다. 수많은 인파와 정신 없는 열차 찾기, 이코카 발급까지 내 정신은 소강상태가 되어 버렸다.


“오사카, 텐노지. 교토”


하루카 열차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신기하게도 어지러운 정신은 자동으로 오와 열을 맞춘다.

‘열차만 타면 교토야.’



쪽잠이 간절한 기차 여행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까지는 1시간 20분. 새벽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우리는 피곤에 절어 있던 터라 쾌적한 실내에 잠깐 감탄하고, 창밖을 보며 이색적인 풍경에 또 잠깐 놀라고, 얼마 안 돼서 골아 떨어졌다.


처음 20분간은 내리 잤지만, 의자가 불편해 뒤척였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긴 열차 운행 시간 동안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최적의 자세를 찾고 싶지만 온몸이 뻐근하다. 의자를 뒤로 완만하게 젖혀도 보고, 다리를 꼬고, 피고 다양하게 자리를 옮겨봐도 피곤한 여행객에겐 그저 불편한 고문 의자일 뿐이다. 딱딱하고 좁은 좌석은 내 골반을 배기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과감하게 뺨을 의자에 맞닿을 정도로 모로 누워도 봐도 조금 있으면 경추와 장요근 부분은 딱 잠만 방해할 정도로 찌릿거린다.


그냥 쪽잠은 포기하고 창밖을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차창밖에는 일본의 가옥과 빌라, 아파트가 보인다. 우리나라와 달리 전원주택도 눈에 자주 띈다. 아직 공사 중인 곳도 있다. 이렇게 넓은 대지에 사람들이 가득한데, 내가 가보지 않은 세상은 얼마나 넓은 것일까.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 너머에 있는 세계를 상상하며 자연스레 인간의 한계를 체감한다. 왜 우리는 어느샌가 인간의 평범성을 간과하고 특별해지려 노력하는 것일까.


저 단층집에 사는 사람은 누굴까. 여행객에겐 낯선 상상을 만들지만 현지인에게는 일상이 지겹도록 평범하고 벗어나고 싶겠지. 우리나라를 보는 여행객도 그럴 테지. 그 나라에 사는 나조차 그래서 떠나왔으니. 여행객과 현지인의 시선이 환상과 환멸처럼 교차하며 열차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왔고, 내 의식은 열차로 돌아왔다.


감격의 교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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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하는 순간이 간절해질 때쯤 곧 교토역에 정차할 거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반가운 소리에 사람들은 슬금슬금 일어나 각자의 트렁크를 찾는다. 혹시나 우리의 트렁크가 없어지진 않았나 하는 우려를 안고 캐리어 보관함으로 갔으나 지극히 얌전하게 남아 있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내 트렁크를 보고 안심한다.


기다란 트렁크 손잡이는 뽑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선 짧은 트렁크 손잡이를 잡고 단숨에 들고 내리는 게 안전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하루카 열차의 거대한 장벽처럼 견고한 문 앞에서 거의 모든 여행객들은 깨달음을 얻길 기다리는 신도처럼 경건하게 문을 바라보고 있다. 거의 모든 여행객에 포함된 나도 문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얼른 문이 열리게 해 주소서.’


이 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내 옆에 탑승객은 미래가 설렐까. 아니면 뻔할까.

속도를 늦추는 법을 모르던 열차는 점점 느긋해지더니, 지그시 멈춰선다.

역무원이 문 밖에서 소리친다.

“교토에끼데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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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절한 기도에 응한 교토는 문을 열어준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광명이 찾아온 듯 밝은 빛이 쏟아진다. 성가대의 성스러운 찬송가 대신 경박한 감탄사가 나온다.

“와...교토다!”

장장 8시간만에 도착한 교토라니. 심히 감격스럽다.


이제부터 여행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진작부터 여행중이었다고.



안녕하세요. 푸름입니다.

지난주에는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제 얼마 안 되는 멘탈과 체력이 소진되서 업로드를 하지 못했어요.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한번 더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건 거짓말이기에

원하는 대답을 해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뻔뻔),

그렇게 너무 야박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생계가 우선이 된다면 이해해줘야죠.

저도 여러분들이 제 글을 보러오지 않으면

먹고 사느라 그렇구나 생각할 테니,

여러분도 조금은 관용을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이 글을 응원해 주시는 것도 감사할 듯합니다.


너무 뻔뻔하고, 염치가 없나요.

그래도 저는 떳떳하렵니다.

감정에 깊게 들어가 보기도 하고,

적확한 표현을 숙고하고,

묵혔다가 다시 꺼내 보는 노력을 해요.

여러분도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니

저의 노력을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서로를 지지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못 지키는 게, 실은 ADHD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약을 먹으면 조금 낫지만, 그렇게 큰 효과가 없어서(비포 앤 에프터 무의미..)

약을 먹기 보단, 이렇게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대체하려 합니다.

약이나, 기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걸 가끔은 인간적인 면이 말끔히 해결해 주기도 하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교토 숙소에 도착해서 편의점도 가고,

이자카야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도 연재해 볼게요.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