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함을 가능성을 바꾸는 시간
이날 나의 목표는 최대한 덤덤하고, 세상 아무렇지 않게, 내일 또 출근할 사람처럼 떠나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100%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불쌍한 사람이 되어 동정을 받으며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밝은 척 웃었다.
“얼른 들어가세요. 뭐 하러 나와요. 얼른 들어 가요.”
배웅 나온 동료들의 얼굴. 그 얼굴을 찬찬히 보고, 악수를 하고, 그들의 안녕을 빌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내 눈물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덤덤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게 나의 목표였다.
나는 괜히 큰 소리 치며 엄청나게 밝은 미소와 활기찬 목소리로 그들의 인사를 한사코 거절했다.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이 더 빠르게 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서 얼른 내려갔다.
“갈게요. 안녕!”
그 순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씩씩한 목소리를 냈다.
도망치듯이 차에 올라 탔다. 이제 가면을 벗어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방심한 순간, 서러움과 슬픔이 쳐 들어온다. 젠장, 젠장.
30분쯤 차를 타고 달리니 눈물이 멎었다.
집에 도착하니 회사 동료에게 카톡이 와 있다.
- 너무 빨리 가서 못 드렸어요...사진으로 대신 드려요.
내 자존심을 지켜내려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건 잘한 선택일까.
그 얼굴들이 벌써 그리워지는 걸 보니, 잘못된 선택이었구나 싶다.
출근하지 않는 자유란 얼마나 달콤한 열매인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침대에서 기어 나온다. 카페인 가득 든 커피를 걱정 않고 마신다. 새벽까지 명작 영화를 연달아 본다(대부 1, 2, 3). 인적이 드문 공원을 느긋하게 산바카라하며 새소리를 듣는다. 이 휴식을 위해 내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내려 놓은 건가. 얼마나 달달한 지 잇뿌리가 시리다.
나는 가성비 없는 삶을 갈구했던 것 같다. 유유자적하며 안빈낙도한 삶. 그만큼 나는 내 몫을 다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속에 파묻혀 살았다. 남들에게 폐가 되는 존재 같다는 수치심에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이제는 합법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런 일상을 선물해 준 게 나를 자른 회사 덕분이라니, 회사에 고마워해야 하나.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난다.
자유로운 대신 돈을 벌지 않고, 한량처럼 보내는 시간은 충분한 양의 죄바카라감을 만든다. 다행히도 나는 그런 죄바카라감을 즐길 줄 안다. 죄바카라감 없이 즐겁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마녀스프를 먹으며 식단을 조절해도 빠지지 않던 살도 좀 빠지고,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건강한 식탁을 내게 주고 싶어 주방에서 정성을 들인다. 출근하지 않으니 기름 값도 들지 않는다. 그 돈으로 먹고 싶었던 프렌치 토스트도 사 먹는다. 생크림을 듬뿍 올린 딸기 케이크도 만든다.
이 한적하고 빈틈 많은 일상과 안정적인 월급과 맞바꾸었던 건가.
우리가 진정으로 누려야 하는 삶은 주기적인 월급보다 가치가 없는 것이었을까.
때 아닌 행복은 내게 의문을 남긴다.
일본 여행은 7년 만이다. 일본 여행은 내게 과분한 상대였다. 코로나 시기에는 일본 여행을 그리워한 적도 없었고,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는 북카페를 창업하고, 폐업을 하는 데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에 가장 많은 여행 유튜버가 배출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여행 콘텐츠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여행을 안 좋아해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실은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남이 여행하는 걸 보면 배알이 꼴려서 여행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으려 피해다녔다.
정 그렇게 여행을 가고 싶다면 성공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여행은 나중에 가도 되니, 운영하는 북카페가 성공하기를, 전세사기가 조속히 마무리 되서 할머니가 남겨준 빌라 보증금을 돌려 받기를, 임대료만이라도 안 밀리고 낼 수 있길 바랐다. 그 바람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그까짓 일본 여행쯤이야, 그게 몇 번이 됐든 양보할 수 있었다.
일본 여행은 나의 경제적인 안정과 생활의 안정이라는 양보했지만, 차라리 여행을 다녀오는 편이 나았을만큼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양보와 성공은 무관하다는 걸 미리 알려주었다면 내 몫의 행복을 양보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 내 마음의 여행이 1위다. 여행의 경쟁상대였던 북카페도 폐업을 했고, 전세사기를 해결해야 겠다는 의지도 힘을 잃었다. 그동안 내가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마땅히 쉬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조금 더 어른이 되면, 그런 변호 없이도 자유롭게, 조금 더 이기적이게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때가 되면 다른 여행 유튜버의 콘텐츠를 보고도 시기하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제일 즐거운 시간이 왔다. 교토에서 여행지를 찾는 것이다. 검색해서 교토의 명소를 찾고, 가고 싶은 곳을 구글 지도에 찍어 두었다. AI에게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 정해둔 스팟을 기준으로 효율적인 동선을 짜 달라고 했다. 몇 분 만에 기가 막힌 계획을 짜 주었다.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였다. 2016년 알쓸신잡2에 출연한 유현준 건축가가 소개해 그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교회. 기독교의 두 가지 심볼 ‘빛’과 ‘십자가’를 가장 간결하면서 동시에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건축물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교회 예배당 안쪽 사위는 어둡지만,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유리벽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마치 예수가 강림한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절묘한 디자인의 매료되어 언젠가 직접 그 위대함을 느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러나 빛의 교회는 루트에서 제외해야 했다. 관광객들 안내를 맡아주던 교회분들이 모두 고령화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관광객의 출입을 폐지했다는 공지를 보았다. ‘내가 대신 일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워홀이 가능한 나이도 한참 지났지만 자꾸만 치고 나오는 실직자의 본심이다.
일본의 고령화가 심각하다고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막상 내 일에 고령화 문제가 끼어드니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이 좋은 명소를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안내는 필요 없고, 그냥 한번만 보고 가겠다고 생떼를 부려 볼까도 생각했다. 교인인 척 예배당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잔꾀도 생각해 보았지만 ‘때가 아닌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절망과는 달랐다. 분명 빛의 교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런 믿음과 건강한 체념을 갖게 된 건 지난 나의 여행 덕분이다. 어쩌면 해고라는 거대한 박탈감 속에서 나를 돌보는 선택을 취할 수 있던 것도, 해고 후에 오는 불안을 미래의 가능성으로 치환하는 능력은 모두 여행하면서 몸소 배워두었던 것들이었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쉬움 후에 오는 감사함이나, 또 다른 기쁨을 이렇게 확실하게 알지 못했겠지.
“더 좋은 곳에 취직할 수도 있잖아.”
“어쩌면 나를 돌아보는 더 좋은 기회일 수 있어.”
“남들과 비교해 봤자 뭐해.”
캐리어 한 켠에 자리 잡은 불확실함.
여행을 끝나고 돌아올 때는 이 불확실함이 가능성으로 바뀌어 있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아쉬움을 남기자, 그래야 또 오고 싶을 테니까”
내 여행 신조를 바탕으로 빛의 교회는 가고 싶은 곳 리스트에 남겨둔다.
해고된 마당에 미련 가질 게 뭐가 있으랴. 잃을 게 없으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나는 여행 카지노 게임을 많이 보는 편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가득한 여행 바카라은 나에게 혼란만 가중시킨다. 그 중에 괜찮았던 바카라 2권을 소개한다.
가고 싶지만, 루트 상 빼야할 지, 그냥 하루를 모두 쓰더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별점으로 체크해 두면 우선순위에 맞춰 루트를 짜기 좋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은 별 다섯개!
안녕하세요. 푸름입니다.
날이 많이 더워졌어요. 집에만 있을 백수는 여름이 그리 두렵지 않네요. (좋은 일일까^^)
저번에 너무 잘 쓰는 바람의 분에 넘치는 좋아요 개수(31개나!)를 받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글도 기대에 부응하면 좋으련만, 진대만 늘어 놓은 기분입니다.
다음화에서 드디어 교토 여행을 떠납니다. 떠나기 전부터 도착해서까지 순탄치 않았던 시트콤 뺨치는 여행기를 공유해 드릴게요.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