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 베케이션

해고의 신이 내게 준 짧은 휴가

by노푸름

콤팩트의 정수, 재패니즈 건축


교토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성인 두 명과 캐리어 1개, 큰 백팩 1개와 함께 타니 엘리베이터가 가득 찼다. ‘703호’ ‘703’호를 입으로 뱉으며 호텔 복도 문마다 붙은 숫자와 호텔 직원에게 받은 방 키링에 적힌 숫자를 한번 확인하며 쭉 걸어간다. 얼마 안 가 숫자 ‘3’을 찾고 방문 앞에 도착해 묵직한 키를 키홀에 넣고 돌리니 무거운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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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엔 좁은 현관, 몇 걸음 더 들어가면 왼편에 작은 싱글 침대 두 개가 반겨준다. 침대 맡에는 넓은 창문은 숙소 부근의 마을 전경이 보인다. 점멸하는 푸른 신호등과 그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의 수를 보며 이 곳에 머물며 만나게 될 3일 간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나날을 어렵지 않게 그려본다.


침실이 궁금한 나머지 건너 뛰었던 화장실 구경도 마저 한다. 접이식 문을 열어 보니 공간이 콤팩트하게 짜여져 있었다. 크기는 10평 남짓 우리 집에 딸린 화장실보다 작은데도 욕조도 들어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공간에 모든 걸 갖추었을까. 건축을 하는 남자친구는 공간의 사이즈를 모두 재면서 상상초월하는 미니 사이즈의 실로 놀란다.


일본의 건축 기술은 오래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견고하고, 치밀하게 시공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판과 판이 만나는 환태평양 지지대에 위치한 운 나쁜 일본은 고질적인 지진과 홍수 때문에 일본의 건축 기술은 발전 안 할래야, 발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은 허물어지면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한번 만들 때 제대로 만들고, 망가지면 고쳐서 쓴다는 장인 정신과 오래도록 수리하며 보존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그런 문화는 건축 뿐만 아니라 도로, 기계, 그릇 등 와비사비(Wabi Sabi) 정신이 생활 곳곳에 배어있다.


와비사비(侘寂, Wabi Sabi) : 일본인들은 찰나에 사라지는 것의 덧없음을 느끼는 동시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물건의 가치를 숭상하는 문화. 새것이 주는 화려함보다, 손때가 묻고 고쳐 쓴 흔적에서 오는 '아날로그적 럭셔리'와 정숙함을 아름다움의 정점으로 본다.


건축가인 남자친구는 늘 일본 사람들의 건축 시공 기술자들을 극찬했다. 지금은 떠난 엄마도, 할머니도 일본인들의 집은 엄청나게 튼튼하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 말은 대부분 극찬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나라의 건축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는 너무 부실공사가 많아. 그래서 층간 소음도 이렇게 심하잖니.”

“도면만 일본인이 만들면 뭐해. 미국에선 설계도대로 시공을 안 해서 곤욕이래.”


유현준 교수 <공간의 공간>이라는 바카라을 보면 유럽과 아시아의 기후와 지형에 따라서 각 나라의 문명이 다르게 발전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각 나라마다 능력이 발현되고, 향상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생존의 위험은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말리아, 남수단 등 빈민국은 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 헤매다 이런 질문은 나 혼자선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바카라임함을 선택한다. 대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답을 찾을 거란 믿음으로 퉁친다.



나는 교토 화법 좋던데?


우리는 근처에 있는 로손을 갔다. 일본에 3대 편의점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그리고 로손이 있다. 세븐일레븐은 도시락, 패밀리마트는 튀김, 그리고 로손은 디저트와 건강을 위주로 판매한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우유 가게였던 로손은 일본의 다이에와 기술제휴를 맺고 오사카에 1호점을 냈다. 현재는 미쓰비시 기업의 인수되었다.(로손이 전범 기업의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전범 기업에 돈을 쓰는 건 부덕한 일이다. 여러모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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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가서 친한 동료가 추천해 준 빵을 찾았다. 슈크림 빵 안에 딸기쨈이 들어간 빵이었다. 혼자서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아서 그냥 없는가 보다 했다. 아쉬움에 다시 찾아보고 있는데 옆에 직원 분이 물어 보았다. 대충 무엇을 찾고 있냐는 질문 같았다.


수줍게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상품을 진열 중이던 중년의 여성 직원 분은 빵 박스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도 모자라 창고까지 들어가서 빵을 찾았다. 넓은 편의점을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굳이 찾지 않아도 될 특별하지 않은 빵이다. 찾아주려 노력하셨지만 결국 없다는 점원의 말을 들으니 더 미안해지고 만다.


“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어리숙한 일본 말에 점원 분은 밝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은 작은 친절함에 감화되고 말았다. 너무 작아서 티도 나지 않고, 반응하지 않아도 될 친절함에 나는 유별나게 감동하고 만 것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감동하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각박한 인류애 속에서 살아왔나 싶었다.

웃음은 약점이 되고, 친절함은 만만함이 되는 슬롯.

내가 만약 일본에서 쭉 살던 사람이었다면 편의점 직원의 밝은 태도와 친절함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겠지.


씁쓸했던 온라인 게임 생활이 떠오른다. 냉소적인 말 속에 상처 받는 마음을 외면하고 묵묵히 견뎌야 했던 날들, 아무렇지 않아야 했던 날들, 분명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내려치기 당해야 했던 날들.


교토의 말을 믿지 말라고, 그 안에는 음흉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각박한 현대인의 지친 여행자에게는 겉으로라도 친절한 게 더 나았다. 진심이라는 걸 포장해서 함부로 무례를 범하던 사람들에 비하면, 내겐 교토 화법이 나았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게 답답하지만, 그 안에 '배려'와 '상대방의 대한 예의'가 있다면 무작정 나무랄 것까진 없다고 생각한다. 다채로운 인생에 언제나 그 방식만이 정답일리가 없지 않은가.


숙소로 돌아와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하게 때우고 방으로 올라갔다.

저녁에는 어디를 갈까. 이 피곤함을 말끔히 지우고 교토를 만끽해야지. 우리는 발 끝이 침대 밖으로 살짝 삐져 나온 상태로 잠을 청했다.


신종! 이자오케(iza+oke)


일본의 대표적인 주점 ‘이자카야’와 술을 먹으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노래주점인 ‘가라오케’. 이 두곳이 합쳐진 곳이 있다면 믿을까. 사실 나는 두 곳을 합쳐서 가고 싶진 않았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들어가게 된 곳이 바로 ‘이자오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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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유명한 이자카야가 있어서 들어갔다. 웨이팅은 없었지만, 웬만한 메뉴들이 다 품절이라 아쉬움에 다른 술집 한 곳을 더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간단하게 먹을 겸 구글지도를 보았고, 우동이 꽤 맛있다는 구글 지도의 후기를 보고 ‘오 괜찮겠다’하고 2분 정도 거리의 이자카야로 갔다. 문 앞에는 일본 식당에서 자주 보이는 커다란 전등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대부분의 뜨내기 여행객들이 그렇듯, 우리는 쭈뼛대며 이곳이 맛이 괜찮은지, 가격만 비싼 곳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품고 들어갔다.


엄청난 환대에 당황을 했지만, 그 환한 미소를 보고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인장은 능숙하게 우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경계심을 놓지 않고 메뉴판을 정독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나쁘지 않네.’


우리는 조심스럽게 고구마 소주와 사케, 그리고 우동을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테이블 끝에는 두 명의 남자가 가운데 자리를 비워둔 채로 각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언뜻언뜻 들리는 배경음악이 참 라이브처럼 생동감이 넘쳐서 뭔가 노포 감성이 느껴지고 야장에서 먹는 느낌이 들어서 더 낭만이 있었다. 그 노래의 정체를 알기 까진.


우리가 앉은 테이블 뒤편을 보니 좌식 테이블이 있었고, 그곳에는 서양인 커플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한명이 갑자기 노래방 리모컨으로 검색을 하더니, 가게 벽면에 붙은 모니터를 보고 마이크를 들고 열창했다.

“she’s gone, out of my life~”

나는 내가 듣고 있던 노래의 정체가 사실은 원어민이 부르는 노래였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원한 건 사실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며 뭔가 잘못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친해지고 싶진 않았다고요!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사장님은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리모컨을 가져다 주셨다. 물론 마이크도 함꼐.


숏 베케이션


남자친구는 신이 나서 내게 노래를 불러 보라고 부추겼다.

“푸름아, 너도 불러 봐!”

“제발, 부르기 싫어!”

부르기 싫다며 손사래 치던 나는 온데 간데 없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리모콘과 마이크를 잡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그냥 부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 자신이 우습고 유치해서 헛웃음이 났다.

사실 그렇게 판을 깔아주면 아무 것도 안 할 수 없다. 그런 성격 탓에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련회에 올라가서 망측한 춤을 춰서 첫사랑 앞에서 민망함을 얻기도 했다. 또 대학교 때는 자신 있게 장기자랑을 해 보겠다며 선배들에게 백댄서를 해 달라고 했다가, 보잘 것 없는 춤을 춰서 선배들에게 욕을 먹었던 경험도 있었다.


그런 여러 번의 실패에도 무대 공포증이 생기지 않는 것도 대단하다.


“Lalala Love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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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lala Lovesong>은 1990년대 후반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일드 <롱 베케이션>의 메인 OST다. 드라마는 90년대 특유의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 문화를 잘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세련된 분위기와 청춘만이 겪을 수 있는 불안과 좌절, 낭만과 자유분방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마저도 향수에 젖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 매력에 화룡점정, 드라마 한 회차가 끝날 때쯤 들려오는 Toshinobu Kubota(토시노부 쿠보타)의 그루브 가득한 보컬과 도입부의 싱코페이션 사운드도 한 몫 했다.


나는 드라마를 떠올리며 싱그러운 여름 날의 청춘이 그려지는 밴드 노래를 선곡했는데, 노래방에 있는 건 어쿠스틱 버젼 뿐이었다. 아니, 유튜브에서도 보기 드문 게 왜 노래방에 있냐고. 신나야 할 이자카야에서 어찌나 축축 쳐지던지, 민망해서 얼굴이 벌게졌다.


내 노래가 끝나자마자 서양인 관광객은 한 곡을 또 불렀다.

“let it be~ let it be~”

비틀즈를 부르다니. 이건 반칙이지.

그만 소울이 충만해져서 라이벌인 걸 잊고 양손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그에 질세라 한 곡을 더 부르겠다고 리모컨을 달라고 요청했다.


“아, 그 노래 뭐더라?”

“뭔데?”

“아, 그거 있잖아. 아~ 와따시와 코이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 사장님이 리모컨을 달라고 하더니 예약을 해 주셨다. 그리고 그 노래의 제목을 알려주셨다.

“아오이 산코쇼(푸른 산호초)”


뉴진스의 광팬인 우리 둘은 뉴진스가 일본 첫 콘서트에서 하니가 푸른 산호초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됐을 때 매일 따라 불렀다. 일본어를 잘 못해도 어떠랴. 같이 따라 부르면 이렇게 신이 나는 걸.

“아~ 와따시노 코이와~ 미나미노~”

가만보니, 해고 되고 나서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행복하게 웃어본 적 있었나?


드라마 <롱 베케이션>의 뜻은 신이 주신 긴 휴가라는 뜻이다. 이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의도치 않게 자신들의 꿈이 좌절되고, 방황하지만 결국 그 시간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 시간이 어쩌면 좌절이었지만, 더 큰 사랑을 찾을 수 있게 된 꿈 같은 휴가였던 것이다.

드라마처럼 긴 휴가는 아니더라도, 나도 해고를 통해 숏 베케이션을 온 게 아닐까. 나도 그 둘처럼 무언가를 깨닫지 않을까. 그런 확신이 들면서 삑사리가 나도 목청껏 노래를 불러 재꼈다.

“카제니 놋테 하시루와~”

알바생들도 함께 노래를 들으며 호응도 해주고, 주방에 있던 사람들도 나와서 흘끔 보더니 웃으며 들어간다.

대부분 노래방은 어두워서 그리 부끄러운 게 덜한데, 여기는 여느 술집과 달리 조명이 형광등 못지 않아, 창피함이 배가 된다는 단점만 빼면 참 즐거웠다. 노래에 심취하고 사람들과 호응하며 부르니 민망함과 창피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확실히 무대체질인가.


“스고이.”

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웃으며 박수를 쳐 주었다. 나의 라이벌 서양인 커플도 몸을 들썩이며 박수를 쳤다.

중년의 사장님 부부도 마이크를 잡으셨다. 듀엣으로 부르시며 화음을 넣는 게 꼭 프로 가수 같았다. 이거야 말로 환상의 호흡이구나. 전직 가수셨나 싶어서 물어보았지만, 손사래 치시며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분명히 잘 부르신다는 걸 알고 있으리라. 그 자신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노래를 편안하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우리 맞은 테이블의 서양인은 그렇게 몇 곡을 더 불렀다. 자정이 다가오자 일본인 남성 두 분도 각자 자리를 뜨고, 서양인 커플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번역기로 몇 마디 말을 나눠 보니, 노래를 부르던 서양인은 직업이 밴드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잘 부르는 거였구나?

체급 차이가 있었지만 졌잘싸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유튜브 계정을 공유했다. 서양인 커플은 이제 곧 결혼을 한다고 했다. 사장님 부부와 우리 커플은 그 둘을 축복했다. 사장님 부부는 그 둘에게 술을 선물하셨다.

“아리가또 사쬬 상!”

“아리가또~”

사장님 부부는 우리가 나갈 때 과자 꾸러미를 선물로 주셨다. 키캣도 들어 있었고, 여러 일본 간식이 들어 있었다. 이런 것까지 챙겨주시니 더욱 감사했다.


그렇게 웃으며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가만 보니 금액이 너무 많이 나왔다!

주문을 하면서 대략 예상한 금액은 넉넉 잡아 3,000~3,500엔 정도였는데, 5,000엔 중반이 나와서 이게 무슨 일인가 당혹스러웠다. 다들 화기애애하게 헤어지는 아쉬움 가득한 작별의 순간, 거기서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물어보는 건 난감한 일이었다.


가게를 나와서도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사장님 부부를 잠깐 보았지만, 우리에게 바가지 씌울 분들이 아니었다. 그러면 뭔가 정신을 쏙 빼놓게 말을 걸거나, 계속 주문을 하게 영업을 했을 텐데, 그런 건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계산하고, 자릿세를 추가로 넣더라도 4,000엔이었다.


‘너무 급하게 계산한 나머지 잘못 계산이 된 게 아닐까?’

‘혹시 노래 한 곡당 500엔인가?’

'세금에 세금을 붙일 수 있나?'

이런 저런 추측을 했다.


다음에 또 그 주점에 갈 거냐는 남자친구의 질문에 나는 선뜻 말이 안 나왔다.

그래도 다음엔 인사를 하고 한국에 맛있는 간식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대략 손해를 본 게 15,000원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추억을 선택한 게 현명한 투자일 것이다.

추억은 인플레이션과 비슷해서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화폐보다 가치가 높아지니까.


여행을 다녀온 지금까지도 그때 노래를 부르며 심취해 있는 모습을 보면 이불킥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즐거워진다. 여행가서 힐링하고 맛있는 음식만 먹을 줄 알았지, 교토에서(그것도 서양인과) 노래 배틀을 할 지 누가 알았겠나.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그 말이 설렘으로 변하게 만들어 준 여행이라는 녀석에게 고마워지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해고된 김에_교토> 노푸름입니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냥 제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6화를 쓰는 동안,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댓글로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 덕분에

이 이야기를 더 솔직하고 깊게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까지 함께 와주신 분들이라면, 다음 이야기도 분명 마음에 닿을 거라 믿어요.


다음 이야기에선 교토에서 처음 맞는 모닝 커피와 청수사를 보러 갔던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교토의 명소 닌넨자카 상점들과 정숙한 절을 다니며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사진도 많이 찍었지요.

귀여운 토토로와 맛있는 디저트의 향연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붉게 물드는 가을의 교토를 사진에 잘 담았으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