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당하고 떠나기 좋은 여행지

by노푸름

해고성사


고백합니다.

저는 해고를 당하기 전, 사실 해고해 달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자꾸만 떨어지는 매출 압박에 시달렸죠.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고집불통 팀장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안에서는 아이디어가 비집고 올라왔습니다.

‘북토크를 열어볼까.’

‘민음사처럼 유튜브로 홍보를 해볼까.’

회사를 살리고 싶은 간절함이었습니다.


아, 저는 죄인입니다.

해고당하니 실업급여라도 나오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퇴직금은 받을 수 있도록 한 달만 더 다니고 싶다 나를 자르는 사장에게 구걸도 했습니다.

그 구걸 덕분에 이렇게 몇 달 간은 마음 편히 글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겠구나 안심했던 저의 탐욕스러움을 용서하세요.


바카라임을 지지 않는 상사에게 ‘X같은’ 새끼라 욕한 점도,

선량한 직원을 자르고 아첨하는 상사만 찾는 사장에게 ‘XX같은’ 놈이라 욕한 것도 고백합니다.


아,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렇게 기쁠까요.

어쩐지 전보다는 나은 미래가 기다릴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납니다.


다시 고백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도 저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제가 저를 구해야지요.

언제나 최후의 구원자는 제 자신일 테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아멘.


해고 당하고 떠나기 좋은 여행지


내가 해고 당하고 떠나고 싶은 곳은 ‘일본’이었다.

길게 떠날 수 있으니 유럽이 어떻냐는 의견도 맞지만, 나는 새로움보단 그리움을 택하기로 했다.


후덥지근한 날에 줄을 서서 기다려 먹었던 라멘.

우리나라에서는 단종돼 먹을 수 없는 샤샤 쵸콜릿

쫀득한 식감의 달콤한 모찌롤케이크.


마치 어떠한 연유로 첫사랑을 떠나 보내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영화<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주인공들처럼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움을 택하는 건, 그동안 보고 싶다가 만난 ‘반가움’과 동시에 내가 몰랐던 매력을 알 수 있다는 ‘설렘’이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일단 여행 국가는 정했지만, 어떤 지역을 가면 나의 이 충만한 시간을 쏟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마쓰야마도 좋지. 조용하니.’

‘아, 도쿄도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맛집은 후쿠오카카 많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도 자꾸만 맴도는 곳이 있었다.

교교한 전통의 아우라를 품은 100년 도시 ‘교토’였다.


두 가지 결말


가장 친한 동료들은 앞으로의 행보를 두고 함께 걱정해 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떡할 거예요?”

그들의 걱정보다 앞으로의 생계가 걱정인 해고 당사자는 플랜 C까지 세워두었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해요. 저는 회사가 잘 안 맞는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프리랜서 일도 좀 하려고요.”

사실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최대한 현실성 있게 계획을 짜 보았지만, 나의 생계를 대신할 정도로 안정적일 수 없는 것은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씩씩한 척했다. 회사에서 잘린 사람은 나뿐이었고, 그 사실에 수치스러웠다. 그 마음 안에는 이런 바람이 숨겨져 있었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

?? : “푸름 대리는 오늘 부로 해고됐다!”

동료 1 : “아니, 사장님. 이건 너무 하시지 않나요. 왜 푸름 대리님만 잘리나요. 푸름 대리님이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입힌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상사의 지시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동료 2 : “맞아요. 회사의 매출이 감소하는 게 푸름 대리님 탓은 아니잖아요. 만약에 바카라임이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 바카라임이 있죠.”

팀장 1: “제가 팀장이니, 제가 바카라임지겠습니다.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이건 도저히…푸름 대리가 잘리다니요.”

동료 3 : “푸름 대리가 잘리다니. 그럼 누가 일합니까? 이런 부조리는 참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일을 안 하겠습니다.”


나의 예상이 망상이었다는 건 해고 사실을 알린 날, 알게 되었다.

“푸름 대리가 이번 달까지 일하게 됐어.”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오해를 했다.

“아, 대리님, 다른 곳 가시는구나. 그럴 줄 알았어요. 더 큰 데 가서 일하셔야죠.”

‘어랏? 이게 아닌데?’

나는 속으로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들에게 닿지 않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아니, 저 잘린 거예요!’

“대리님, 아쉽네요. 그만두신다니.”

‘아니, 저 잘린 건데!’

졸지에 나는 퇴사자로 공표가 났다.


그 자리에서 ‘전 사실 자진퇴사가 아니라, 해고입니다. 해고라고요!’ 라고 모두의 귀를 잡아 당겨 모든 상황을 미주알 고주알 말하고 싶었지만, 내 선택은 '참는 것'이었다.

내가 겪은 비극과 남은 동료들의 일은 무관하길 바랐다. 그들의 일은 차질 없이 무탈하게 굴러가길 바랐다. 불미스러운 일이 그들의 업무에 방해가 될까 걱정을 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가 싶지만, 나는 동료들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이 있었다. 이 회사는 싫지만, 이 회사에 남아 있는 동료들은 행복하길 바랐다.

내가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선량함에 나의 불신과 냉소적인 마음이 백기를 들었으니까.


바로 직전 회사에서 사람들과 정을 쌓기는커녕 견제와 텃세로 모멸감과 무시까지 당해야 했던 나는 회사 사람들과 정을 쌓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 회사에 들어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달라졌다. 늘 생일을 챙겨주고, 예의있고 매너있게 말하며, 자신의 일을 바카라임지려는 태도가 좋았다.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따돌맂 않고 개인을 존중하고, 자신의 취미들도 나누며 돈독해지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동료가 될 수 있었다.


동료들은 내막을 알고, 나와 따로 식사를 하고,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 모두 나에게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대리님, 여기 나가서 더 훨훨 날아요.여기서는 못 날았잖아."

"그래요. 분명히 더 좋은데 가실 거예요."

"대리님이 있어서 회사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바라던 드라마 같은 시나리와 실제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째 내가 쓴 시나리오보다 실제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


왜 하필 교토에요?


“그래서 어디 가기로 정하셨어요?”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원 친구에게 내 해고 여행지를 공유하기를 고대하고 있던 차였다. 그 친구에게 말하면 분명히 좋아할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은 덩달아 나를 기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된다. 그동안 나와의 취향이 맞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여행지를 선택한 나를 무척이나 인정해 줄 거라 생각했다.

“교토에요.”


내게 해고 여행지로 ‘교토’만한 곳이 없었다. 교토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많다. 100년이 넘은 사찰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도시의 일상과 전통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도시의 매력을 발산하며 진화하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촌 정도 되려나. 나는 서울에서 (아직까진)서촌을 가장 좋아한다.

사원 친구는 내 예상대로 좋아해 주었다. 그 모습에 그만 신이 나서 나도 모르게 교토 여행을 어딜 갈지 낱낱이 공유했다.


“블루보틀도 가보고,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랑, 빔즈 샵도 가보고 싶어요. 교토 츠타야 서점도 가보구요.”

“우와, 완전 문화 기행 같아요.”

우쭐해진 게 왠지 어색하다. 이럴 땐 내 본심을 꺼낸다.

“그래도 제일 하고 싶은 건 나마비루(생맥주)나 먹고 싶어요.”

“아, 진짜 천국이죠.”



잔뜩 방탕하고, 완전 게으를거야.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해고의 시름은 온데간데 없다.

사실 이렇게 방탕하게 놀고 있을 때인가 싶다.

이런 고민들은 내 방문을 열고 찾아와 잔소리한다.


‘너, 지금 나이가 몇 인지 아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만 나가.”

그 다음에 다른 고민이 바통터치를 한다.


고민 1: 네가 잘 설득해 봐봐.

고민 2: 야, 쟤가 내 말을 듣겠냐.

고민 1: 좀 세게 말하면 듣지 않을까.

고민 2: 충격요법이다.


‘너, 모아놓은 돈도 없잖아.’

“아니, 일단 실업급여 나오잖아. 야, 나 좀 쉬게 얼른 나가!”

그리고 내게 등 떠밀려 방문을 나간다.


그런 불안함이 새어 들어올 때면 당당하게 ‘뻔뻔’해진다.

“어차피 누가 대신 쉬어주는 것도 아니잖아.”

일도 내가 아니면 누가 해 줄 사람이 있나. 돈도 내가 아니면 벌 사람이 있나. 그만큼 ‘쉼’도 내가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 할 일이건만, 자꾸만 휴식에 야박해지는 걸까.


자본주의 슬롯에서 시간은 ‘생산’을 넘어,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서 ‘생산’하지 못하면, ‘손해’라 생각하는 사상이 있다. 게으름을 피우면 죽어서 간다는 ‘나태지옥’은 수천년 전에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태어난 용어임에도 현대까지도 꽤 효과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윤회도, 천국도, 지옥도 모두 믿는 사람에게나 존재하는 말이지, 현실이 지옥이고, 천국이고 매일이 윤회인 내 일상에선 죽음 이후의 삶은 힘을 잃는다. 안정적인 삶을 세워볼까 하다가도 금방 허물어지고야마는 내 인생. 어쩌면 내일이 지옥일 수 있고, 내일이 천국으로 변할지 모르는 내 인생이 다음 생을 기다리는 억겹의 시간과 다른 점이 무엇이랴.


이렇게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하며 ‘자기연민’에 빠져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일단 내가 힘들다며 나 좀 도와달라 똥고집을 부리게 된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 고단함을 대변해줄 ‘나’의 분신이 하나 더 있다면 모를까. 나의 고단한 삶을 누가 깊이 이해해 줄 것인가.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와도, 어떤 위대한 심리상담가가 와도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챙기기로 했다.


다음 화는 다음 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필 받으면 먼저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글에 좋아요가 24개나 되었네요.

제 글을 알아봐 주시는 여러분들은 안목이 뛰어나시다고 생각합니다.^^


늘 경직된 제가 이런 너스레도 떨만큼 여유가 생겼네요.

따뜻한 관심 감사합니다.

힘을 내서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네요.

이런 에너지를 주셔서 또 감사합니다.(감사봇인가)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하트)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