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평론

시인이 걷는 길이 곧 시집이 된다.

by김원진

“선생님, 하늘이 너무 좋아서 제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아요.”


봄이 움트는 3월, 시인을 꿈꾸는 아이가 찾아와 건넨 말이다. 이상한 게 아니라고, 시인 김종삼도 봄 하늘이 너무 좋아 날아가 버릴까 봐 배 위에 큰 돌을 얹어두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는 눈을 빛냈다. 6학년을 넘어서며 생각이 많아졌다던 아이는 자신의 일상에 세상의 언어를 끌어와 시를 짓기 시작했다.


순수는 비눗방울과 같다. 하늘 높이 띄우려고 손을 대는 순간 터져버리거나, 세월의 흐름에 제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고 사라진다.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한 까닭이다. 서툰 내가 잘못 다가가 간신히 살아남은 순수를 터뜨릴까 두려워, 그저 시를 쓰면 보여달라는 조심스러운 당부만 전했다. 무명시인이 내게 보내오는 내밀한 습작들을 하나하나 즐기다 보니 문득 답례를 하고 싶어졌다. 청소년 문학 공모전에 내려고 골라둔 시 세 편을 앞에 두고, 스승이자 독자의 눈으로 미리 쓰는 평론을 시작한다.



분명 보들보들 했을

앳된 발일 텐데

일어설수록

걸어갈수록

짓눌려 굳어버린

청춘의 잔해

우리 아버지

사랑으로 중심을 잡고서

오늘도 쓸쓸히 세상을 연다고

— 습작시 〈발뒤꿈치〉 전문



시를 배우는 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제목 짓기다. 잔뜩 무게를 잡으며 주제를 제목으로 내세우면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강요당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일상의 구체적인 소재를 활용한 〈발뒤꿈치〉는 매우 적절하다. 굳은살은 걸음의 양에 따라 생기기 마련이다. 시인은 발뒤꿈치를 통해 가장의 삶을 자연스럽게 환기하며 독자를 배려한다. 정작 놀라운 것은 구조가 아닌 시선이다. 아빠의 발뒤꿈치에서 중년 가장의 삶을 대변하는 통찰과 공감을 길어 올린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처럼 타인의 삶을 어루만지는 포용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짓눌려 굳어버린’ 삶을 ‘사랑으로 중심을 잡는다’고 매듭짓는 서술에서 인간 삶의 보편적 가치까지 챙기는 완결성을 보여준다.



연홍빛에 달여 나온 산들바람

밀고 온 꽃가루에 간지럼이 나

뿌리내린 벚나무도

재채기를 하나

머리 위 벚

내 옆의 벗

같이 봄을 앓나 봐

— 습작시 〈봄앓이〉 전문



두 번째 시 〈봄앓이〉를 보면 아이다운 감성과 순수가 고스란히 느껴져 슬몃 웃음이 난다.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던 아이는 벚꽃 날리는 나무 아래를 친구와 걸으며 봄을 즐긴다. 바람이 전해준 꽃가루에 간지럼이 나서 코를 벌름거리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선하다. 벚나무 역시 봄에 취해 재채기를 하며 꽃잎을 날려댄다. 마지막 연에서 벚나무로 환유되는 자연과, 친구(벗), 그리고 화자가 일체감을 이루며 짧은 시를 깔끔하게 끝맺는다. 자연과 인간이 봄이라는 계절 속에서 하나로 동화하는 맑은 구도다.


해도 없는 밤인데

쨍쨍한 소리에

풀 속을 뒤졌더니

노고를 알아달라고,

그 누구를 알아달라고,

이슬 대신 맺힐 듯한

얇은 울음이

휘청이며 고여 있더라.

— 습작시 〈풀벌레〉 전문


〈발뒤꿈치〉가 정서의 깊이를, 〈봄앓이〉가 아이다운 순수를 보여주었다면, 세 번째 시 〈풀벌레〉는 시인다운 관찰과 기교의 정점이다. 휘청이며 고여 사는 풀벌레는 방황하는 또래일 수도, 실패를 맛본 어른일 수도 있다. 그 흔한 풀벌레를 버둥거리는 인간 군상으로 치환하는 감각도 놀랍지만, 흐느끼는 소리를 ‘얇은 울음’으로 나타내는 대목에선 탄성이 나온다. 청각적 상황을 ‘얇게’ 시각화하여 풀벌레의 고단함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한다. 주저리주저리 덧붙이지 않고 독자의 영역을 남겨둔 채 단호하게 매듭짓는 솜씨가 전업 작가 못지않게 능수능란하다. 만 열두 살 아이의 문장이라기엔 참으로 경이롭다.


이 평론이 후일 아이의 시집 뒷부분에 실리게 될지, 나의 기록장에 묻힌 채 풀벌레의 얇은 울음으로 남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새로 쓴 시를 채팅창에 불쑥 올린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기 이전에 아이의 첫 관객이 되어 이 은밀한 시슬롯를 즐긴다. 아이가 시인의 꿈을 이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다른 길을 걷는다 해도 괜찮다. 시인의 마음과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가 걸어가는 길 자체가 곧 한 권의 아름다운 시집일 테니까.



이 글은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며 '낡아가는 나'를 적는 산문 연재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의 한 편입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편씩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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