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여전히 물이 고여 있고

어떤 공간은 과거를 소환한다.

by김원진

내가 전북 익산에 둥지를 튼 것은 정확히 4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빚쟁이들의 서슬 퍼런 독촉을 피해 야반도주하듯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어린 나 역시 덩달아 쫓기는 신세였지만, 낯선 타향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묘한 두근거림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당시로서는 한적한 시골이었던 익산에 5층짜리 새 아파트가 번듯하게 들어섰는데, 아버지는 그나마 남겨놓았던 돈으로 서둘러 계약을 마치셨다.


집안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동생과 함께 쓸 우리만의 방이 생겼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 있었다. 더구나 철제 2층 침대라니! 암담한 앞날을 걱정하던 부모님의 깊은 한숨과 달리, 나는 아파트 이름이 ‘쌍용’이라는 사실에 운명적인 애정을 느꼈다. 용띠인 내가 살아갈 곳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복선은 없을 것 같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그 시절의 조경 유행을 보여주는 나무들이 아기자기하게 심겨 있었다. 단단한 가이즈카향나무와 꽝꽝나무, 사철나무와 벚나무가 호위하듯 서 있었고, 그 아래 거친 흙바닥에는 큰개불알풀과 제비꽃이 보랏빛 카펫처럼 아늑하게 깔려 있었다. 나는 유독 흔하디흔한 그 제비꽃이 좋았다. 새로 이사 와 친구가 없었던 데다 워낙 말수가 적었던 소년은, 단지 구석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 함께 놀아줄 대상을 찾곤 했다. 그때마다 눈을 맞춰 준 것이 바로 제비꽃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 구절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그 존재들, 세상의 변두리에 조용히 피어 있는 존재들에 관심을 두게 된 시점이 아마도 그때부터였으리라.


그 이전에 살았던 광주의 기억은 내게 다소 섬뜩하고 매캐하게 남아 있다. 다섯 살 무렵, 놀이터에서 놀다가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에 놀라 집으로 허겁지겁 도망쳤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 후로도 학창 시절 내내 금남로와 도청 앞 등지에서는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친척들이 모여 사는 고향이었음에도 그곳을 떠나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을 만큼, 내 귀와 코는 고단했다. 귀는 늘 윙윙거렸고 코끝은 시큰했다. 거대한 역사의 투쟁 속에서 평범한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내상(內傷)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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