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령사 터에서 발견한, 너와 나의 얼굴들
얼굴은 영혼이 지나간 흔적이자, 삶이 남기는 투명한 성적표다.
그 석상들에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나 종교적 근엄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오래된 시장통 귀퉁이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웃의 소탈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툭 앉아 있을 뿐이었다. 2001년 영월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나한 석상들의 이야기다. 거친 땅을 일구며 모진 세월을 버텨내던 민초 한 명 한 명을 그대로 붙잡아 앉혀두고 받아 적은 구술 기록 같달까. 세상은 늘 왕이나 영웅 중심의 거대한 역사를 기록하지만, 이름 없는 서민들에게도 저마다 파란만장하고 눈물겨운 개인사가 왜 없겠는가. 도록으로 마주한 나한상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석상에 깃든 수백 개의 우주가 아득하게 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국립춘천박물관에서 2017년에 개최한 그 화제의 전시회에 끝내 가보지 못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317명의 나한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날것의 감동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팍팍한 온라인 게임 생활과 일상의 밥벌이가 매번 발목을 잡았다. 주말마저 마음의 여유를 내지 못해 아쉬움을 곱씹고 있던 지난가을의 어느 날, 아내가 슬며시 나한전 도록을 내밀었다. 문화생활 한번 제대로 챙겨 누리지 못하는 남편을 향한 사려 깊은 위로였다. 아내의 선물에 마음이 환해진 나는 부리나케 도록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이제 막 자신만의 얼굴을 꿈꾸기 시작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을 산바카라을 나섰다.
대나무와 꽃백일홍이 어우러진 한적한 잔디밭, 늦가을의 보드라운 햇살을 만끽하며 기분이 좋아 찍은 셀카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익숙하고도 낯선 한 사내의 삶이 박혀 있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매와 툭 튀어나온 입술, 두툼한 아래턱. 부끄러운 외모만큼이나, 옹졸한 속내와 회한마저 얼굴이라는 거울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해 씁쓸했다. 지금이야 아우라 넘치는 유물로 대접받는 나한상들도 그 옛날에는 그저 길가에 채이던 돌이었고 평범한 이웃의 얼굴이었을 터. 내 거친 얼굴 역시 내가 지나온 삶의 이력을 단 한 치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새겨놓은 결과물이었다.
이미 수많은 욕망과 후회로 덧칠해진 내 얼굴은 이제 와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거친 비바람을 견디며 마모된 창령사 터의 돌들처럼, 내 삶도 그저 생긴 대로 순응하고 스스로를 달래가며 오래오래 귀하게 쓸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우리, 서로의 굳은 얼굴에 대고 손가락질하지 말자. '얼'이 '골짜기'를 이루며 패인 깊은 주름과 완고한 눈매는, 치열하게 삶을 버텨냈다는 영광의 훈장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정하게 건넨 순간들이 쌓이면, 그 흔적이 언젠가 늙은 얼굴 한편을 은은히 밝혀주지 않을까.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아빠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한 세월이 파도치며 지나가고 있는데, 철없는 아이들은 그저 세상 편한 표정으로 잔디밭을 뛰어논다. 하지만 저 백지 같은 아이들도 매 순간 저마다의 세상을 경험하며, 그 눈부신 느낌을 제 얼굴에 차곡차곡 새겨나가는 중일 것이다. 언젠가 마주할 아이들의 깊고 다정한 얼굴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청명한 가을이 지나고 있다.
이 글은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며 '낡아가는 나'를 적는 산문 연재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의 한 편입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편씩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