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으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기
가족의 첫 해외여행지로 타이완을 골랐다. 사실 떠나기 전부터 내 마음은 조금 어수선했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지난 49년의 삶이 그릇되었음을 알았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란 지금도 역시 젊음과 늙음, 승진과 퇴진, 기억과 망각 사이 어디쯤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시절이다. 험한 길이라도 길인 줄 알고 걷는 것과, 흐릿한 방향만 가늠하며 헤쳐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머리를 비우고 떠나면 좋으련만, 눈앞의 고민을 치우자 앞으로의 고민들이 그 자리로 밀려들었다.
여행을 앞두고 이 무슨 궁상인가. 이 글은 타이베이 여행기를 소재로 삼고 있으나, 내용물은 50대를 앞둔 한 남자의 지저분한 고민들이 한가득 담겨 있는 셈이다. 변기물 내리듯 고민들을 한 번에 씻어내 버리면 좋을 텐데, 살면서 말끔하게 고민을 지워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그간 날 괴롭혔던 고민의 찌꺼기들이, 노후된 하수도관 내부에 들러붙은 녹덩어리처럼 생각의 통로에 잠복하여 상념의 체증을 일으키고 있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한 뭉텅이나마 흘려보낼 수 있을까. 경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낯선 환경에 놓이면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며칠 대만에 있어 본 결과, 나는 가능하다. 오토바이가 쉭쉭 지나다니고, 적당한 규칙 위반이나 위생 문제도 유연한 삶으로 보일 정도로 거슬리지 않았다. 야시장 거리를 꽉 채운 취두부 냄새는 적응이 좀 필요했지만, 우육면이나 튀김 같은 느끼한 음식은 충분히 맛있었고 깔끔한 우롱차 한 잔으로 상쇄가 가능했다. 더듬거리는 영어일지라도 입으로 몸으로 말을 걸어가면서 정보를 얻고 문제를 해결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원하는 곳에 가서,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오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있던 곳이 편하고 만나던 사람들이 편하기 마련이라, 나도 여울 물가에 박힌 바위처럼 변화의 물살을 맞으면서도 버티는 쪽을 택할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내 안의 나는 여전히 변화를 원하고 있었고, 즐기고 있었다. 물론 20년이 넘게 한 온라인 게임을 다니면서 늘 다른 온라인 게임을 꿈꾸고, 타고 있는 차 속에서 다른 차를 갈망하는 게 경박한 변덕일 수도 있다.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고 이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는 일들 말이다. 그러나 나이 든 이들에게 정착은 정체가 되고, 정지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정지는 죽음을 부른다. 삶의 의지를 가진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걷고 싶으나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아직은 걸을 만하다고, 걷고 싶다고, 내 안의 내가 외치고 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어느새 여행 마지막 날이 왔다. 우리는 타이베이의 오래된 절 용산사에 들렀다. 문을 들어서자 향 연기가 마당을 낮게 감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절, 어딘가 이상했다. 관세음보살 곁에 바다의 여신 마조가 있고, 학문의 신 문창제군과 관운장까지 한 지붕 아래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불교와 도교와 민간의 신들이 자리를 다투지 않고, 한 향로 앞에서 같은 연기를 나눠 받고 있는 것이다.
절을 나와 걷는데 그 향로가 자꾸 눈에 밟혔다. 이 섬의 내력이 꼭 그 향로 같았기 때문이다. 원주민이 살던 땅에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배를 대었고, 명나라의 잔존 세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청나라가 섬을 거두었다가 백여 년 전에는 일본에 넘겨 오십 년을 내주었고, 광복 뒤에는 대륙에서 밀려온 이들이 다시 섬을 채웠다. 어느 것 하나 오롯이 제 것인 채로 남지 못했다. 과연 타이베이의 거리에는 일본식 목조 가옥과 중국풍 사당과 서양의 간판이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그런데도 이 도시는 낡아 보이지 않았다. 지우지 못한 어제 위에 오늘을 겹쳐 얹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향로가 그랬다. 수백 년 그을음이 앉은 몸통 위에, 오늘 아침 갓 만든 향이 꽂혀 새 연기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매표소 앞에서 향 한 다발을 사 들고 되돌아갔다. 젊음도 늙음도 아니고 이룬 것도 접은 것도 아닌 채로 서 있는 내가,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내가, 그 향로 앞에서는 이상하게 초조하지 않았다. 겹겹의 시간을 껴안은 채 매일 새 연기 한 줄을 올리는 일. 어쩌면 산다는 건 그게 전부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먼저 향에 불을 붙였고, 아내가 뒤를 이었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향을 꽂았다. 네 줄기 연기가 잠시 따로 오르다가, 향로 위 어디쯤에서 한 갈래로 섞여 지붕을 넘어갔다. 향을 사르며 나는 수십 년을 살아낸 내 모습과 이별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얹어 쓰기로 했다. 새 옷이 좋든 싫든, 입던 옷은 옷장에 넣어둘 때가 된 것이다. 복수여권에 도장이 처음으로 하나 찍혔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이 글은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며 '낡아가는 나'를 적는 산문 연재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의 한 편입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편씩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