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계 경상도인, 경계선 위 사나이

갓난쟁이 나를 안고 남포동을 거닐던 사나이

by김만끽

아빠를 알아가는 여정입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아빠에 대한 생각도 열어가길 바랍니다.


아빠는 '서울 물이 어설프게 배인 서울계 경상도인'이면서 '경상도계 서울인'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나이가 아닐까 싶다.


그는 경상남도 진해에서 1948년에 태어났다. 1953년, 다섯 살의 그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환도했다.


친할아버지와 국어사전 편찬과 관련해 육당 최남선과 연이 있었다. 아빠는 서울에 올라와서는 그 딸과 사위가 살던 집에 머물렀다. 최남선의 딸과 사위는 북한에 납치된 터라 집은 비어 있었다.


납북된 사람들 집에 살았다니 다섯 살 꼬마 아이는 그 이유나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몰랐겠지만, 그는 유년 생활부터 정치의 거센 파도 가운데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서울에서 국민학교부터 대학까지 마쳤다. 그의 소년기와 청년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공부 잘하는 모범생? 아니면 말썽꾸러기?


결혼하고 나서도 노는 걸 좋아했던 것을 보면, 항상 공부만 하던 범생이 스타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엄마와 결혼한 뒤 오빠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 게임 발령으로 인해 부산으로 터를 옮겼다. 자신의 온전한 가족, 엄마와 오빠를 데리고 여기저기 바다가 넘실거리는 부산에 내려왔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아빠가 나를 보면 으레 자랑스럽게 하던 얘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니 돌잔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이틀 동안이나 했었다.”


다른 하나는 “너 주먹만 할 때, 아빠가 너 품에 안고 남포동에 나가면 사람들이 막 킥킥거리고 그랬어. 남자가 애를 안고 다닌다고. 그때는 부산 남자들이 애를 길거리에서 안고 다니는 게 부산에선 흔하지 않았거든.”


서울에서 자란 아빠가 부산 한복판에서 아기를 안고 걸을 때, 사람들의 눈에는 신기하고 웃기게 보였나 보다. 그래도 아빠는 나를 애지중지하느라 그들의 시선일랑 자랑으로 바꿔 읽은 게 아닐까.


비록 노느라, 일하느라 늦게 들어왔지만, 집에 들어와서 12시가 넘어도 잠들지 않는 불량한 영아였던 나를 재우기 위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동네를 걸어 다니며 재웠다.


이 정도면 그의 사랑을 자랑할 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사랑을 주는 것이 30대 노동자의 삶에서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나는 부모의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옛날 얘기만 나오면 아빠는 신이 나서 이 말을 하곤 했다. 아빠는 말할 때 눈가가 달처럼 휘어지며 허허하고 웃었다. 나는 그 눈가와 아빠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하지만 속으로 혼자서 삐딱하게 ‘그럼 뭐 하나, 돌사진은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태워먹었고, 나 태어날 때, 정작 아빠는 놀다가 늦게 왔으면서.’라며 속으로 구시렁댔다.


아빠의 자랑 이야기를 들으면, 나 역시 갓난아기였을 때에는 귀한 존재였음을 발견한다. 물론 가끔 내 앞에서 어린 나에 대한 험담을 할 때도 있지만. 아주 가끔 엄마와 대화할 때보다 아빠와 대화할 때,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깨닫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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