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로 자란 아이의, 깊이 팬 세월
엄마는 전장에 나가 죽은 줄만 알았던 외할아버지가 귀향하고 낳은 첫아기였다. 그녀의 존재는 모든 친척들에게 크나큰 감동이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는 엄마를 한 송이 민들레처럼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 귀히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 입시로 외할아버지와 갈등이 있었을 때, 당당히 외증조할머니 집으로 가출할 수 있었다.
엄마 삼촌 중 한 분은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외증조할머니와 동네에서 점방(지금의 슈퍼마켓)을 운영했었다. 엄마는 외증조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삼촌네 점방에 가서 몰래 파려고 내놓은 사탕이나 주전부리들을 먹고는 했다. (참고로 엄마는 지금도 사탕을 좋아한다.)
엄마가 말하길, 삼촌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었다고 한다. 가끔은 알은체를 하면서도 “유진이 왔구나, 허허” 하며 사탕도둑을 사랑스러워했다고.
엄마는 그때 받은 사랑을 아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까? 10년 전에 엄마가 들려준 사탕 도둑 이야기는, 지금 엄마 마음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나는 첫 아기가 아니지만 받은 마음들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어릴 때 광복동과 깡통시장 쇼핑을 하다 해운대로 돌아가던 좌석 버스에서 무릎을 내어주던 엄마의 온기.
일곱여덟 살쯤 여름휴가를 갔다가 편도선이 부어 끙끙 앓았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살만해진 나에게 외할머니가 스팸을 가득 넣고 끓여준 부대찌개의 맛.
초등학생 때, 급체에 힘들어할 때 경숙이 이모가 바늘로 손발을 따줘 체증이 내려갔던 개운함.
오래되어 희미하지만 그래도 기억하는 걸 보니 나에게 따뜻한 기억이었나 보다.
엄마와 각자의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까.
언젠가, 더 희미해지기 전에 엄마의 기억 속 온기를 내 손으로 받아 적고 싶다. 그럼 내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겠지.
1955년 장유진 탄생.
1962년 금곡국민학교 입학.
1968년 금곡국민학교 졸업, 서울중앙여자중학교 입학.
1971년 서울중앙여자중학교 졸업, 서울중앙여자고등학교 입학.
1974년 서울중앙여자고등학교 졸업.
1977년 7살 많은 아빠, 김민과 결혼.
1978년 득남.
1982년 득녀.
2002년 부산장신대학교 입학.
2006년 부산장신대학교 졸업, 동 대학원 입학
2009년 부산장신대학원 졸업.
201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목사 안수.
엄마의 시간은 세월의 기록으로 증명된다. 하지만 엄마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기억이 있을까? 두근대던 순간이 있었을까? 아빠와 결혼하던 날은 행복했을까? 오빠와 나를 낳은 날은? 만학도로 학업을 다시 시작한 날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엄마에 대한 글을 썼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빠와의 교제를 외할아버지가 심히 반대하셨다고 들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해냈을 때,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물론 아빠의 심정도 마찬가지지만.
그녀의 연대기는 대강 짐작할 수 있지만, 그때 얼굴은 모른다. 나를 낳기 전엔 아빠가 노느라 다음날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아 경찰서며 병원을 찾아다녔다는 엄마, 얼마나 불안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신학대 입학 이후, 엄마는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엄마는 오순 언저리에, 싱싱한 두뇌를 가진 청년들도 받기 힘든 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엉덩이를 불태웠다.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웠을까.
신학생 시절의 엄마를 나는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집안일에 치이고, 돈 걱정에 찌든 엄마만 봐왔을 뿐이다. 사실 엄마가 왜 그렇게 신학 공부를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웃으며 공부만 하던 엄마의 얼굴이 어땠을지, 지금도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엄마가 목사 안수받는 날, 아빠는 구속된 상태여서 함께하지 못했다. (그 사연은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엄마는 그날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안수를 받았다. 나는 아빠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처절했다고 기억한다. 물론 엄마의 마음도 무겁고 어두웠으리라. 공부하는 내내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팍팍 밀어준 아빠가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때 기분이 어땠을지 궁금하기는 하나 애써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아마 물어봐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모른다고 답할 것이 빤하지만. 대신 그 시간을 버티듯 살아내 준 엄마를 마음으로나마 위로하고 싶다.
토닥토닥 내 엄마, 잘 살아줬어 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