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서 웃긴 우리 아빠
십여 년 전, 독립하기 전 일이다. 엄마는 혼자서도 큰 가구를 이리저리 잘 옮기는데 아빠는 도와준답시고 걸리적거리다가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고 결국 내가 대신 불려 갔다. 겨레붙이는 허리가 아프다느니 뭐니, 온갖 핑계를 대며 늘 빠졌다.
전구 갈 때만 해도 엄마는 불 끄고 두꺼비집만 내리고 전구를 가는데, 아빠에겐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하다. 고무장갑을 반드시 껴야만 전구교체를 시작할 수 있다. 엄마는 전구교체를 부탁했는데 고무장갑을 갖다 줘야 하는 군일이 다시 생기니 엄마 입에서는 군소리가 나온다.
“아이고! 차라리 내가 갈고 말지.”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아빠는 정말이지 심각하다. 그래서 더불어 나도 심각하다. 왜냐하면 나는 영락없는 아빠 딸이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 부녀의 손재주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가족 네 명 중에 손재주에 관해서는 아빠 최하위권, 그 윗 순위가 바로 나, 그다음 겨레붙이, 최상위권은 엄마가 되시겠다.
어쩌면 이것은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들어내는 엄마와 비교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닐까 생각을 넓혀보지만, 역시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빠 손은 개 발이다. 심지어 아빠 본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들에 대한 일머리도 없다. 한 우물만 판 아빠랄까.
손재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해야겠다. 내 손도 아빠 손을 닮아 개 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6학년 여름 방학 만들기 숙제는 집 만들기였다. 방학 내내 탱자탱자 놀기만 하던 내게 엄마는 방학숙제를 물어봤고, 집 만들기라는 숙제를 듣자마자 겨레붙이와 함께 바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이 손을 걷어붙이자 매우 크고 그럴듯한 집이 뚝딱 만들어졌다. 다음 날, 숙제 제출을 했는데, 결국 빵점을 맞았다. 내가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쉽게 들키다니.
가정 과목 바느질 숙제는 항상 삐뚤빼뚤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도와주려 했지만, 이미 삐뚤빼뚤한 바느질에 곧은 바느질을 더했을 때, 되돌아오는 것은 항상 최하점이었다. 이미 초반에 서툰 실력을 다 보여줬으니 막바지 곧은 바느질은 다른 사람 손을 탄 것을 선생님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목도리 짜기에 도전하면 망치기 일쑤여서 엄마가 실을 다시 풀어서 만들곤 했다.
엄마는 나에게 스스로 옷을 지어 입혔다. 엄마표 기마바지, 원피스, 빨간 울 블라우스와 체크 울혼방 바지, 떡볶이 코트 등은 모두 예쁘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입는 영광을 누렸다. 지금도 엄마는 유튜브를 보고 가죽이 벗겨진 의자에 가죽시트를 만들어 씌우거나, 프랑스자수 바카라을 사 와 자수 보에 여러 모양의 자수를 수놓기도 한다.
한 사람은 전구도 못 갈고, 다른 한 사람은 무엇이든 뚝딱 해내는 극단의 두 사람 가운데서 나는 아빠 손 한곳몰이 ¹, 겨레붙이는 엄마 손 한곳몰이라는 사실이 오랜 세월 내심 억울했다. 나는 지금도 엄마 손을 닮고 싶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말이 내게 닿았기 때문에 나는 말 그대로 개 손으로 몰아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내 손재주가 아빠를 닮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린 나에게 가위질을 다른 사람과 비교당한 기억이 남아 있다. 서울에서 우리 집에 놀러 온 아빠 친구딸과 색종이를 자르고 놀았는데, 그때 나를 보고 한 말이 마음에 남았다.
“저 언니는 가위질을 잘하는데, 너는 삐뚤빼뚤하네. 잘 좀 해봐.”
나는 그 이후로 선을 따라 쪽 바르게 가위질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엄마는 내가 꼼꼼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지만 난 두려워졌을 뿐이다. 아직도 엄마 아빠는 딸이 가위질을 어려워하는지 모른다. 그냥 난 아빠 손재주를 닮았다고 알고 있다.
가끔이지만 가위질이 필요할 때, 다이소 삼천 원짜리 재단기는 삐뚤빼뚤 손인 내게 작은 용기를 준다. 감사한 일이다. 아마 다른 일에 관심이 없는 아빠는 재단기가 있다는 것도 모를 테지.
아빠는 성인이 된 내가 보기엔 이상한 점이 여럿 있었다. 어이없는 얘기를 먼저 꺼낸다면 도무지 ‘소통’이라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슬롯생활 하면서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정에서 소통은 ‘무無’에 가까웠다.
재작년이었나 아빠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나와 새롭게 출석할 교회를 찾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빠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온다 간다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아빠의 거절 의사라고 생각했다.
마침 그다음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나는 오랜 지병인 편두통이 심해 교회를 가지 못했다. 하필 아빠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고 왔단다.
성도들은 노년의 키 큰 노인이 씩씩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예배 시간 내내 궁금했다고 한다.
‘저분은 어느 교회 소속 목사님이신 걸까? 아니면 선교사님?’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예배 인도자가 광고 시간에 어디서 오신 누구시냐고 물어보니,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특유의 의뭉스러움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만끽이 애비 되는 사람인데,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해서 왔더니 딸이 없네요. 허허.”
이 말을 들은 성도들은 저마다 웃음을 터트리며 저마다 자리에 없는 나를 꾸짖느라 바빴다. 결국 친한 성도인 휘니아 언니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있는 내게 전화해 이 사실을 전해주었다. 이후로도 나에게 전화로, 카톡으로 이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무슨 일인지 내막은 모르지만 그 상황 자체가 그들에겐 매우 큰 즐거움을 주었나 보다.
나 역시 아픈 와중에도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럼 어제 같이 가겠다고 확실히 말을 하던가. 왜 딸을 전 교인 앞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드느냔 말이다. 그 다음 주에 교회에 갔을 때도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그 이야기로 나를 타박하거나 아빠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고 또 환장할 노릇이다.
나는 평생 보아온 아빠 성격을 잘 파악하지 못하지만, 그때를 되돌아보면 아빠의 무응답은 서울계 경상도 사나이 나름의 대답이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곳몰이 ¹
'몰이'는 원래 짐승이나 물고기를 한 방향으로 몰아넣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한곳'을 붙여, 재주라는 것이 마치 한 사람에게서만 몰려온 것처럼 갈린 상황을 이르는 말로 썼다. 겨레붙이는 엄마의 손재주 쪽으로, 나는 아빠의 손재주 없음 쪽으로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