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by구기리

이성과 감정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이성은 '현실적 조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전했고, 감정은 '그 사람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준혁은 이 길고 긴 싸움의 끝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 결론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덜컥 겁이 났다.

일요일 오후, 그는 다은과 한강 근처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세 번째 만남이었다. 다은은 웃을 때 눈가가 먼저 접히는 사람이었고, 준혁의 시시한 농담에도 진심으로 웃어 주었다. 현실적인 조건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그녀에게 끌리는 감정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런데도 주춤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녀가 가진 배경, 나이였다.

다은이 핸드폰을 꺼내 조카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뒤뚱거리며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귀엽죠? 이모 노릇은 제법 해요." 그녀는 웃었고, 그 웃음 뒤로 준혁의 머릿속에서는 전혀 다른 계산이 시작되었다. 과학이 증명했다는 노산의 나이, 통계와 확률과 위험도. 숫자들이 그녀의 웃음 위에 차례로 얹혔다.


나이가 중요할까. 준혁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의 적지 않은 나이가 그를 멈추게 했고,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이성을 배제하고 감정대로 움직이려니 그 결말이 벌써 머릿속을 한바탕 휘젓고 지나갔다. '결국은 나이로 끝이 날 것 같은 결말.'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보는 일, 이것이 합리적인 판단일까, 비겁한 회피일까.

남자에게도 나이는 중요하다. 앞으로의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그렇기에 여자에게는 그 소중함이 곱절일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최고의 배려다. 그렇게 정리해 보아도 막상 핑계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좋지 않아서 그깟 나이로 핑계를 짓는 파렴치한 사람 같았고, 진심으로는 그녀가 좋은데 용기가 없어 나이를 방패 삼는 비겁한 사람 같았다.

"준혁 씨."

다은이 핸드폰을 넣으며 말했다.

"지금 계산하고 있죠?"

준혁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무슨 계산이냐고, 오늘 날씨가 좋아서 잠깐 멍했다고. 다은은 더 묻지 않고 커피잔을 들었다. 그 눈빛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고, 알면서도 모른 척해 주는 듯했다. 그것이 고마웠고,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준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어떤 고민이 생기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냈고, 이성과 감정을, 확률과 가능성을, 현실과 이상을 치열하게 싸움 붙인 끝에야 결론을 냈다. 친구들은 말했다. 그냥 해 봐, 생각이 너무 많아. 하지만 준혁은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가능성을 따져 보지 않으면 불안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삶은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쩌면 삶은 계산이 아니라 도약이었는지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일은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발을 내딛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집에 돌아와 준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야 했다. "다음 주에 시간 되세요?"라고, 혹은 "죄송하지만 제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라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성과 감정의 줄다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고, 그렇다면 준혁은 계속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었다. 움직이지 못한 채로.

나이는 핑계였을까, 진짜 이유였을까.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 직면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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