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by구기리

청첩장이 또 왔다.

지은은 봉투를 든 채 한참 서 있었다. 열지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회사 동기였고 예상했던 일이었는데도, 막상 손에 쥐니 무거웠다. 봉투 한 장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알았다. 올해만 벌써 네 번째였다.

결혼식장에서 지은은 늘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없어야 할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장면 속에 잘못 끼어든 사람 같았다. 하객들은 웃고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안부를 물었고 지은도 그렇게 했지만, 몸만 거기 있고 마음은 다른 곳을 떠돌았다. 축하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축하하기 힘들었고, 그 사실이 스스로도 불편했다. 친구의 행복한 날에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좋은 사람이 못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감정은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한때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다. 첫 온라인 게임이 안정적인 공기업이었고, 스물다섯에 입사했을 때 선배들은 여기는 일찍 결혼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십 대 중반이면 하나둘 청첩장을 돌렸고 지은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들어섰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는 그림이 당연하게 느껴졌고, 자신에게도 당연히 올 것 같았다. 그런데 오지 않았다. 스물일곱에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을 놓쳤다. 정확히는 놓친 것인지 보낸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고, 그 후로는 결혼이라는 종착지로 가는 길이 보이는 만남이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만남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사랑이라는 궤도에서 이탈해 방향을 잃고 떠돌다 추락하는 소행성처럼.

여행을 다녔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고 좋은 호텔에서 잤다. 그때는 좋았고 지금도 나쁜 기억은 아니었지만, 꺼내 보면 어딘가 씁쓸했다. 추억이 되어야 할 것들이 후회의 빛깔을 띠었다. 그 시간에 다른 무언가를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자에게는 생물학적 나이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지은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왜 그때 더 신중하지 않았을까, 왜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을까, 왜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을까. 탓할 것이 너무 많았는데, 탓할 것이 많다는 것은 결국 탓할 것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서른셋이 되던 해부터 달라졌다. 소개받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고 주변에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혼한 친구들은 자기 삶에 바빴고 아이를 낳고 육아에 치이며 지은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자연스러운 일이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앱을 깔고 프로필을 올리고 몇 번 대화를 나눠 보았지만 화면 속 텍스트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은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운 만남이란 없었고 모든 것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이어야 했는데, 그 의도와 계획이 지은을 지치게 했다. 결국 앱을 지웠다.


서른다섯이 되자 만남의 자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나오는 상대가 달라졌다. 이혼한 사람, 아이가 있는 사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 지은은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생각했다. 이것이 지금 내 위치인가, 이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인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어졌는데, 멈출 수도 없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타협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보호하다 보니 마음의 문이 어느새 좁아져 있었다.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고 지은이 들어가려는 마음도 없어졌다.

마지막 연애가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흐릿했다. 잊고 싶어서 잊은 것이 아니라 혼자의 시간이 너무 익숙해져서 저절로 흐려진 것이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잠드는 일이 특별하지 않게 되었고, 그 익숙함이 편안한지 외로운지도 구별되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이고, 어쩌면 둘 다 아니었다. 그냥 이런 삶이었다.

지은은 청첩장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결혼식은 다음 주 토요일이었다. 가야 했고, 웃어야 했고, 진심이 아니어도 웃는 얼굴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어른이 하는 일이었고 지은은 이제 그런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능숙해진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가로등 불빛이 흔들렸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이 보였는데 둘이었다. 나란히 걷는 그들을 지은은 오래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소행성은 궤도를 벗어나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지은은 천문학을 몰랐지만 그것만은 알 것 같았다. 어떤 것들은 한번 이탈하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것,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좁아지는 것, 그 좁아짐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너무 늦게 알았는지, 혹은 딱 맞게 알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불을 끄자 방이 어두워졌고 지은은 그 어둠 속에 잠시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창밖의 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은 비어 있었고 가로등만 혼자서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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