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도윤은 그 질문을 오래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생각하면 대답이 나왔고, 그 대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평범한 저녁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방으로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달랐다. 그녀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도윤의 핸드폰이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그것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려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본 뒤였으니까. 도윤은 수건을 천천히 내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아니, 알고 있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헤어질 생각이었어요?"
조용한 목소리였다. 떨리지도 않았고, 그래서 더 무거웠다.
친구와 나눈 대화였다. 헤어질까 고민이야, 라고 쓴 것은 몇 주 전이었다. 그때는 생각을 정리하려고 꺼낸 말이라고, 결정이 아니라 고민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그녀는 도윤이 씻는 사이에 그것을 보았다. 그녀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윤이 어딘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불안했을 것이고,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세상에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심연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하지만 그 심연을 들춰내는 것과 애초에 그 심연을 만든 것, 어느 쪽이 먼저 잘못인가. 도윤은 알고 있었다. 닭이 먼저였다. 자신이 먼저였다.
그녀가 헤어지자고 말했다. 도윤은 붙잡지 않았다. 헤어질까 고민이라고 쓴 사람이 붙잡는다는 것이 우스웠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녀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씁쓸한지 후련한지 알 수 없었다. 둘 다이기도, 둘 다 아니기도 했다. 그냥 멍했다.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알고 있었다.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지 않았고, 그러면서 상대가 지쳐 떨어져 나가도록 만들었다. 맞춰 주기만을 바랐고 배려를 당연하게 여겼으며, 끝에 가서는 헤어지자는 말마저 그녀의 입에서 나오게 했다. 자신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도록. 지독하게 못난 짓이었다.
며칠 뒤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괜찮으면 맥주 한잔 어때요.*
도윤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숨은 것이 있었다. 얼굴을 보자는 것,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 어쩌면 그 이상. 핸드폰을 내려놓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솔직히 큰 타격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매한 관계를 끝냈으니 오히려 홀가분할 거라고.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주말 오전에 오던 연락이 없었고, 밥을 먹고 어디 가자는 말이 없었고, 헤어질 때 잘 들어가라는 문자가 없었다. 그 없음들이 하나씩 쌓였다. 덤덤한 척, 괜찮은 척 며칠을 버텼지만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견디고 있었던 것임을, 그녀의 연락 한 줄에 흔들리고서야 알았다.
계륵이었다. 만나는 동안에는 헤어지고 싶었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막상 헤어지니 아쉬웠다. 버리자니 아깝고 취하자니 마땅하지 않은 것. 그녀가 좋아서인지, 혼자가 싫어서인지, 빈자리가 커서인지, 아니면 익숙한 것이 그리운 것인지 도윤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장을 썼다.
*갑자기? 오늘 일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 미안. 그리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흔들려서 더욱이 안 될 것 같아. 어떤 이유가 되었든 네가 고민 끝에 그만하자고 한 거잖아. 그 말을 할 때 많이 힘들었을 텐데 다시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보내고 나니 처음으로 비겁하지 않은 것 같았다. 흔들리기 전에 말한 것이었고, 만나면 또 흔들리고 또 애매해지고 또 그녀에게 상처를 줄 테니 그 반복을 끊은 것이었다. 처음으로.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음… 그래. 그래도 난 얼굴 보고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물어봤어…*
도윤은 그 문장을 오래 읽었다. 그녀는 제대로 된 마무리를 원했던 것이다. 카톡 한 줄로 끝난 것이 찜찜했을 테고, 그것은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답장을 쓰다 멈췄다. 미안하다고? 그래도 못 만나겠다고? 어떤 말을 덧붙여도 상처가 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상처였다.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답장하지 않았다. 말줄임표가 마음에 남았다. 그 점들 안에 도윤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던 마음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을 도윤은 알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말줄임표는 가시지 않았다. 한 번은 흔들리지 않으려 했는데 끝에서 또 침묵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선택한 것인지 도망친 것인지 구별되지 않았고, 어쩌면 처음부터 도윤에게 그 둘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면에 뜬 이름을 한참 바라보다가 도윤은 받았다.
"도윤 씨, 한 번만 만나요. 할 말이 있어요."
짧았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카페에서 그녀는 먼저 와 있었다. 도윤이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쳤지만 둘 다 웃지 않았다. 커피가 나왔는데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그날 핸드폰 본 것, 미안해요. 그러면 안 됐는데."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알고 싶었어요. 도윤 씨 마음이. 물어볼 수가 없어서요. 물어보면 도망갈 것 같아서."
도망갈 것 같아서. 그 말이 정확했다. 도윤은 애매하다고, 아직 모르겠다고 하면서 도망쳤을 것이다.
"미안해요." 도윤이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사과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 그냥 한번 보고 싶었어요. 이상하죠?"
이상하지 않았다. 도윤도 보고 싶었다. 다만 그 마음이 미안함에서 오는 것인지 정말 그리운 것인지 알 수 없었을 뿐이다. 헤어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녀가 맞춰 주던 것들, 늦은 밤에도 받아 주던 전화, 도윤이 말하기 전에 먼저 알아채던 마음.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았다. 너무 늦었고, 못난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에게 바카라임까지 떠넘겼던 자신이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었기에 도윤은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카페를 나오자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그녀와 나란히 잠깐 서 있었고, 어색했는데 그 어색함이 싫지 않았다.
"잘 지내요, 도윤 씨."
그녀가 돌아서 걸어갔다. 도윤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부르고 싶었지만 부르지 않았다. 멀어지는 간격만큼 관계는 마침표를 찍었고, 그 마침표를 찍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도윤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직접 하지 않았을 뿐 오래전부터 도윤이 찍어 온 것이었다.
닭이 먼저였다.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씁쓸했지만 후련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사람 같다고 도윤은 생각했다. 그 씁쓸함 안에 단단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번만큼은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는 것, 다음에는 비겁하게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다짐인지 후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다. 집에 가면 혼자일 것이었고, 혼자인 것이 싫어 도윤은 한참을 더 걸었다. 지독하게 못난 사람의 자리였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