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 나도록 주문을 건 주먹밥

[4부. 혼자라고 생각했던 날들]

byJEN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자꾸만 나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아침에는 커피를 마시자고 했고, 점심에는 밥을 먹자고 했다. 저녁이 되면 또 다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평소 같았으면 며칠에 한 번쯤, 아주 겨우 나갔을 약속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을 먹였다. 어느 날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고기가 두툼하게 들어간 햄버거를 먹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입안이 고기로 가득 찰 만큼 묵직한 햄버거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살면서 먹어본 햄버거 중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다. 한동안 많은 일들이 무덤덤하게 느껴졌는데, 그날은 햄버거를 먹으며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소한 감각이 새삼 반가웠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내가 겪은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고, 때로는 아무 상관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위로의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에 웃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걱정할 때 우리는 자주 먹을 것을 권한다. 밥은 먹었는지 묻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고,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안심한다.

상대가 겪고 있는 일을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한 끼만큼은 든든하게 먹이고 싶은 마음인거다. 그런데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은 전해지는 것 같다. 단순히 배가 부른 것과는 다른 종류의 든든함이 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내가 유독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이름을 잃고, 부모님과 헤어진 채 낯선 세계에 홀로 남겨진 치히로에게 하쿠가 주먹밥을 건네는 장면이다.


“먹어. 기운이 나도록 주문을 걸어서 만든 거야.”


치히로는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물고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그러고는 엉엉 울면서도 주먹밥을 끝까지 먹는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기운이 나도록 주문을 걸어 만든 주먹밥은 대체 어떤 맛일까.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밥이 꼭 그런 맛이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리고 혼자 있는 날에는 해변으로 산바카라을 나갔다. 건기의 발리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서 걷기에 좋았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아는 얼굴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서핑을 하러 나온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안녕이라는 말 대신 괜찮냐고 물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는 강아지를 산바카라 시키던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요즘 마음은 어떠냐며, 언제든 말동무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우리는 한동안 함께 걸으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이번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품에 안고 산바카라을 나온 친구 부부를 만났다. 그들도 반갑게 나를 맞아주며 다정한 말들을 건네주었다.


산바카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커피와 빵 사려고 카페에 들렀다. 그곳에서도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진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그렇게 평범한 아침 산바카라을 하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괜찮냐는 질문을 듣고, 위로를 받고,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


잠깐 앉아요
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
소문의 낙원
우린 모두 그곳을 찾아 떠나왔죠

— AKMU, 〈소문의 낙원〉


친구들이 내어준 따뜻한 수프와 고기,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은 사려 깊은 말들. 멀리서 보내준 안부 메시지들, 그동안 내 주변 사람들이 전해준 마음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나는 내가 이토록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던 이곳이 바로 소문의 낙원이었을지도.




그동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고,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것도 타고난 성격이라고 믿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때로는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내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서도 늘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과 한국과 발리의 친구들, 오랫동안 일상을 함께한 (전)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집에는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홀리와 몰리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인도여행도 그랬다. 애초에 인탄이 함께 가자고 제안하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인도에 갈까 말까 고민만 하고 있었을거다. 홀리가 떠난 뒤에는 엄마가 발리로 와 몰리 곁에 남아주셨고, 덕분에 나는 예정대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참 많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냈다고 생각했던 일들에도 사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때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때로는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었다. 그때마다 고마워하면서도, 그 마음들이 내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마음껏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내가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던 건,

언제든 혼자가 아닐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 꾸려온 삶이 참 자랑스러웠고, 지금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시간을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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