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혼자라고 생각했던 날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귀여운 동물들을 보며 마음이 녹아내리는 경험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강아지나 고양이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특히 개와 고양이는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그런 내게 고양이가 두 마리나 생겼다.
발리에 집을 짓기 시작한 첫날이었다. 공사장에서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발견되었다. 뼈가 드러날 만큼 말랐고 상태도 좋지 않아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고양이는 집을 짓는 동안 공사장 인부들과 함께 먹고 자며 무럭무럭 자랐다.
집을 지어주신 건축가 아저씨가 잠시 두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다 내게 물었다.
“한번 키워보는 건 어때요?”
나는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나 자신도 놀랐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망설여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집이 완성되었다고 이제 나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두 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한 전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대문 앞에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서성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눈이 아주 똘망똘망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면 남자아이는 조금 소심해 보였다. 여자아이 뒤에 몸을 숨긴 채 슬그머니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두 아이 모두 고양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잠에서 깼다.
나는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홀리와 몰리는 남매였지만 성격은 무척 달랐다.
몰리는 새로운 집에 금세 적응했다. 반면 홀리는 자신을 돌봐주던 건축가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처럼 며칠 동안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런 홀리가 마음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열고 나자 홀리는 완전히 다른 고양이가 되었다. 강아지처럼 내 곁을 졸졸 따라다녔고, 내가 어디에 있든 함께 있으려고 했다.
반면 몰리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담벼락도 잘 타고, 쥐도 새도 잘 잡아왔다. 나갔다가도 때가 되면 알아서 집으로 돌아왔고, 먹는 것도 까다롭지 않았다. 뭐든 야무지게 해내는 고양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홀리에게 마음이 더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다리가 불편했고, 가끔 아팠고, 예민한 구석도 있었다. 몰리는 알아서 잘 지내는 고양이였지만 홀리는 손이 많이 갔다.
홀리가 떠난 뒤, 몰리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몰리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집에 들어와 밥만 먹고는 다시 나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제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내 옆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 안에서 낮잠도 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홀리가 없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늘 함께 지내던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몰리 역시 낯설고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혹시 홀리를 기다리거나 찾느라 집에 머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실제로 한동안은 홀리를 찾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몰리의 행동이 자꾸 홀리와 닮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간식 봉지를 흔들어도 홀리만 신이 나서 달려왔다. 몰리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굴었다. 그런데 이제는 봉지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달려온다. 엉덩이를 두드려 달라며 울고, 만져 달라고 보채고, 밖에 나갔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겠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예전에는 모두 홀리가 하던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몰리가 똑같이 그런다.
그럴 때면 웃음이 나왔다.
‘너, 왜 이렇게 홀리 같아졌어?’
그러다 문득, 꼭 몰리가 홀리처럼 변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홀리와 몰리의 옛날 모습들을 떠올렸다.
몰리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지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면 홀리는 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몸집도 더 큰 녀석이 온몸으로 몰리를 짓누르며 장난을 걸곤 했다. 홀리는 집으로 돌아온 몰리가 반가워서 그랬을 테지만, 몰리 입장에서는 집에 들어와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홀리는 항상 내 곁에 붙어 있었고 얻어먹는 간식도 더 많았고 요구하는 것도 더 많았다. 하지만 몰리는 그렇지 않았다. 몰리가 나에게 요구하는 건, 밖에 나가고 싶으니 문을 열어 달라는 것 뿐.
나는 단순히 몰리가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늘 괜찮았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몰리는 마치 어린 동생을 둔 철든 누나 같았다.
몰리가 왜 달라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어쩌면 그동안 홀리가 내게 하던 행동들을 보면서, 몰리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조금 더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동안 괜찮다고 생각했던 몰리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몰리는 집 안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집에서 낮잠을 자고, 먹고 싶은 간식을 달라고 조르고, 내가 자신만 바라봐 주기를 요구한다. 이전보다 자기주장도 아주 또렷해졌다. 게다가 말이 어찌나 많은지!
이 녀석, 제법 외동묘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홀리가 떠난 뒤 달라진 몰리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제야 모든 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홀리와 몰리는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매일 나에게 찾아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했고, 내 곁에 머물고 싶어 했고,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끊임없이 말을 걸고, 엉덩이를 두드려 달라고 보채던 행동들이 그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 아이들은 그렇게 매일 내 곁에서 끊임없이 내게 관심을 쏟고 있었던 거다.
나는 오랫동안 갈 곳 없는 고양이 두 마리를 거두어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홀리와 몰리도 내가 외로울 틈이 없도록 나를 돌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 집에는 몰리와 나, 둘만 남았다.
몰리는 내가 부르면 어디선가 나타나고, 내가 방을 옮기면 슬그머니 따라온다. 때로는 옆에 앉아 한참 동안 말을 걸기도 한다.
나 역시 몰리에게 더 자주 말을 건다. 오늘은 어디에 다녀왔는지, 밥은 맛있었는지, 왜 이렇게 잠만 자는지. 그럴 때마다 몰리는 냐옹, 냥, 와앙, 하고 대답한다.
이렇게 수다스러운 고양이였나?
우리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물론 홀리가 없는 자리는 여전히 느껴진다. 가끔은 집이 너무 조용해서 낯설고, 아직도 홀리의 냐옹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몰리가 세상 편한 자세로 낮잠을 자고 있다. 한때는 밖에서 돌아다니느라 바빴던 녀석이 이제는 집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었다.
홀리가 있을 때와는 다른 하루다.
홀리의 빈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도 이 집에는 몰리가 있고,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