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혼자라고 생각했던 날들]
엄마도 돌아가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끝이 났다. 이제 집에는 몰리와 나, 둘만 남았다.
몰리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아침이면 밥을 달라고 울었고, 내가 움직이면 졸졸 따라다녔다. 나도 몰리에게 말을 걸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이 전보다 조용하게 느껴졌다.
특히 몰리가 산바카라을 나가거나 낮잠을 자는 시간이 그랬다. 예전 같으면 반가웠을 혼자만의 시간인데, 그 고요함이 조금 버거웠다.
나는 습관처럼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었다. 딱히 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지만, 가능하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골랐다.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있으면 집이 조금 덜 조용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집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도 심심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바카라을 읽었다.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았고, 혼자 여행하는 일에도 익숙했다. 오히려 아무런 약속이 없는 날이면 반가웠다.
그런데 요즘은 달랐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전처럼 편안하지 않았다. 몰리가 곁에 있는데도, 가끔은 집 안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았다.
한국을 떠나 동남아시아에서 홀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째.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토록 깊이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낯선 나라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좋았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었다. 발리에 정착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어를 배웠고, 생활에 필요한 행정적인 일들도 직접 알아보고 처리했다.
현지인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발리 사람이니 부탁하면 훨씬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었을거다. 하지만 되도록 직접 해보려고 했다.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부딪혀 보고 배워야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모르는 것은 묻고 배워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아보고, 하나씩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살아갈 곳을 마련했고, 내 생활을 꾸려왔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 큰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어느새 내가 외로움에도 강한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새벽에 일어나 서핑을 가는 날이면 홀리와 몰리도 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서핑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이면 언제나 두 고양이가 나를 반겼다. 몰리는 담벼락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홀리는 뒷마당 데크에서 대문까지 뛰어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늘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홀리와 몰리가 오독오독 아침밥을 먹는 동안 나는 씻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밥을 다 먹은 몰리는 다시 산바카라을 나갔고, 홀리는 내 옆 의자에 놓인 쿠션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혼자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일하는 동안에도 홀리가 몇 번씩 찾아와 말을 걸었다. 홀리가 낮잠을 자고 있으면 이번에는 어김없이 몰리가 산바카라에서 돌아와 나를 건드렸다.
해 질 녘이면 두 고양이는 다시 산바카라을 나갔고, 저녁에는 남자친구가 먹을거리를 사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함께 저녁을 먹고, 하루 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복되는, 너무 익숙해서 굳이 기억해 둘 필요조차 없었던 시간들. 그런데 지금은 그 하루의 모습이 달라졌다.
몰리는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말을 걸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몰리가 낮잠을 자거나 산바카라을 나가면 이제는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어색한 고독이 몰려왔다.
나는 왜 이렇게 외로워졌을까.
내가 알던 혼자는 이런게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