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위대하다.
어제 주문한 녀석이 오늘 저녁에 바로 배달되다니.
배송기사의 크나큰 노고가 있었다는 것은 감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이 감사하다. 얼마나 많은 배송제품을 차에 싣고 상차와 하차를 반복했으랴.
그것도 무더운 이 여름날에.
복 받을 지어다. 택배기사여.
그동안 대전 오피스텔 방에 오래된 에어컨만 있었다. 설정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비실비실 바람이 나오는 듯 마는 듯.
25도로 맞추나 19도로 낮추나 나오는 냉기의 수준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역시나 여름에는 녀석과 합작해야 시너지가 나겠구먼'
큰 맘먹고 베이지색 녀석을 골라서 주문했다.
당연히 G 선생이 사용후기와 댓글, A/S 현황까지 훑어보고 최고 가성비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세상에 두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장사꾼들이 믿지고 판다는 것과 어르신들이 빨리 가고 싶다는 것.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쿠x에는 싸고 좋은 물건이 많다는 것.
그런 것은 없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싸고 약간 좋은 것과 비싸고 좋은 것이 있을 뿐이다.'
나는 싸고 덜 좋은 제품을 선택했다.
하지만 G선생은 주문한 대로 가성비 최고의 제품을 추천했다.
그것도 어제 주문했는데, 오늘 저녁 도착이라니.
부리나케 언박싱을 해서 조립하고 틀었더니 선풍기가 베이지색의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거였다.
자태에 비해 원형 바닥은 미니멀리즘이다. 바닥에는 5cm 정도 크기의 조그 다이얼이 있다.
그 앞부분에는 바람모드별 버튼이 4개나 있고, 밑에는 전원버튼, 타이머 기능 버튼, 원형 화살표가 표시된 회전버튼 등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직접 터치할 일이 별로 없겠지만, 동글동글한 버튼 디자인이 심플한 느낌을 주었다.
하반부의 기둥 등뒤에도 버튼이 있다. 누르면 90도 단계별 높이 조절 톱니바퀴 모양의 걸개들이 있다.
그리고, 앞뒷면의 안전망과 날개. 흰색에 가까운 베이지색 제품은 전체 거실과 잘 어울린다.
최대 23단 풍속 조절에, 115cm까지 높이 조절이라니 더없이 훌륭하다.
바람도 에어컨과 함께여서 아주 시원하다.
이제 여름은 걱정 없다.
이름도 '늠름이'로 지었다. '늠름아, 올여름도 잘 지내보자꾸나.'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 봤을 일이다. 선풍기가 뭐라고.
하지만, 녀석에 이름을 붙이는 내 모습을 보고 나도 놀랐다. '어? 내가 왜 이러지?, 혼자 지내더니 이상해졌나?' 하다가도 피식 웃어넘긴다.
'아무렴 어때'
이제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늠름이부터 찾는다. 하루 종일 닫혀 있던 방안은 창문을 열어도 공기가 텁텁하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오피스텔 구조 탓이다. 늠름이를 돌려세워 창문을 향해 최대 풍속으로 틀어놓는다.
'너는 오늘부터 환풍기다.'
바람을 쐬려고 들인 녀석인데, 오자마자 정작 시키는 일은 선풍기가 아니라 집안 공기를 내보내는 거다. 늠름이는 군말 없이 제 할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