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열차에 맞춰 내 어깨에는 더 힘이 들어간다. 미간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열차가 대전역에 가까워질수록 흐릿했던 것들이 미팅 스케줄과 이메일 등 생각할수록 더 강하고 또렷해짐을 느낀다.
월요일이라 다른 날보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점점 힘이 들어가는 내 강박과 다르게 열차 안의 풍경은 너무나도 편안하다.
'소니' 브랜드가 작게 보이는 커다란 검은색 헤드셋을 머리에 휘감으며 고개를 뒤로 한 채 입 벌리고 자고 있는 20대 학생이 보인다. 근심걱정 없는 천진한 표정이 젊음을 대변해 준다.
그 옆 자리 꽃단장을 하고 나선 노부부가 잠시 긴장감을 늦춘다.
베이지색 페도라 사이로 흰머리가 삐죽이 나와 회색 남방과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 그 옆에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동네 미용실에서 새로 한 것으로 보이는 머리를 동그랗게 올린 할머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옆에 놓인 장난감 상자는 손주에게 주는 선물로 보인다. 반가운 가족들과의 만남을 앞둔 두 사람은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건너편의 모습들이 역방향인 내 자리에서 너무나 선명히 보였다.
어느덧 열차는 광명역, 천안아산역을 지나 목적지인 대전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대전역이 가까와지면
으레 그러듯 속도를 늦추고 오른쪽으로 원을 그리며 활처럼 휜 선로를 비잉 돌아 천천히 주행한다. 창밖으로 열차의 전체 칸이 모두 보이고 내가 어디쯤 있는 지를 깨닫는다.
입술을 앞으로 내밀며 후 우 바람을 넣어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방송이 나온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대전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급한 마음에 벌써 소지품을 다 챙겨 열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제야 일어서서 나는 좌석 위 선반에서 가방을 내린다. 읽던 바카라을 넣는다. 휴대용 물통도 넣는다. 좌석테이블을 살짝 잡아서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가방을 메고 내릴 문 앞으로 나아간다.
열차가 별 반응 없이 쓱 도착한다. 뿌우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혀처럼 나온 계단을 단단히 밟고 내려가 플랫폼에 양발을 내딛는다.
'아~ 다시 대전이구나.'
대합실 광장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역 앞 광장에 선다.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서 있는 대전 시내를 물끄러미 한번 쳐다본다. 기독교 전도 방송을 하는 분들, 정부 정바카라에 비판의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 택시 타려고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뛰어가는 출장자들.
매주 보는 모습이지만, 밝아진 하늘과 활기찬 사람들 움직임 덕분에 이제는 눈에 익어 너무나 자연스럽다.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하고, 지하철 입구로 들어선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버스에서 내리면 사무실 앞 정거장에 도착한다.
오늘도 지하철역 4번 출구 앞에는 실업자를 위한 AI 재교육 공지 전단지를 할머니가 돌리고 있다.
전단지를 달라고 손을 내밀어 받는다.
"이 전단지 받는 분들은 오늘 복 받는 하루가 되실 겁니다." 라고 지난주와 같은 멘트를 한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받은 전단지를 주머니에 넣는다.
사무실이 코앞이다.
입구에 이르자 다 왔다는 안도감이 한껏 몰려온다. 햇살까지 따뜻한 기운을 보탠다.
'이제 시작이다' 어깨를 한 번 쭈욱 펴본다. 건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