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리즈의 시작
"뭐라고? 지방에 갈 수도 있다고?"
사업부에서 소문이 제일 빠르다는 C차장이 귀띔해 준 괴소문은 나를 격앙시키기에 충분했다. 여태껏 회사가 그렇게까지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직 구성된 지 10개월 남짓인데, 또 흔들어서 새로 구성한다고? "
라운지 구석 자리에 앉아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다 말고, 컵을 내려놓았다.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소문으로 끝나지만, 그날 만은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그 소문은 스멀스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더 구체화된 소문이 사무실 바카라상과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녔다. 팀별로 몇 명이 발령이 날 예정이라고 했다. 몇 팀은 아예 사라질 수 있다고도 했다. 나이 50 넘은 사람들 위주로 한다는 이야기, 현재는 누가 누가 대상이라는 구체적인 소문마저 돌았다.
아주 조그만 점에서 시작해 점점 커져 나가는 소문. 그것은 우리 사업부 인력을 재배치하여 나이 많은 사람들은 지방으로 발령 낸다는 소문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를 어떤 식으로 발령낼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발 달린 소문은 일파만파 살생부를 퍼뜨리고 있었다.
'에이, 나는 아니겠지. 여기 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설마?...' 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소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안다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서 진위 파악을 위해 목을 기다랗게 빼고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신기루처럼 소문의 진위는 잡히질 않았다. 그럴수록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쌓여만 갔다.
결국 그 설마가 사실로 다가왔다.
덜컥 이메일이 날아와 꽂혔다.
지방으로 가라고 한다.
왜냐고 물을 대상도 없었다.
그게 다였다.
50 넘은 나이 말고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허탈했다.
한숨만 나왔다.
30년을 바친 회사에게 나는 이런 존재였단 말인가?
AI사업부로 옮기기 위해 고생했던 작년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임원과 팀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팀을 옮겼었다. 다른 사업부로 옮기겠다는 나를 Y본부장은 절대 허락해 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인력이 더 빠져나가봐야 좋을 게 없다는 투였다. 나는 강대강으로 맞섰다. 침몰해 가는 팀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한창 떠오르는 AI사업부로 옮겨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해법을 찾아 Y본부장 상위 임원인 S사업부장 면담을 요청했다. 기나긴 면담을 통해 결국은 AI사업부로 넘어왔다. 그 반대를 뿌리치며 넘어온 지 10개월 만에 지방발령이라니..
유배지로 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