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인구 35만 명이 넘고, 비수도권 지방도시 가운데 드물게 인구가 꾸준히 늘어왔다.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에 중앙고속도로와 KTX가 더해졌고, 의료기기 산업을 중심으로 기업과 산업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 혁신도시에는 공공기관이 이전했고 기업도시도 자리를 잡았다. 강원도 도시 가운데 성장이라는 단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곳이 원주다.
원주의 힘은 시 경계 안에 머물지 않는다. 횡성은 교통·쇼핑·의료·외식에서 원주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평창 남부 역시 원주의 영향을 받는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상업시설을 찾아 주변 지역에서 사람들이 들어온다. 서울과 충청, 영남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결절점이면서 주변 지역의 일상까지 끌어당기는 도시. 원주는 지금도 영서 남부의 확실한 지역생활권 중심지다.
그런데 원주를 걸어보면 인구와 산업, 교통망보다 더 인상적인 자산을 만나게 된다. 원도심에는 강원감영이 있고, 조금 더 걸으면 원동성당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 나타난다. 이 오래된 도심에는 지학순과 장일순이 함께 일군 민주화·생명·협동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고, 박경리와 김지하의 생명사상도 겹쳐 있다. 한국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대표하는 한살림의 중요한 뿌리도 이곳에 있다.
성장하는 산업도시 한가운데 이렇게 오랜 협동의 전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는 흔히 협동조합을 쇠퇴한 지역의 공동체 운동이나 슬롯적경제의 한 영역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전체를 부유하게 만드는 경제 시스템으로 발전한 곳도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가 대표적이다. 원주를 걷다 보면 뜻밖에도 볼로냐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원주는 지역생활권 중심도시가 갖춰야 할 앵커를 고르게 갖춘 도시다. 교통, 행정, 교육, 산업, 상업, 생활이라는 여섯 개의 앵커가 모두 작동한다. 오래된 교통과 행정의 중심성 위에 대학과 산업이 들어섰고, 상업과 의료가 주변 지역을 끌어당기며, 협동조합이라는 독특한 생활문화까지 축적했다. 원주의 넓은 생활권은 이 여섯 개의 앵커가 오랜 시간 겹쳐진 결과다.
첫째는 교통이다. 원주는 조선시대 한양과 관동을 잇던 관동대로의 핵심 경유지였다. 한양에서 양평을 지나 원주를 거쳐 대관령을 넘어 강릉·삼척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원주는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중요한 결절점이었다. 동시에 남쪽으로는 충주와 죽령을 거쳐 영남 북부로 이어지는 교통망과 연결됐다. 관동으로도, 영남으로도 통하는 길목에 원주가 있었다. 1942년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근대의 철도망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중앙고속도로와 KTX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교통수단은 달라졌지만 원주의 중심성을 만들어온 지리적 조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둘째는 행정이다. 1395년 태조 4년에 설치된 강원감영은 26개 부·목·군·현을 관할하며 조선의 8도제가 폐지될 때까지 약 500년간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 역할을 했다. 지금도 선화당과 포정루 등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영이 들어서기 전에도 원주는 고려 940년부터 원주라는 이름을 썼고, 몇 차례의 승격과 강등을 거치면서도 원주목의 체제를 유지하며 영서 남부의 중심 고을로 기능했다.
군사적 중심성도 행정 앵커를 뒷받침했다. 조선시대 원주진관은 춘천·정선·영월·평창·인제·횡성·홍천 등을 아우르는 거진이었다. 근현대에는 제1야전군사령부가 오랫동안 원주에 자리하면서 군사도시의 성격을 이어갔다. 특히 원주와 횡성의 결속은 강했다. 오늘날 원주지방법원 원주지원의 관할구역도 원주시와 횡성군이다. 2026년 원주시가 횡성군에 행정통합을 제안한 것 역시 두 지역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최근의 한 장면이다.
셋째는 교육이다. 원주에는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지역생활권 중심도시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에 그치지 않는다. 주변 지역의 젊은 인구를 끌어들이고 전문인력을 공급하며 연구와 창업, 의료를 연결하는 앵커다. 특히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교육과 연구, 의료 기능을 결합해 원주의 영향력을 주변 지역으로 확장한다.
넷째는 산업이다. 원주는 강원도에서 일찍 산업도시의 성격을 갖춘 도시로, 오늘날에는 의료기기 산업을 대표적인 특화산업으로 키웠다. 여기에 혁신도시의 공공기관과 기업도시의 기업들이 더해지면서 산업 기반도 확대됐다. 관광이나 행정 기능의 비중이 큰 다른 강원도 중심도시들과 달리 원주는 제조업과 의료산업, 공공기관과 기업이 함께 존재하는 비교적 다층적인 경제구조를 갖추고 있다.
다섯째는 상업이다. 중앙시장을 비롯한 원주의 상업 기능은 시 경계를 넘어 주변 지역의 소비를 끌어들인다. 법원 관할만 보면 원주지원의 관할구역은 원주시와 횡성군이지만 실제 생활권은 그보다 넓다. 횡성은 교통·쇼핑·의료·외식에서 원주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평창 남부 역시 원주의 영향을 받는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상업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주변 지역에서 원주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관계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고려시대에는 평창현이 원주의 속현이었고 영월 역시 한때 원주목에 속했다. 시대에 따라 행정구역과 제도의 경계는 달라졌지만 원주가 주변 지역의 생활을 끌어당기는 중심지라는 공간적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오늘날의 원주 생활권 역시 이런 역사적 중심성이 현대의 교통·의료·상업 기능을 통해 새롭게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은 생활이다. 여기에서 원주는 다른 지역생활권 중심도시와 구별되는 독특한 자산을 갖는다.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생명운동은 유기농업과 생활협동조합 운동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원주의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은 한살림의 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원주에서는 신용·소비·생산·의료·교육 등 여러 분야의 협동조합과 슬롯적경제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특정 산업이라기보다 원주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온 하나의 방식이자 이 도시가 축적한 생활문화다.
여섯 개의 앵커를 함께 놓고 보면 원주의 중심성이 왜 강한지 분명해진다. 서울과 강릉, 충청과 영남으로 연결되는 교통망이 있고, 오랜 행정 중심지의 역사가 있다. 대학은 인재를 공급하고 산업은 일자리를 만들며, 상업과 의료는 횡성과 평창 남부를 비롯한 주변 지역의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여기에 다른 도시가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협동조합 문화까지 더해진다. 원주는 하나의 강력한 앵커가 도시를 지탱하는 곳이 아니라, 여섯 개의 앵커가 겹치면서 넓은 생활권의 중심을 만들어온 도시다.
이처럼 여섯 개의 앵커를 고루 갖춘 원주가 왜 원도심에서는 그 중심성을 실감하기 어려운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지난 30여 년 동안 반복된 도시의 외곽 확장에서 찾을 수 있다. 중앙동·일산동·원인동·명륜1동·명륜2동·개운동·학성동·단계동으로 이어지는 기존 도심을 둘러싸고, 1990년대 초 단계동 택지개발, 1990년대 중후반 단구·구곡·단관지구, 1995년부터 시작된 무실지구, 2000년대 후반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2016년부터 추진된 남원주역세권까지 새로운 도시공간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성격과 규모는 달랐지만 원주의 중심을 바깥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의 개발이었다.
이 과정에서 원주는 성장했다. 시·군이 통합된 1995년 약 23만 7천 명이던 인구는 2007년 30만 명을 넘어섰고, 2015년 33만 명, 2025년에는 약 36만 2천 명에 이르렀다. 30년 동안 약 12만 명, 50%가량 늘어난 셈이다. 인구가 감소한 비수도권 도시가 많았던 시기에 원주는 계속 사람을 받아들였다. 늘어난 인구를 수용할 새로운 도시공간이 필요했고, 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을, 기업도시는 기업과 인구를 끌어들였다. 원주가 오늘날 강원도 최대 도시로 성장한 데에는 이러한 개발의 기여도 분명히 있었다.
문제는 그 성장을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기존 중심을 강화하기보다 새로운 중심을 계속 추가했고, 그 과정에서 원도심의 중요한 앵커들도 이동했다. 시청은 2007년 무실동으로 옮겨갔고 시외버스터미널은 단계동으로 이전했다. 중앙선 원주역도 2021년 원도심을 떠나 무실동으로 옮겼으며, 반곡동에는 혁신도시의 공공기관들이 자리 잡았다. 새로운 개발지가 생길 때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시설도 함께 이동하면서 도시 기능은 여러 방향으로 분산됐다.
교육 앵커도 원도심과 거리가 있다.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는 흥업면 매지리에 있고 다른 대학들도 대부분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이 많은 도시임에도 대학가의 젊은 인구와 문화가 원도심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기 어려운 공간구조다. 중요한 예외가 일산동의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다. 대학병원이면서도 원도심에 남아 중앙시장·원동성당·강원감영 등과 함께 꾸준히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결국 원주는 도시 전체의 성장과 중심의 성장이 엇갈린 사례가 됐다. 인구와 산업, 교통망은 성장했지만 시청은 무실동, 터미널은 단계동, 대학은 흥업면, 공공기관은 반곡동, 기업도시는 지정면으로 나뉘었다. 앞 절에서 확인한 여섯 앵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으로 흩어진 것이다. 도시의 몸집이 커지는 동안 중심의 밀도는 오히려 낮아졌다.
지난 30년의 경험이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원주는 인구 감소 때문에 중심을 잃은 도시가 아니다. 성장 과정에서 중심의 힘이 분산된 도시다. 한쪽에서는 중심 기능을 외곽으로 옮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예산을 투입해 원도심을 재생하는 역설도 여기에서 생겼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성장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원주를 다시 연결할 힘을 찾는 일이다.
그 힘은 원주가 이미 가지고 있다. 원주의 협동조합은 흔히 슬롯적경제의 역사로 소개되지만, 그 뿌리를 따라가면 더 넓은 정신적 전통과 만나게 된다. 1960년대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함께 시작한 협동운동은 1970년대 민주화와 지역공동체 운동을 거쳐 생명운동으로 영역을 넓혔고, 유기농업과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원주에 터를 잡은 박경리와 김지하의 생명사상까지 겹치면서 원주에는 생명·공동체·협동을 중시하는 독특한 정신적 토양이 형성됐다.
중요한 것은 이 유산을 과거의 역사로만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은 작은 노동자협동조합에서 출발해 제조업·금융·유통·교육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협동조합 복합체로 성장했다. 2025년 기준 매출은 113억 유로를 넘고 7만1천 명 이상을 고용하며, 바스크 지역 최대 고용주이자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집단이다. 금융과 교육, 연구개발을 공유하며 개별 기업이 혼자 갖추기 어려운 경쟁력을 만들어낸 결과다. 협동조합도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산업 생태계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볼로냐가 속한 에밀리아로마냐도 주목할 만하다. 이 지역에는 4,281개의 협동조합이 있고 약 23만 3천 명이 일한다. 연간 매출은 440억 유로에 달해 지역 전체 기업 매출의 약 14%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에밀리아로마냐는 1인당 GDP가 4만 4천 유로를 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부유한 지역이다. 협동조합과 전문화된 중소기업이 촘촘한 협력망을 형성하며 함께 성장한 결과다. 생산과 금융, 유통, 서비스에서 기업들이 협력하고, 그 위에서 개별 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웠다. 협동조합 경제의 규모가 커지는 것과 시장경제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주에서 다시 협동조합을 이야기한다는 것도 협동조합의 숫자를 늘리자는 뜻은 아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넘어 협동의 능력을 원주 경제 전체로 확장하자는 것이다. 원주에는 이미 의료기기 기업과 대학, 병원, 연구기관이 있고 혁신도시에는 공공기관이, 기업도시에는 새로운 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이들이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 금융과 창업 지원에서 협력한다면 원주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협동의 경험은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도시를 선택할 때 교통과 토지뿐 아니라 인재와 대학, 연구기관, 지역의 협력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기업과 대학, 병원과 공공기관이 연결되어 움직이는 도시라면 새로 들어온 기업도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며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다. 협동의 문화 자체가 산업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원주의 협동조합은 그래서 보존해야 할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는다. 원주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협동의 정신을 현대의 산업과 연결한다면 기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받아들이는 미래 자산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힘을 도시의 어디에서 다시 모으느냐다.
원주시의 공식 비전은 '건강과 웃음이 넘치는 젊음의 미래도시'다. 미래산업·스마트도시, 첨단의료·안전도시, 친환경·관광도시, 균형도시를 주요 목표로 제시한다. 모두 원주의 미래에 필요한 목표다. 여기에 하나를 더했으면 한다. 협동조합 도시다.
이 비전을 실현하려면 공간적 중심도 함께 복원해야 한다. 2040 원주도시기본계획은 원도심·혁신도시·원주역세권 등을 하나의 도심권으로 묶는 공간구조를 제시한다. 특히 원도심에서 무실동과 원주역세권을 거쳐 혁신도시로 이어지는 축은 하나의 연속된 중심 생활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여러 중심을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그 연결의 중심은 원도심이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원주는 무실동, 단계동, 혁신도시, 기업도시, 원주역세권으로 넓어졌다. 이미 만들어진 도시를 되돌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각각의 신도시와 산업거점은 자기 역할을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도시가 아무리 넓어져도 사람들이 ‘여기가 원주의 중심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장소는 필요하다.
원도심 복원은 그래서 낡은 상권 하나를 살리는 문제가 아니다. 여섯 번의 개발로 흩어진 원주에 다시 중심을 만드는 일이다. 강원감영이라는 역사적 중심, 중앙시장이라는 상업적 중심,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라는 의료 앵커가 있고, 원동성당을 비롯해 생명운동과 협동조합의 기억이 남아 있다. 이 자산들을 다시 연결한다면 원도심은 과거의 중심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협동조합 도시 원주의 정신과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 중심이 될 수 있다.
볼로냐가 원주의 모델이라는 뜻은 아니다. 두 도시의 역사도 산업구조도 규모도 다르다. 원주가 볼로냐에서 배울 것은 도시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축적한 협동의 문화를 현대 경제의 경쟁력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볼로냐가 협동조합과 중소기업의 네트워크를 지역경제의 힘으로 만들었다면, 원주에는 의료기기 산업과 대학, 병원, 공공기관, 기업도시 그리고 오랜 협동조합의 전통이 있다.
원주는 이미 성장하는 도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도시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지금 가진 산업적 자산에 협동의 힘을 더하고, 흩어진 도시를 다시 연결할 중심을 만드는 일이다. 기존의 성장 비전에 ‘협동조합 도시’를 더하고, 그 비전을 원도심에 뿌리내리는 것. 그것이 볼로냐를 바라보며 원주가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미래다.
원주가 볼로냐를 닮을 필요는 없다. 협동의 전통을 산업의 경쟁력으로 바꾸고, 그 힘을 원도심에 다시 모을 수 있다면 된다. 그때 원주는 한국의 볼로냐라는 이름에 가장 가까운 도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