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慶尙道)’라는 이름의 뒷글자를 내준 고을, 한때 웅주거목(雄州巨牧)이라 불리던 상주는 지금도 하나의 생활권을 실질적으로 묶어내는 도시다.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의 관할은 상주시·문경시·군위군에 걸쳐 있고, 상주시 자체도 1읍 17면 6행정동으로 이루어진 넓은 농촌형 도시다. 그러나 인구는 1966년 25만 602명을 정점으로 60년 가까이 줄어 2025년 말 8만 9,888명까지 내려갔다. 한때 경상도의 중심이었던 도시가 이제 9만 명을 지키기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생활권 안에서 상주의 중심성이 이미 오래전에 도전받았다는 사실이다. 1982년 시행된 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이 지역 농촌도시생활권의 중심을 상주가 아니라 점촌으로 지정했다. 이 프로젝트가 다루는 23개 생활권 가운데 당시 중심도시를 조정한 두 곳 중 하나가 바로 상주-점촌 생활권이다.
왜 국가는 40여 년 전 점촌을 중심으로 보았고, 지금은 왜 상주를 다시 중심에 놓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상주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아직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보인다. 인구 감소에 대응해 상주시가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 온 ‘압축도시’ 전략도 그 연장선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상주의 위상은 지금의 행정구역만 보아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조선 후기 상주목사는 상주진관의 주장으로서 상주뿐 아니라 개령·김산(지금의 김천)·지례·함창의 군사 행정을 관할했고, 조선 전기에는 성주·선산·고령·문경까지 상주진관에 속했다. 오늘날 여러 시군으로 나뉜 경북 서북부의 상당 부분이 상주를 중심으로 묶여 있었던 셈이다.
상주의 위상을 결정한 또 하나의 축은 경상감영이었다. 태종 8년(1408년) 경주에 있던 경상도 감영이 상주로 옮겨오면서 경상감사가 상주목사를 겸했고, 상주는 경상도 전체의 행정 중심지가 됐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감영이 여러 곳을 오간 뒤 선조 34년(1601년) 대구에 정착하기까지 약 180여 년 동안 상주는 경상도의 수부(首府)였다.
상주의 힘은 행정과 군사에만 있지 않았다. 낙동강 본류가 흐르는 길목에 자리해 남해안의 소금과 어물, 내륙의 곡물이 모이고 흩어졌고, 부산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도 상주를 관통했다. 수로와 육로가 겹치는 곳에 장시가 발달했고 사람과 물산이 모였다. 쌀과 누에고치, 곶감이 모두 흰빛을 띤다 해서 생긴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는 이름도 이러한 농업과 상업의 전통 위에서 만들어졌다. 감영과 영남대로, 낙동강 수운이 한 곳에서 만났다는 것이 웅주거목 상주의 힘이었다.
그 시절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상주향교는 경상북도에 남은 대설위(大設位) 향교 두 곳 가운데 하나다. 대성전은 정면 5칸·측면 3칸 규모인데, 정면 5칸의 평면은 대체로 목이나 대도호부급 큰 고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감영도 사라지고 읍성도 헐렸지만 향교의 규모는 상주가 한때 어느 정도의 도시였는지를 지금도 물리적으로 증언한다.
근대 이후 상주의 역사는 도시의 중심을 하나씩 바깥으로 내준 역사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철도였다. 1905년 개통한 경부선은 대전을 지나 김천·구미·대구로 이어지며 상주를 비껴갔다. 조선시대에도 큰 시장으로 이름났던 김천은 경부선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으며 근대 교통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김천은 조선 후기까지 상주진관에 속했던 김산현이었다. 상주가 지휘하던 고을이 근대에는 상주가 갖지 못한 간선철도를 얻어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상주가 철도와 연결된 것은 1924년 경북선이 놓이면서였다. 그러나 경부선 김천역에서 상주·문경·예천을 거쳐 영주로 이어지는 지선이었다. 간선이 아니라 지선을 통해, 그것도 옛 관할 고을이었던 김천을 거쳐야 전국 철도망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근대 교통망에서 달라진 상주의 위치를 상징한다.
두 번째는 원도심의 물리적 해체였다. 1912년 상주읍성의 성벽과 사대문이 헐렸다. 당시 지적도를 보면 철거된 자리 상당 부분이 이후 일본인 소유로 넘어가 상업지로 이용됐다. 읍성 철거는 단순히 성벽 하나를 없앤 일이 아니었다. 성벽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도시의 공간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도로와 상업지로 재편되면서, 훗날 원도심의 역사적 구조를 복원하기 어렵게 만드는 토지 구조가 남았다.
세 번째 도전은 점촌에서 왔다. 1954년 문경탄전의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문경선이 점촌역에서 경북선과 갈라져 나가면서 점촌은 철도망의 결절점이 됐다. 탄광 호황기의 1970~80년대에는 극장과 상업시설, 주조회사가 들어서고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로 돈과 사람이 몰렸다. 상주 사람들이 옷을 사거나 유흥을 즐기기 위해 점촌행 버스를 타던 시절도 있었다. 1982년 국토계획이 상주가 아니라 점촌을 이 생활권의 중심으로 지정한 데에는 이런 현실이 있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중심의 분산이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상주시는 토지 확보가 어려운 원도심보다 개발이 쉬운 낙동강변에 상당한 관광 투자를 해왔다. 2009년 시작된 4대강 사업을 계기로 경천섬 생태수변공원(2012년 조성)과 회상나루 관광지가 개발됐고, 상주자전거박물관(2010년 확장 이전)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2015년 개관)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경천섬은 이제 상주를 대표하는 관광공간이 됐다. 그러나 도시의 새로운 매력이 원도심이 아니라 외곽에 집중되면서 상주의 중심을 다시 바깥으로 끌어내는 효과도 생겼다. 근대에는 철도와 산업화가 상주의 중심을 밖으로 밀어냈다면, 2010년대 이후에는 도시 자신의 선택이 중심의 분산을 가속한 셈이다.
그럼에도 상주를 다시 이 생활권의 중심으로 볼 이유는 분명하다. 점촌이 한때 상업과 교통에서 상주를 앞섰지만, 행정·사법·의료·교육 같은 고차 생활서비스는 상당 부분 상주에 남았다.
가장 분명한 것이 행정과 사법이다.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의 관할은 지금도 상주·문경·군위에 걸쳐 있고, 상주세무서는 상주와 문경을 함께 관할한다. 다만 군위가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현재 법원의 관할구역과 실제 생활권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생활권의 관점에서 중요한 관계는 상주와 문경이다.
의료에서는 1955년 대구적십자병원 상주분원으로 출발한 상주적십자병원이 경북 서북부의 공공의료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상주시의 압축도시 전략에서도 적십자병원 신축이 주요 사업으로 포함돼 있다. 병원은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생활권에서 도시의 중심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앵커다.
교육에서는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가 있다. 1921년 상주공립농잠학교로 출발해 1999년 상주대학교로 성장한 이 대학은 2008년 경북대학교와 통합됐다. 통합 이후 입학 성적이 개선되고 유사·중복 학과가 정리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상주대학교’라는 이름을 접고 경북대의 한 캠퍼스가 됐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학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도시의 이름을 외부에 알리는 지역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경북대라는 더 큰 이름을 얻은 대신 상주는 자신의 이름을 건 고등교육기관을 잃었다. 최근 학생 충원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질문은 경북대 상주캠퍼스가 앞으로 상주의 도시 앵커로 얼마나 강하게 기능할 수 있느냐이다.
교통은 상주의 약한 앵커다. 경북선의 상주역을 비롯한 여러 역이 남아 있지만 철도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상주종합버스터미널이 사실상 주요 관문 역할을 해왔다. 이 상황을 바꿀 가능성이 문경~상주~김천 철도다. 총연장 70.1㎞, 총사업비 약 1조 6,025억 원 규모로 2033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 중이며, 2026년 현재 기본설계가 진행되고 있다. 계획대로 연결되면 상주는 수도권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는 동시에 문경과 김천을 다시 하나의 철도축으로 만나게 된다. 과거 철도가 상주를 주변으로 밀어냈다면 새로운 철도가 다시 중심성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 상주의 오래된 교통 자산인 낙동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007년 제기됐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서는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구상이 논의되면서 상주 일대의 지리적 위치가 다시 주목받은 적이 있다. 계획 자체는 2008년 사실상 백지화됐고 이후 4대 강 사업으로 전환됐다. 실현 여부와 별개로 이 논의는 상주가 역사적으로 수운과 육상교통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고, 한반도 내륙 교통망을 새롭게 구상할 때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의 바탕은 여전히 농업이다. 쌀·곶감·포도·오이 등 상주의 농업 기반은 강하다. 여기에 스마트팜혁신밸리와 K-푸드 산업 육성처럼 기존 농업을 고도화하려는 정바카라이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차전지 클러스터 산업단지와 기회발전특구, 드론 실증도시처럼 새로운 산업을 외부에서 끌어들이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상주의 산업 전략에는 결국 두 가지 길이 동시에 존재한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는 것과 이미 가진 산업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상업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상주중앙시장 등 원도심 전통시장이 생활권의 상거래 기능을 유지하고 있지만, 탄광도시의 기억을 활용해 원도심을 브랜드화하고 있는 문경의 점촌점빵길과 비교하면 상주 상권의 정체성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결국 상주의 압축도시는 행정기관과 병원만 모으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소비하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상주시는 2025년부터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도시공간 전략으로 ‘압축도시’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흩어진 도시 기능을 원도심에 다시 모아 인구가 줄어들어도 중심은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상주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자전거 도시’를 도시 브랜드로 키워왔고, 2000년대 초에는 ‘자전거 수도’로 불리기 시작했다. 평탄한 지형과 높은 자전거 이용률을 바탕으로 자전거도로와 관련 시설을 꾸준히 확충해온 도시다.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보행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구조는 압축도시와도 잘 맞는다. 그런 점에서 압축도시는 상주에 전혀 새로운 도시모델이라기보다, 이 도시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활방식을 인구감소 시대에 맞게 다시 조직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 전략의 의미는 상주가 중심을 잃어온 두 가지 경로를 생각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는 상주가 선택하지 않은 변화였다. 읍성이 철거됐고 경부선은 상주를 비껴갔으며 산업화 과정에서는 점촌이 새로운 상업·교통 중심으로 떠올랐다. 다른 하나는 상주 자신의 선택이었다. 원도심보다 개발하기 쉬운 낙동강변에 관광시설을 집중하면서 도시 기능을 다시 외곽으로 분산시켰다.
압축도시는 이 두 흐름을 되돌리는 작업이어야 한다. 통합신청사와 철도역, 적십자병원 같은 핵심 앵커를 원도심에 집중시키고 남성지구 뉴빌리지 사업을 통해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는 것은 그 출발이다. 1912년 철거된 상주읍성 북문도 2024년 발굴조사에서 북문터가 확인된 뒤 복원사업이 본격화됐다. 상주시는 2026년 복원공사에 들어가 2027년 북문역사공원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단순한 문화재 복원을 넘어 원도심에 다시 장소성을 부여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압축도시 전략과 방향을 같이한다.
영월이 애초에 압축된 지형과 도시구조를 물려받은 도시라면 상주는 다르다. 한 번은 외부의 힘에 의해, 또 한 번은 자신의 선택으로 흩어진 도시를 다시 모아야 한다. 같은 ‘압축도시’라는 말이라도 상주에서 그 의미가 다른 이유다.
두 번째 과제는 압축된 중심을 생활권 전체와 연결하는 것이다. 상주와 문경은 오랫동안 경쟁하면서도 서로 다른 기능을 나눠 맡아왔다. 상주는 역사·행정·사법·의료 기능을 유지했고 점촌은 산업화 시기 상업과 교통에서 강점을 보였다. 어느 한 도시가 다른 도시의 기능을 모두 가져오는 방식보다 두 도시의 역할을 연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문경~상주~김천 철도가 세 도시를 다시 하나의 축으로 묶는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압축은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강한 중심을 만들수록 주변과 더 잘 연결돼야 한다.
세 번째는 지역의 경제와 문화를 압축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실험이 함창에서 시작됐다. 전통 명주산업 중심지 함창읍의 오동리에 위치한 함창명주 메이커스페이스 ‘명주정원’은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 아워시선이 운영하며 전통 명주를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몽잠’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섬유작가들과 협업하고 주민과 이주여성이 참여하는 바느질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생산과 디자인, 커뮤니티를 연결한다. 2025년 국립무용단 신작 〈미인〉 의상에 함창명주가 사용되고 보그 코리아 화보로 소개된 것은 오래된 지역산업이 현대적인 콘텐츠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 실험은 압축도시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한다. 압축도시가 흩어진 시설을 원도심에 모으는 공간 전략이라면, 명주정원은 흩어진 생산자와 기술, 역사와 이야기를 하나의 브랜드로 압축하는 작업이다. 상주의 미래가 반드시 외부에서 거대한 산업 하나를 끌어오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삼백의 고장에서 축적된 농업과 명주 같은 오래된 자산을 현대적인 산업과 브랜드로 바꾸는 것도 중심성을 만드는 방법이다.
원도심과 외곽 개발 사이의 긴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천섬 일대가 친수거점지구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개발 가능성이 열렸다. 낙동강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개발의 우선순위다. 외곽의 새로운 관광지가 원도심을 대신하는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압축된 원도심으로 사람을 연결하는 자원이 되어야 한다.
상주가 다시 웅주거목이 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인구가 줄어든 도시가 얼마나 작아질 것인가가 아니라, 작아진 뒤에도 주변 지역이 의지하는 중심으로 남을 수 있는가이다. 흩어진 행정·의료·교통 기능을 원도심으로 모으고, 그 중심을 문경과 주변 농촌에 다시 연결하며, 명주와 농업 같은 오래된 자원을 새로운 산업과 문화로 바꿀 수 있다면 상주는 더 작은 도시가 되면서도 더 강한 중심이 될 수 있다.
압축도시란 결국 도시를 작게 만드는 전략이 아니라, 중심을 다시 만드는 전략이다.
「상주시 인구 9만 명 붕괴…지방소멸 경고등 더 짙어졌다」, 『경북일보』, 2026.1.6.
「[이 동네 이 사업] 상주읍성 북문 복원」, 『대구일보』, 2026.6.2.
「[이야기 따라 상주 여행 .11] 상주향교, 고려 말 최자의 보한집 최초의 기록…창건은 훨씬 이전 추정」, 『영남일보』, 2021.9.13.
「희생뿐인 상주캠퍼스, 회생은 어디에?」, 『경북대신문』, 2024.9.2.
「['2025' 이렇게 뛴다] 강영석 상주시장 “압축도시로 중흥 기회 잡는다”」, 『대구신문』, 2025.1.20.
「문경~상주~김천 철도건설사업 속도…상주서 주민설명회」, 『뉴시스』, 2026.8.13.
「[대구/경북] “자전거 도시 상주, 살맛 납니다”」, 『동아일보』, 2002.11.19.